고전 풀어 읽기-총람/남원고사 52

(경판)남원고사 - IX. 남원 왈짜들 (1/4)

IX. 남원 왈짜들 가. 춘향이가 맞았단다 우리네들 어서가자 벌떡벌떡 자빠지며 하늘하늘 뛰놀 적에, 이때 남원 사십팔 면 왈짜들이 춘향의 매 맞은 말 바람결에 얻어듣고, 구름같이 모일 적에 누구누구 모였던고. 한숙이, 태숙이, 무숙이, 태평이, 걸보, 떼중이, 도질이, 부딪치기, 군집이, 털풍헌, 준반이, 회근이 무리 등등이 그저 뭉게뭉게 모여들어, 겹겹이 둘러싸고 사면으로 저희 각각 인사하며 위로할 제, 그중 한 사람이 들여다가 보고 바삐 뛰어 활터로 단총 올라가서 여러 한량보고 숨을 아주 헐떡이며 흐느껴가며 목이 메어 하는 말이, “어따, 맞았거든.” 한량들이 하는 말이, “네가 뉘에게 맞았단 말이냐? 대단히나 맞지 않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맞았으면 뉘 아들놈이 어렵게 여기어 꺼리랴? 어따, 곧..

(경판)남원고사 - VIII. 춘향 시련 (4/4)

라. 관장을 능욕하니 각별히 매우 치라 저 사또의 거동 보소. 맹호같이 성을 강변에 덴 소 뛰듯 목을 끄떡 움치면서 벽력같이 소리하여 좌우 나졸 엄포하되, “조년 바삐 내리라.” 벌떼 같은 사령 나졸 와락 뛰어 달려들어 춘향의 머리채를 비단 가게에서 비단 감듯, 잡화가게에서 연줄 감듯, 당도리 사공 닻줄 감듯, 감쳐 풀쳐 풀쳐 감쳐 길 남은 중계 아래 동댕이쳐 끌어 내려 형틀 위에 올려 매고 형방이 다짐 쓴다. “아뢰건대 본시 창녀의 무리이거늘, 사태를 돌아보지 않고, 수절, 명절이 어찌 된 곡절이며, 또 새로운 정사를 펴려는 중에 관의 영을 거역할뿐더러, 관원에게 발악하며 능욕 관장하니, 일의 끝이 해괴하게 되어 더할 수 없이 매우 심함이요, 죄는 응당 만 번 죽을만함이라. 엄한 형벌을 내리고 무겁게 ..

(경판)남원고사 - VIII. 춘향 시련 (3/4)

다. 십장가를 부르노니 죽을 밖에 하릴없다 저 계집아이 생각하되, ‘저 거동을 보아하니, 석방할 리 만무하다. 제아무리 저리한들 얼음과 옥 같은 내 마음과 금석 같은 굳은 뜻이 백골이 먼지가 된들 절개를 깨뜨릴 리 만무하다. 일이 벌써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설마 어찌하리. 죽을 밖에 하릴없다.’ 악을 써서 하는 말이, “일광로 같은 우리 도련님을 하루아침에 이별하고, 이 한 몸에 맺힌 슬픈 한이 한 구절에 한마음이 사라지니, 일 척의 단검에 목숨 바쳐 일백 번 죽사와도 한마음에 정한 마음 일정 변치 아니리이다. 두 강물은 나뉘어 백로주로 흐르더니, 이별 낭군 떠난 후에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것을 본받아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아니하려 하고, 이 마음을 굳게 먹어 이 세상을 하직하며 두 왕비의 절개를 따르고..

(경판)남원고사 - VIII. 춘향 시련 (2/4)

나. 열녀의 본 받으려니 분부거행 못하겠소 춘향이 여쭈오되, “이 몸이 병이 들어 말씀으로 못하옵고, 원정으로 아뢰오니, 사연을 보옵시면 제 곡절을 밝게 살피시리니, 원하는 대로 해 준다고 적으시면, 화봉인의 본을 받아 백 세를 두 손 모아 비오리다.” “어허, 괴이하다. 어느 사이에 무슨 원정이니? 내게 원정하는 것은 조마거동에 격쟁이라. 동서 간 처결이야 아니하랴?” 형방이 읽을 제, 소리를 크게 높여, “본읍 기생 춘향이 아뢰옵나니. 지금까지 진정하려는 일의 실마리가 여기 있으니, 소녀가 본시 기생집의 후손이요, 변변하지 못한 천한 계집이라. 강가의 매화나 산속의 대나무 같은 고결한 마음과 옥과 얼음처럼 맑은 뜻으로 봄부터 이른 가을에 이르기까지 떨어지지 않더니, 예전에 이등 사또가 재임하셨을 때에..

(경판)남원고사 - VIII. 춘향 시련 (1/4)

VIII. 춘향 시련 가. 네가 춘향이냐, 과연 듣던 말과 같다 사또 골을 내어 호령하되, “네 그놈들을 모두 다 몰아 내치고 그중 영리한 사령놈 부르라.” 천둥과 벼락이 치듯이 분부하되, “네 이제로 바삐 잡아 대령하라.” 긴 대답 한마디에 군노사령 명을 듣고, 성화같이 바삐 나와 춘향의 집에 이르러서 호흡이 헐떡거리며 하는 말이, “사람 죽게 되었다. 바삐 가자.” 춘향이 대답하되, “애고, 이것이 웬 말인고. 말이나 자세히 아옵시다.” “말이나 절이나 가면서 할 양으로 어서 수이 나섰거라.” “나는 새도 움직여야 나느니, 술이나 먹고 가사이다.” “관술이나 오술이나 가다가 먹을 양으로 어서 급히 나오너라.” 춘향이 하릴없어 돈 닷 냥 내어다가 사령 주며 하는 말이, “이 물건이 사소하나, 잠깐 외상..

(경판)남원고사 - VII. 신관 부임 (4/4)

라. 춘향이를 불러서 이제 바삐 현신시키라 신관이 이 말 듣고 놀라 하는 말이, “어허, 세상의 변괴로다. 입에서 아직 젖내 나는 아직 어린아이들이 첩, 첩, 첩이라니, 또 본디 기생년이 수절 말이 가소롭다. 까마귀 학이 되며 각 관청 기생들이 열녀 되랴? 이제로 바삐 불러 현신시키라.” 형방이 명을 듣고 관속 불러 분부하니, 관속들이 분부 듣고 한걸음에 바삐 나와 춘향이 부르러 갈 제, 춘향이 본디 재주가 높고 도도하며 말씨와 행동이 매몰차고 높은지라. 관속들이 꺼리고 싫어하더니, 팔 척이나 되는 군노사령 훨쩍 뛰어나가는 거동 보소. 산짐승털 벙거지, 털모자 안에 넓은 단을 안을 올려, 말총증자, 굴뚝상모, 눈 고운 공작 꼬리를 당사실로 엮어 달고, 성성전 징도리, 밀화 징도리, 은영자 넓은 끈에 날랜..

(경판)남원고사 - VII. 신관 부임 (3/4)

다. 남원 고을 기생들을 점고차로 대령하라 통인 불러 좌수 몰아 쫓아내라고 한 후에, “여보아라, 삼반관속들이 나를 경계에서 맞이하느라고 먼지를 쐬고 바쁘게 들어왔으니, 다른 점고는 다 제쳐 놓고, 그편에 있는 기생 하나도 빠지지 말고, 점고 차례로 대령하라. 네 고을이 큰 고을에 미인이 많은 고을이라 하니, 기생이 모두 몇 마리나 되나니?” 이방이 아뢰되, “원기와 이속, 비속, 공비, 대비 합하여 계산하오면, 합이 오십 명이 되옵나이다.” “어허. 매우 마음에 드는구나. 기생의 이름이 붙은 것은 하나도 새어나지 않게 하고 톡톡 떨어 점고에 다 현신하게 하라.” 이방이 명을 듣고 나와서, 모든 기생에게 말이나 글로 알려주고, 수군수군 모여 의논하되, “이 사또 알아보겠다. 사또가 아니오. 백설이 풀풀 ..

(경판)남원고사 - VII. 신관 부임 (2/4)

나. 네 고을에 유명한 것 들은 지 오래로다 남대문을 바삐 나서, 칠패, 팔패, 돌모루, 동작리를 얼핏 지나 신수원에서 머물러 쉬고, 상류천, 하류천, 중미, 오산을 바삐 지나, 진위읍내 점심 먹고 하고, 칠원, 성환, 도리치, 천안삼거리 머물러 쉬고, 진계역 바삐 지나 덕평, 인주원, 광정, 몰원, 공주감영에서 점심 먹고, 널티, 경천, 노성에서 머물다가, 은진, 닥다리, 여산, 능기울, 삼례를 얼른 지나 전주 들어 점심 먹고, 노구바위, 임실을 얼핏 지나 남원 오리정에 다다르니, 개복청 들어 옷을 갈아입으며 쉬고, 삼반관속 육방 아전 경계까지 나와 맞이하며 영접할 제, 고을에서 존귀한 사람을 나아가 맞이하는 육각 좋을시고. 대장기는 청도기라. 붉은 바탕에 푸른 구름무늬로 가장자리를 한 깃발이 한 쌍,..

(경판)남원고사 - VII. 신관 부임 (1/4)

VII. 신관 부임 가. 남원에 명기 춘향 소문이 자자하니 이때 옛 사또는 올라가고, 신관 새 사또가 내려올 제, 신관 사또는 남촌 호박골 변악도 집이라. 천만뜻밖에 연줄이 있는 덕으로 임시로 마지막으로 낙점을 받았는지라. 하던 날부터 남원 춘향이 명기란 소문을 들은 지 오랜지라. 생각이 전혀 여기만 있어 밤낮으로 기다리는 말이, “남원이 몇 리나 되는고? 신연 하인들이 사흘이나 되도록 기척이 없어. 하 괴이한 일이로고.” 하며 성화같이 기다릴 제, 잔뜩 졸라 열사흘 만에 신연 관속들이 올라와 수청 불러 관아에 가서 알리려 하고 현신하러 들어올 제, 신연유리, 육방, 아전, 통인, 급창, 군노, 사령 차례로, “현신 아뢰오.” 신관이 밤낮으로 기다리다가 이렇듯 늦은 시간에 온 것 보니, 골이 한껏 나서 ..

(경판)남원고사 - VI. 이별 설움 (4/4)

라. 춘하추동 사시절에 임 그리워 어이 살리 속절없이 떠날 적에 이전에는 뜨게 걷던 말조차 오늘은 어이 그리 재게 가노. 봄철 경치 좋은 들판에 우는 새는 간장을 부수는 듯, 긴 둑에 푸른 버들 무정히도 푸르렀다. “형체와 그림자조차 묘연하니, 애고 답답 가슴이야. 보려 해도 볼 수 없음이요,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생각이 나는구나. 보고지고 보고지고. 나의 춘향 보고지고. 어린 얼굴 모습 옥을 깨뜨리듯 고운 소리 잠깐 들어 보고지고. 유리잔에 술 부어 들고 잡수시오 잡수시오 권하던 양 지금 만나 보고지고. 천 리 먼 길 머나먼 데 너를 잊고 어이 가리. 속절없는 춘향 전혀 없다. 이놈, 마부야. 말이나 천천히 몰아가자 꽁무니네 티눈 박히겠다. 저 앉았던 묏봉이나 보고 가자꾸나.” 마부놈 대답하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