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VI. 이별 설움 (2/4)

New-Mountain(새뫼) 2020. 6. 2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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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일시 이별 서러워도 설마 너를 잊을쏘냐

 

이도령 이른 말이,

“어따, 춘향아. 말 듣거라. 애고 춘향아, 말 듣거라. 모든 간장이 다 녹는다. 일시 이별 섧거마는 얼마 되리. 두고 가는 나의 모양 어이하여 끝이 있으리. 함께 갈 마음이 불현듯이 있건마는, 경성으로 올라가면 중요하지 않은 친척들이 공연스레 의논하되, ‘아이놈이 첩을 얻어 학업 전폐한다.’ 하고, 호적에서 도려낼 것이니, 여차 고로 뜻과 같지 못하구나. 잘끈 참아 수삼 년만 견디어라.

밤낮으로 공부하여 입신양명한 연후에 너를 찾아올 것이니, 부디부디 잘 있거라.

구구 팔십 일 하여 일각선인은

여동빈을 따라가고

팔구 칠십이 하여 이적선은

채석강에서 달을 구경하고,

칠구 육십삼 하여 삼로동공은

한태조에게 충언하고,

육구 오십사 하여 사호 선생은

상산에서 바둑 두고,

오구 사십오 하여 오자서는

동문에다 눈을 걸고,

사구 삼십육 하여 육손이는

팔진도에 빠져 있고,

삼구 이십칠 하여 칠성단에

제갈공명은 바람을 빌고 있고,

이구 십팔 하여 팔선녀는

성진이가 희롱하고,

일구 구 하여 굴원이는

멱라수에 빠졌으니,

너도 열녀 되려거든 삼강수에나 빠지어라. 내 말일랑 다시 마라. 남아의 한마디가 천금보다 무거움이라. 천지가 개벽하고 산천이 돌변한들 금석 같은 내 마음이 설마 너를 잊을쏘냐?”

춘향이 하릴없어 이별주 부어 들고 눈물 흘려 권할 적에,

“도련님 말이 그러하니 한 번만 더 속아 보옵시다. 날 생각은 아주 말고 글공부나 힘써 하여 젊은 나이에 급제하신 후에, 부모님께 영화 뵈고, 요조숙녀 짝을 맺고, 성군 만나 몸이 지체 높고 귀하게 되신 후에 그때에나 잊지 마오. 필운동, 소격동, 탕춘대와 남한강 북한강 정자 경치 좋은 데 술잔이 낭자하고, 풍악이 융성한 데, 정을 나눈 친구, 절대 가인, 최고의 북 치는 사람들, 명창들이 구름같이 좌우에서 모여들어 밤낮으로 마음 두어 노닐 적에 이 술 한 잔 생각하오.

애고 설운지고. 떠날 리 자 슬퍼 마오. 보낼 송 자 나도 있소.”

“보낼 송 자 슬퍼 마라. 돌아갈 귀 자 어이하리.”

“돌아갈 귀자 슬퍼 마오. 슬플 애 자 구슬프오.”

“슬플 애 자, 슬퍼 마라. 옥 같은 너를 두고 경성으로 올라가서 적막강산 홀로 앉아 생각 사자 어이하리.”

춘향이 차마 손을 나누지 못하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왈,

“도련님이 이제 가시면 언제나 오시려 하오?

태산과 중악의 만 길 봉우리가

모질고 세찬 바람에 쓰러지거든 오려시오?

기이한 바위 쌓인 절벽에 돌들이 층층한데

눈비 맞아 썪어지거든 오려시오?

용마 갈기 두 사이에 뿔 나거든 오려시오?

십 리 모래밭 가는 모래가 정 맞거든 오려시오?

금강산 상상봉에 물 밀려와

배가 둥둥 뜨이어 평지 되거든 오려시오?

병풍에 그린 황계 두 나래를 둥덩 치고,

사오경 늦은 후에 날 새라고 꼬꾀요 울거든 오려시오?

층층한 바위에 진주 심어 싹 나거든 오려시오?

아무래도 못 놓겠네. 함경도로 들어가서 마운령, 마천령, 함관령을 다 떠다가 도련님 가시는 길을 막아 놓으면 가다가 못 가고 도로 오시게 할 것이오.

그렇지 못하거든 울산바다, 나주목, 안흥목, 손돌목, 강화목 바다를 모두 다 휘어다가 도련님 가시는 길에 가로막아 놓고 조각배도 없이 하면 가다가도 못 가고 도로 오시게 하오리다.

애고 애고, 설운지고. 이 이별을 어찌할꼬? 두고 가는 도련님은 눈이 남관을 덮어 말도 나아가지 못할 뿐이어니와, 보내고 있는 내 마음은 해마다 꽃피는 봄이 돌아올 때. 한은 끝이 없으며, 해마다 절기가 바뀔 때에 슬픈 마음을 이루 헤아릴 수 없도다. 어찌 견디어 살라 하오.”

이도령 위로하되,

“너무 슬퍼 울지 마라. 장부 간장이 다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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