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V. 사랑 타령 (4/4)

New-Mountain(새뫼) 2020. 6. 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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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우리 둘이 만났으니 타령하며 놀아보자

 

서너 잔을 기울이고 취흥이 도도하여 춘향의 가는 허리 허험벅 틀어 안고 입 한 번 쪽, 등 한 번 둥덩,

“어허 어허, 내 사랑이야.

아마도 네로구나.

달빛 침침한 깊은 밤에

어서 벗고 잠을 자자.

정이 많아 두 가슴이 맞닿았음이요,

뜻이 있어 두 다리를 벌렸구나.

허리를 움직이는 것은 내가 네게 시키겠지만,

깊게 하든지 말든지는 네가 맡기리라.

달 뜬 한밤중에 춤을 추니,

이불 속에서 한 줄기 바람이 이는구나.

달은 져서 빈 산으로 넘어가고,

차가운 시내에 늙은 나무는 조용하구나.

서로 만남이 어찌 이리 늦었는가.

이백이 너희들과 함께 죽고 산다 하였으니.

봄날 꾸는 꿈이 다정하거든

양왕의 즐거움이 부러울쏘냐?

그는 그러하거니와

밤이 깊어 인적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지니.

놀기는 내일이 계속 와서 끝이 없음이라.

어서 벗고 잠을 자자.”

춘향이 거문고를 물리치고, 사람 없어 조용한데 중문을 닫으니 하얗게 꾸민 벽에 비단을 바른 창이 고요하다. 원앙금침 잣베개를 촛불 아래 펴서 깔고 눈같이 흰 피부와 꽃 같은 얼굴 들어내어 춘정을 자아내니 아리땁고 쟁그럽다.

“도련님 먼저 벗으시오.”

“나 먼저 벗은 후의 너는 아니 벗으려나 보다. 잡말 말고 너부터 벗어라.”

춘향이 먼저 벗은 후에 이도령도 마저 벗고, 에후리쳐 허험석 안고 두 몸이 한 몸 되었구나.

네 몸이 내 몸이요, 네 살이 내 살이라. 호탕하고 무르녹아 여산 폭포에 돌 구르듯 데굴데굴 구르면서 <비점가(批點歌)>로 화답한다.

“우리 둘이 만났으니 만날 봉 자 비점이요,

백년가약 맺었으니 맺을 결 자 비점이요,

우리 둘이 누웠으니 누울 와 자 비점이요,

우리 둘이 벗었으니 벗을 탈 자 비점이요,

우리 둘이 덮었으니 덮을 복 자 비점이요,

오늘 침상 즐겼으니 즐길 낙 자 비점이요,

우리 둘이 입 맞추니 법칙 여 자 비점이요,

우리 둘이 배 닿으니 배 복 자가 비점이요,

네 아래 굽어보니 오목 요 자 비점이요,

내 아래 굽어보니 내밀 철 자 비점이요,

두 몸이 한 몸 되니 모을 합 자 비점이요,

나아갈 진, 물너갈 퇴, 잦을 빈 자 비점이요,

좋을 호 자, 실 산 자자, 물 수 자 다 비점이라.”

이렇듯이 음탕한 소리와 난잡하게 즐기니 남대문도 개구멍처럼 작게 보이고, 인정도 매방울처럼 작을 뿐이라. 선혜청이 오 푼이요, 호조가 서 푼이요, 하늘이 돈짝만하고, 땅이 맴도는구나.

취한 흥을 이기지 못하여 춘향에게 하는 말이,

“우리 둘이 인연이 지극히 소중하여 이렇듯이 만났으니 <인자타령> 하여 보자.”

인 자를 달아 맹랑히도 하는구나.

벼슬 그만두겠다 말하는 이 많이 봤지만

산 아래까지 찾아온 사람 본 일이 없다네.

달은 높은데 여인은 다락에 높이 올랐구나.

올 때는 만 리 먼 곳에서 함께 길손이었지만,

오늘은 바뀌어 벗으로 보내게 되었구나.

바람 불면 꽃은 눈발이 날리는 듯,

궁궐에 날아드나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구나.

칠 년 가뭄 끝에 달콤한 비 만나거나

멀고도 먼 타향에서 옛친구를 만난다네.

쓸쓸히 떨어지는 꽃잎 사이 불여귀가 우는데,

푸른 버들 사이로 손님은 강물을 건너누나.

가련하구나, 강 포구를 바라보니,

낙교 위에 고향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구나.

사립문에 개 짖는 소리 들리더니,

눈보라 치는 밤 길손은 돌아가는구나.

귀한 사람, 뛰어난 사람, 병든 사람,

구걸하는 사람, 늙은 사람, 어린 사람

통인으로 인연하여,

두 사람이 혼인하니

증인되니 즐겁기도 그지없다.”

춘향이 이른 말이,

“도련님은 인 자를 달았으니, 나는 연 자를 달아 보사이다.”

하고 연 자를 달았으니,

“사람마다 백 년을 산다 한들,

근심과 즐거움으로 나누면 백 년이 못되는 것을.

낙양성을 이별하고 사천리를 떠났으니,

오랑캐 기병이 쳐들어온 지 오륙 년이로다.

꽃은 시들어도 다시 필 날이 오건만,

사람은 늙으면 젊은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네.

고향에서는 천 리 밖의 이 몸을 오늘 생각하지만

서리 같은 귀밑머리 내일이면 한 살을 더하네.

하늘과 땅이 쇠하지 않고 그대로이니,

적막한 강산은 지금까지 그대로이네.

신풍의 좋은 술은 한 말에 만 전인데,

함양의 놀이꾼들엔 젊은이들이 많도다.

내 낭군 싣고 떠나간 뒤,

한 해 한 해 가고 또 가네.

산속이라 달력이 없어,

추위가 지나가도 해 바뀐 줄 모르겠네.

일 년, 십 년, 백 년,

천 년, 작년, 금년,

우리 둘이 우연히 인연 맺어

백 년을 인연하니, 백 년이 천 년이라.”

이도령이 듣고 하는 말이,

“이 애, 네 소리 참 별소리로다.”

하며 둘이 이렇듯이 이삭단니하고 놀더니, 새벽닭이 창문 밖에서 울고, 별들이 새벽을 알림이라.

금침을 추켜 덥고 원앙이 녹수에 놀 듯, 봉황이 연리지에 깃들이듯, 날 곧 새면 책방이요, 해 곧 지면 돌아와서 노래와 거문고로 밤을 지새우고, 주색으로 잔치 벌여 즐길 제, 내관이 처가 출입하듯, 저의 집 건넌방 왕래하듯 길을 알아 다니면서 무한 농탕 호강한다.

두 사람이 서로 만나 곧 보면, 나무 위의 원앙이요, 나비가 꽃 사이에서 춤추도다.

봄에는 꽃과 버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 가을에는 밝은 달, 겨울에는 눈 쌓인 경치에서 아무도 없이 단둘이 만나 놀 제, 고개 돌려 한 번 방긋 웃으면 온갖 애교가 생겨나는구나. 모든 꽃과 밝은 달도 빛을 잃었음이라. 백만 교태 웃는 모양 웃음 속에 꽃이 피고 붉은 입술과 흰 이로 수작할 제, 말 가운데 향내 난다.

“안거라 보자. 서거라 보자.”

유리 같은 각장 장판에 고운 발은 외씨 같다. 사뿐 회똑 걸어올 제, 회목 딴죽 칠 량이면 제가 절로 안기는구나. 안고 떨고 진저리치고 몸서리치고 소름 돋칠 제, 인간 세상 즐거움이 이뿐인가 하노매라.

세월이 물 흐르는 것처럼 알지 못하노라.

이렇듯이 노닐더니 즐거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닥쳐오고,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많은 것은 예로부터 흔한 일이라. 찬란한 세월이 물 흐르듯 지나가니 서너 해가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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