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IX. 남원 왈짜들 (1/4)

New-Mountain(새뫼) 2020. 6. 2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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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X. 남원 왈짜들

 

가. 춘향이가 맞았단다 우리네들 어서가자

 

벌떡벌떡 자빠지며 하늘하늘 뛰놀 적에,

이때 남원 사십팔 면 왈짜들이 춘향의 매 맞은 말 바람결에 얻어듣고, 구름같이 모일 적에 누구누구 모였던고.

한숙이, 태숙이, 무숙이, 태평이, 걸보, 떼중이, 도질이, 부딪치기, 군집이, 털풍헌, 준반이, 회근이 무리 등등이 그저 뭉게뭉게 모여들어, 겹겹이 둘러싸고 사면으로 저희 각각 인사하며 위로할 제, 그중 한 사람이 들여다가 보고 바삐 뛰어 활터로 단총 올라가서 여러 한량보고 숨을 아주 헐떡이며 흐느껴가며 목이 메어 하는 말이,

“어따, 맞았거든.”

한량들이 하는 말이,

“네가 뉘에게 맞았단 말이냐? 대단히나 맞지 않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맞았으면 뉘 아들놈이 어렵게 여기어 꺼리랴? 어따, 곧 몹시 맞았거든.”

“어따. 제 어미 할 아이. 끔찍이 비밀스럽다. 뉘가 맞았단 말이니? 네 어미가 맞았느냐? 네 할미가 맞았느냐?”

“너희 녀석들은 움 속에 있더냐? 맞은 줄도 모르고 누구니 누구니 사람 성화하겠다.”

“글쎄, 무엇이 맞았단 말이니?”

“허허, 여편네가 맞았단다.”

“여편네가 맞아?”

한량들이 하는 말이,

“짐작이 반이라니 그만하면 알겠다. 신관 사또가 춘향 불러 수청 들인다 하더니, 그 아이가 어찌하여 맞았나 보구나.”

대답하되,

“시들어 떨어지지 않으면 계속 떨어질 줄 아느냐?”

모든 한량 크게 놀라 서로 부르며 벌떼같이 내려올 제,

“이 애, 운빈아. 불쌍하다.”

“성빈아, 어서 가자. 우리네가 아니 가면 뉘가 가리.”

“갓 매여라.”

“옷 입어라.”

편전같이 내려와서 한 모퉁이를 헤치고 우당퉁탕 달려들어 일변으로 부채질하며, 일변으로 칼머리도 들며,

“어따, 이 아이들. 좀 물러서거라. 사람 기 막히겠다.”

한 왈짜 내달으며 부채질하는 왈짜 책망하되,

“이 자식아, 네가 군칠의 집 더부살이 살 제 산적 굽던 부채질로 사람을 기가 막히게 부치느냐?”

“그러면 너는 부채질을 어찌하나니?”

그 왈짜 부채 펴들고 모퉁이로 가만히 올라가서 가만히 내려오며 하는 말이,

“자 보소. 춘향의 머리털 하나나 까딱하느냐?”

한 왈짜 내달으며 하는 말이,

“이 애들아. 춘향의 얼굴을 보니 눈망울이 꺼지고, 두 뺨에 푸른 기운이 도니, 아마도 막혔나 보다. 이제부터 돈 가지고 한달음에 구리개 병문 들어가서 복찻다리 넘어서며 남쪽 셋째, 다음 약방 윗모통이 건너편 박주부 약국에 새로 지은 청심환 한 개만 나는 듯이 가서 사 오너라. 동변강즙에 타 먹여 보자.”

한 왈짜 내달으며,

“어따, 이런 자식들. 소견 보아라. 언제 구리개를 가서 사 오겠나니. 내가 괴이한 말이다마는 청심환 한 개나 있으니, 먼저 쓰자.”

한 왈짜 하는 말이,

“네게 주제넘은 청심환이 어디에서 났나니?”

그 왈짜 대답하되,

“제 것 없는 자식들이 재촉이야.”

하고 주머니를 끌러 청심환 한 개를 내어놓고 하는 말이,

“나의 청심환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이니 들어보아라. 간밤에 어르신네가 급작스레 전근곽란에 막혀 대단히 위중하시기에, 내가 몽촌에 들면 이부치에 다니기 거북한지라. 

아직까지는 사시게 하자는 게 본래의 마음이기에 아닌 밤중에 약국에 가서 내 솜씨로 어찌 호통을 하였던지, 약방 봉사가 혼이 떠서 겁결에 청심환 두 개를 주거늘, 거무칙칙한 마음에 슬며시 얼른 받아 가지고 오며 생각하니, 어르신네보다 더한 이인들 갑 세치 외에야 더 먹이는 것은 도리가 아니기로, 남의 물건을 슬그머니 훔쳐 가지고 두었던 것이니, 요런 때에는 고비에 인삼이요, 계란에 뼈가 있음이요, 마디의 옹이요, 기침에 재채기요, 하품에 딸꾹질이요, 엎친 데 뒤치고, 잦힌 데 덮치는 셈이로다.”

“이 자식들, 잡말 말고 어서어서 갈아라.”

“어따,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가는구나.”

“자, 보아라. 오고 가는 수밖에 더 급히 어찌 가느니.”

한창 이리 갈아 가지고,

“자, 춘향아. 정신 차려 마셔라.”

하고, 입의 대니 발딱발딱 쪼로록 잘 마셨다.

“누가 입가심할 것 가졌느냐?”

한 왈짜 내달으며,

“오냐, 민강사탕 귤병 예 있다. 이번 북경에서 가져온 것에 새로 나온 것 품질이 좋더라.”

다른 왈짜 하는 말이,

“아서라. 빈 속의 단 것 먹으면 회충 생길라.”

한 왈짜,

“이것 먹여라.”

“그것이 무엇이니?”

“전복이다.”

“아서라. 이 아이가 송곳니를 방석니가 되도록 갈아서 이뿌리가 다 솟았는데 그것을 씹겠느냐?”

한 왈짜가,

“이것 먹여라.”

“그것은 무엇이니?”

“홍합이다.”

“아서라, 홍합은 저에게도 있다.”

한 왈짜가

“이것 먹여라.”

“이것은 무엇이니?”

“석류로다.”

“아서라, 석류랑은 주지 마라. 신 것으로 병이 났다.”

한 왈짜가

“이것 먹여라.”

“그것은 무엇이니?”

그 왈짜가 소매 속을 들여다보며

“이런 제 어미를 할 것. 어디에로 갔노?”

하고 성화같이 발광하여 잦거늘,

“그것이 무엇이니?”

“어제저녁에 이 넘어 도당굿 보러 갔다가 도래떡 한 조각 얻어 넣은 것을 어찌들 알고 내어 먹었나니? 먹을 때들은 귀신이다.”

한 왈짜가 온 소매에 물이 뚝뚝 듣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것을 축 처 지고 들어오며,

“자, 비켜라. 치워라.”

하거늘,

“그것은 무엇이니?”

“제 어미를 할 자식들. 쩍 하면 와락들 달려드는 꼴 보기 싫더라.”

한 왈짜가 억지로 잡고 들이밀어 보더니, 어이가 없어서 크게 웃으면서 하는 말이,

“이런 행실이 더럽고 발길 망신할 자식 보았느냐? 뉘 집 마구간에 가서 말구종 없을 때에 말 콩 삶은 것을 도적하여 오는구나.”

그 왈짜가 성을 내어 하는 말이,

“너희들 눈을 한데 묶어서 쏘아 들여다보려무나. 말 콩인 놈의 할미를 하겠다. 십상 메주콩이란다. 네 어미를 붙을 자식들. 알지 못하고 아는 체가 웬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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