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VII. 신관 부임 (1/4)

New-Mountain(새뫼) 2020. 6. 2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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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신관 부임

 

가. 남원에 명기 춘향 소문이 자자하니

 

이때 옛 사또는 올라가고, 신관 새 사또가 내려올 제, 신관 사또는 남촌 호박골 변악도 집이라. 천만뜻밖에 연줄이 있는 덕으로 임시로 마지막으로 낙점을 받았는지라. 하던 날부터 남원 춘향이 명기란 소문을 들은 지 오랜지라. 생각이 전혀 여기만 있어 밤낮으로 기다리는 말이,

“남원이 몇 리나 되는고? 신연 하인들이 사흘이나 되도록 기척이 없어. 하 괴이한 일이로고.”

하며 성화같이 기다릴 제, 잔뜩 졸라 열사흘 만에 신연 관속들이 올라와 수청 불러 관아에 가서 알리려 하고 현신하러 들어올 제, 신연유리, 육방, 아전, 통인, 급창, 군노, 사령 차례로,

“현신 아뢰오.”

신관이 밤낮으로 기다리다가 이렇듯 늦은 시간에 온 것 보니, 골이 한껏 나서 흠썩 부어 한마디 호령에 종놈 불러 분부하되,

“네 저놈들 모두 몰아 내치라.”

호령이 추상 같은지라.

꼭뒤가 세 뼘씩 만한 주먹 건달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일시의 꼭뒤 질러 몰아 내칠 제, 대문 밖으로 내치는 것이 아니라, 호탕한 기상으로 되는 대로 나서 명령에 띠여 남산골 네거리까지 몰아 나와서 그 결에 장악원까지 활짝 내리 몰아, 한숨에 여러 가게, 시장 가게, 난전 몰 듯, 구리개 병문까지 몰아내 떨이고 오니, 신관이 골난 김에 다 몰아 내치고 다시 생각한즉 모양도 아니 되고, 제일 그곳 소문을 물을 길이 없는지라.

청지기 불러 묻는 말이,

“여보아라. 남원 하인 하나도 없느냐? 나가 보아라.”

할 제, 마침 길방자 한 놈이 발병이 나서 뒤떨어져서 들어오니, 몰아내는 통에도 참여 못한 놈이 저축저축 하고 들어오는 놈의 형상이 아주 허술한 중 얽고 검고 한 눈멀고 흉악히 추한 놈이 들어와서, 신관 사또댁이냐 묻고 신연 관속들을 찾거늘, 아무렇게나 불러들여 현신시킨 후에 신관이 보고 반기어 생으로 치켜주는 말이,

“어따, 그놈, 잘도 났다. 외모가 심히 순박한 것이 기특한 놈이로다. 네 고을 일을 자세히 아느냐?”

방자 놈 여쭈오되,

“소인이 십여 대를 그곳에서 생장하온지라 터럭 끝만 한 일이라도 소인 모르는 일이 없사외다.”

“어허, 시원하다. 알든지 모르든지 우선 관원의 비위를 맞추어 대답하는 것이 기특하다. 네 구실이 일 년에 얼마나 먹고 다니나니?”

“아뢰옵기 황송하오되, 소인의 구실 원응식이라 하옵는 것이 일 년에 황조 넉 섬 뿐이올시다. 그러하옵기 이런 때 행차를 뫼시러 오거나, 관가 구실로 서울 왕래를 하오나, 노자를 마련하는 법을 스스로 부담하옵기로 길에서 탄막에 외상 먹고 다니옵거나, 여북하면 굶고 다닐 적이 많사옵고, 그러하옵기 변리, 변지변이니 하여주는 경주인의 빚이 무수하옵고, 도 매양 바칠 길 없사와 볼기를 흰떡 맞듯 하옵니다.”

“불쌍하다. 네 고을에 관속 중 제일 먹는 방임이 얼마나 쓰나니?”

대답하되,

“수삼 천금 쓰는 방임이 서너 자리나 되옵나이다.”

“내가 도임하거든 그 방임 서너 자리를 모두 다 너를 시키리라.”

“황송하외다. 높은 은덕이올시다.”

“여보아라. 그는 그러하거니와 네 고을에 저 무엇이 있다 하더구나. 어따, 유명한 별것 있다 하더구나.”

“저어하오되, 무엇이온지 모양만 하문하옵시면 알아 바치오리이다.”

신관이 풀갓낀뒷짐지고 거닐면서

“어따, 이런 정신이 어디에 있으리. 고약한 정신이로구나. 그때에 생각하였더니 그사이에 깜빡 잊었구나. 정신이 이러하고 무엇을 하리? 도임 후의 수많은 관청의 일에 애를 쓸 수밖에. 애고 무슨 ‘양’이라 하더구나. 무슨 ‘양’이 있느냐? 아주 논란 없이 절묘하다더구나.”

“양이라 하옵시니, 무슨 양이오니까?”

“허허, 그놈. 그것을 모른단 말이냐? 너 나무라 무엇하리. 그는 내려가 이다음에 알려니와 네 고을이 서울서 몇 리나 되나니?”

“서울서 본관 읍내가 육백오십 리로소이다.”

“그러면 내일 일찍 내려가면 저녁참에 들어 닿으랴?”

“저어하오되, 내일 숙배나 하옵시고, 조정에 하직이나 하옵시고, 각 관청에 서경이나 도옵시고, 또 내일 반나절쯤 떠나옵시면, 자연 날 궂은 날 끼이옵고 가옵시다가, 감영에 연명이나 하옵시고, 혹 구경할 만한 곳에나 놀이 하옵시고, 가는 길목의 각 읍에 혹 날을 이어 묵으시면 되옵시고, 천천히 내려가옵노라, 하오면 한 보름이나 하여야 도임하옵시리이다.”

“어허, 이놈. 괴이한 놈. 보름이라니? 어허, 주리를 할 놈. 보름이라니? 그놈이 곧 구워 죽일 놈이로구나. 네 이놈, 아까 시킨 서너 자리 방임 다 모두 자리에서 쫓아내라.”

그놈 쫓아 내치고 청지기 불러 신연 하인에게,

“내 분부로 일절 말을 하지 아니하고 길 바삐 차리라.”

하고 성화같이 내려갈 제, 격식 갖춘 기구 볼작시면 쌍교, 독교, 별연이라. 좌우 푸른 장막 넘놀았다. 조정에 내린 말을 타고 기세 있고 힘차게 타고 내려갈 제, 평지에는 가마요, 산골짜기에는 말에 앉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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