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IV. 고운 치레 (1/3)

New-Mountain(새뫼) 2020. 6. 23. 11:10
728x90

IV. 고운 치레

 

가. 좌우를 살펴보니 집치레도 황홀하고

 

화설, 이때 이도령이 춘향 어미 거동 보고 이른 말이,

“일이 있든지 없든지 아는 체할 바가 아니니 염려 말고 그만 있소.”

춘향 어미 잔도리 치는 말이,

“이미 와 계시니 말없이 다녀가오. 헛걸음으로 돌아가면 제 마음도 섭섭할 듯하고 도련님도 무료할 듯하니 두어 마디 말이나 하다가 가시오. 제가 실로 매몰하여 친구 왕래 없었더니 도련님이 나와 계시니 잠깐 놀다가 들어가오.”

이도령의 거동 보소. 춘향의 손목 들입다 덥석 마주 잡고 가슴이 두근두근 제두리뼈가 시큰시큰 한 손으로 어깨 희희낙락 들어갈 제 좌우편 살펴보니 집치레도 황홀하다.

대문짝 좌우편에 울지경덕, 진숙보요, 중문에는 위징 선생, 사면 활짝 높은 집을 입구 자로 지었는데, 윗방 세 칸 쌍벽장에, 곁방 두 칸, 대청 여섯 칸, 건넌방 세 칸, 부엌 세 칸, 광 다섯 칸, 중집 네 칸, 내외 분합, 물림퇴에 살미살창, 가로닫이, 굴도리, 선자추녀, 바리받침 부연 달아서 맵시 있게 지었는데, 동편에는 광이요, 서편에는 마구간이로다.

양지에 방아 걸고 음지에 우물 파고, 문전에 학종선생 긴 버들, 휘늘어진 큰 솔이 광풍에 흥을 겨워 우슬우슬 춤을 추고 앞뜰에 개를 놓고, 뒤뜰의 닭을 치고, 대 심어 울을 하고, 솔 심어 정자이로다.

뽕 심어 누에 치고, 울 밑에 벌집 앉히고, 울 밖에 원두 놓고, 뜰 아래 연못가에 정자 지어, 대나무 정자로 면을 받쳐 네모반듯 괴었데, 못 가운데 석가산을 일 층 이 층 삼사 층에 절묘하게 무어 놓고, 비오리 쌍쌍, 징경이 너풀너풀, 대접 같은 금붕어는 못 가운데 노니는데 온갖 화초 다 피었다.

동에는 벽오동, 서에는 백매화, 남에 홍모란, 북에는 금사오죽 한가하다. 한가운데 황학령, 월계, 사계 종려, 파초, 작약, 영산홍, 왜철쭉, 아름드리 복숭아꽃, 국화, 매화를 여기저기 심어두고, 앵무, 공작, 청조 한 쌍 소식을 맡겨 두고, 합환초, 연리지에 비익조 다정하다.

오동 차양 추녀마다 옥풍경을 달았으니, 청풍 건듯 불 적마다 앵그렁 쟁그렁 소리 맑고 낭랑하다.

배치한 것 돌아보니, 백릉화로 도배하고, 당유지 굽도리에 청릉화 띠를 띠고, 동서남북 계견사호, 문 위에 십장생, 지게문에 남극선옹 벽화를 붙였는데,

동쪽 벽을 바라보니, 송단에 상산사호 바둑판을 둘러앉아 흑백이 난만하되, 바둑돌이 정정 떨어지는 것 그려 있고, 육여화상 성진이가 봄바람 불 제 돌다리 위에서 팔선녀를 만나보고 짚었던 육환장을 흰 구름 사이에 흩던지고 합장하여 뵈는 형상 역력히 그려 있고,

서쪽 벽을 바라보니, 진나라 처사 도연명이 팽택령 마다하고 백학을 먼저 놓고, 오두미를 후려치고, 가을 강산에 배를 띄워 청풍명월 흘려 저어 소상으로 가는 경을 뚜렷이 그려 있고, 부춘산 엄자릉이 간의태부 마다하고 갈매기로 벗을 삼고 원숭이와 학을 이웃하여, 동강 위의 칠리탄에 낚싯대를 던진 거동 시원하고 상쾌하게 그려 있고,

남쪽 벽을 바라보니, 삼국 풍진 요란한데 한종실 유황숙이 걸음 좋은 적로마를 뚜벅뚜벅 바삐 몰아 남양 땅 초당 눈보라 중에 와룡선생 보려 하고, 지성으로 가는 모습을 완연히 그려 있고, 가장 으뜸이 되는 시인인 이태백이 포도주를 취하게 먹고 어선에 비껴 앉아, 물밑에 비춘 달을 사랑하여 잡으려고 두 손목 물에 넣은 거동 선명하게 그려 있고,

북쪽 벽을 바라보니, 위수 어옹 강태공은 가난하게 살았던 앞선 여든 해 동안 달삿갓 숙여 쓰고, 서른여섯 가닥 곧은 낚시 차례로 드리우고 낚싯대를 거두어 드릴 제 잠든 백구 놀라는 모습, 낚시터에 앉았다가 주문왕을 반겨 만나 네 말이 끄는 편안한 수레로 가는 모습도 한가하게 그려 있고,

영천 한수 흐르는 물에 소부는 귀를 씻고, 허유는 귀 씻은 물, 소 먹을까 소고삐를 거느리고 기산으로 가는 모습도 청아하게 그려 있고, 도연명이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워 놓고 <귀거래사> 읊는 모습, 죽림칠현이 뱃사공과 나무꾼의 문답하는 모습, 넓고 푸른 바다로 흘러드는 강물에서 물고기가 용으로 변하는 모습이 그려 있고, 집 앞에 쌓은 담에 임술년 가을 칠월 보름밤에 소자첨이 적벽강에 배를 물에 띄워 노는 모습도 신기로이 그려 있고,

벽에 붙인 글씨로 볼작시면, 왕자안의 <등왕각서>, 도연명의 <귀거래사>, 이태백의 <죽지사>, 소자첨의 <적벽부>,

입춘서로 볼작시면 ‘원하건 데 삼신신의 불로초를 얻어, 좋은 집 높이 지어 학같이 흰 백발의 부모에게 드리고 절하고자’를, ‘북쪽 궁궐의 임금님 은혜를 머리를 돌려 맞이하고, 남산의 아름다운 기운을 처마를 열어 맞이하네’를, ‘어제는 채봉이 편지를 머금고 오더니, 오늘은 천관이 천복을 안고 오더라’이라.

문짝에는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며,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하리라’, ‘집안의 신령이시여 불상사는 오지 못하게 해 주소서’, 문 위에는 ‘봄이 문 앞에 오니 부귀가 늘어나네’이라. 귀머리까지 붙였으니 벽 가득 글과 그림이 더욱 좋다.

이도령 이른 말이,

“내가 우연히 든 장가가 쌀고리의 닭이로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