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VIII. 춘향 시련 (2/4)

New-Mountain(새뫼) 2020. 6. 2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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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열녀의 본 받으려니 분부거행 못하겠소

 

춘향이 여쭈오되,

“이 몸이 병이 들어 말씀으로 못하옵고, 원정으로 아뢰오니, 사연을 보옵시면 제 곡절을 밝게 살피시리니, 원하는 대로 해 준다고 적으시면, 화봉인의 본을 받아 백 세를 두 손 모아 비오리다.”

“어허, 괴이하다. 어느 사이에 무슨 원정이니? 내게 원정하는 것은 조마거동에 격쟁이라. 동서 간 처결이야 아니하랴?”

형방이 읽을 제, 소리를 크게 높여,

“본읍 기생 춘향이 아뢰옵나니. 지금까지 진정하려는 일의 실마리가 여기 있으니, 소녀가 본시 기생집의 후손이요, 변변하지 못한 천한 계집이라.

강가의 매화나 산속의 대나무 같은 고결한 마음과 옥과 얼음처럼 맑은 뜻으로 봄부터 이른 가을에 이르기까지 떨어지지 않더니, 예전에 이등 사또가 재임하셨을 때에 사또 자제를 광한루에서 한 번 보고 백 년을 함께 하자는 뜻으로 이미 금석과 같은 글을 받고 작정하여 몸을 허락하여, 지금까지 삼 년인데 완연한 부부의 의리가 산과 바다와 같이 매우 크고 넓음이요, 이번에 사또가 바뀔 때 부득이 함께 가지 못한 것은 세상의 풍습으로 자연히 그리된 것이라.

일편단심으로 자나 깨나 잊지 못함이요, 남북으로 서로 이별하여 심장과 쓸개가 모두 갈라지니라.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갈수록 창자가 끊어지고 넋이 나가니, 이와 같이 얼음과 같은 마음은 모름지지 죽는다 해도 이별하기 어렵도다. 백골이 먼지가 되고, 혼백이 흩어지기 전에는 절개를 잃을 일이 전혀 없음이요, 평생 잊지 못하오니, 모름지기 소녀의 연약한 말이라도, 진정으로 품은 마음이라. 

산이 바뀌어 물로 돌아가도 스스로 빼앗을 수 없사오며, 금일 사또님 내 천한 생각을 모르는 고로 인고로 망령되이 존귀한 명령을 어김이라. 금일 분부는 어긋남이 없는 당연한 일이오나, 내 심정이 이러한 까닭으로 부득이 뜻을 따르지 못하온 바, 지금 사또와 부군은 몸가짐이 같지만, 장부의 절조는 바뀌었음이라.

같은 양반의 의리를 깊게 생각하고, 가엾고 딱한 가정을 깊이 헤아리온즉, 이와 같이 묻지를 않을 것이오며, 하물며 면천 되어, 관가에 대신 종을 들여놓은 줄로 감히 해와 달처럼 밝은 다스림 아래서 아뢰오니, 엎드려서 이 상황을 비온 후에 특별한 명령으로 석방하여 천만 넓이의 끝없는 바다처럼 아랫사람들에게 가르쳐 보여주시기를 기원하옵나이다,

사또님 처분이라. 모월 모일 소지이라.”

하였더라.

형방이 취중이라, 읽은 후에 소지 놓고 글을 쓰며 흥을 내어 제사하되,

‘천지는 늙지 않아 달이 늘 떠 있고 적막한 강산은 이제 백 년이로다.’

쓰기를 마치고 춘향 불러,

“제사 사연 들어봐라.”

소리 높여 읊을 적에, 신관이 이 모양 보고 모가지를 길게 빼어 황새처럼 비틀면서 기가 막혀 소리 질러 하는 말이,

“이낭청 저놈의 하는 짓 보소. 저놈을 생으로 발길까 온통으로 주리를 할까? 세상 천지간에 저런 놈도 또 있는가?”

상투 끝까지 골을 내어 대강이를 흔들면서 벽력같이 소리 지르니, 이낭청 대답하되,

“세상 천지간에 저런 놈이 어디 있을까 보오리까마는 바른대로 말씀이지 세상에 저런 놈이 전혀 없다 할 길인들 있사오리까?”

벼락같이 성낸 사또 천둥같이 호령하되,

“이놈일랑 바삐 잡아 중계 아래 내리거라.”

벌떼 같은 사령들이 성화같이 달려들어 갓 벗겨 후려치고 동댕이처럼 끌어 내려 중계 아래 꿇리거늘, 사또 방울 같은 눈망울을 설익은 수박 굴리듯 하며 성성이같이 호령하되,

“그놈을 한 매에 쳐 죽이라.”

형방이 취중이나 혼백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아뢰오되,

“소인의 죄가 무슨 죄온지 죄명이나 알고 죽어지이다.”

사또 분부하되,

“명백하게 죄목을 지적하여, 죽어도 원망하는 마음이 없도록 하라. 이 소지는 다른 것과 달라서 별도로 제사할 것인데, 관장이 입을 열기 전에 스스로 결정하여 조치하여 변변치 못한 소리를 냄은 만번 죽어도 아까울 것이 없는 죄이라.”

좌우 나졸 엄포하되,

“분부 듣자와라.”

형방이 얄밉도록 몹시 능청을 떨며 이치가 바르게 아뢰오되,

“춘향의 원정하는 사연 듣자오니, 죽을 때까지 자기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주장하여 푸른 대나무처럼 곧은 절개를 변치 않으옵기에 윗전의 뜻을 이어받아 사는 쪽과 파는 쪽이 잘 의논해서 물건을 사고 파심이요, 선과 악이 서로 반씩 섞여 있는 제사이오니, 열네 자 뜻을 아뢰오리이다. 건 자는 하늘 건 자이니 사또는 건이 되옵고, 곤 자는 땅 곤 자이니 춘향이는 곤이 되어 늙지 말고 한곳에서 달과 같이 길이 있어, 적막강산 집을 짓고 이제부터 백 년까지 해로하잔 뜻이오니, 사또 판결을 내리시어도 이보다 낫지는 못하리오다.”

사또 이 말 듣고 사리를 곰곰 헤아리니, 미리 말하였던 것과 사실이 과연 들어맞고, 부절을 맞추듯 사물이 꼭 들어맞으니이라. 근본은 싹싹하여 마음 곧 들 양이면 아끼는 것이 없는지라.

다시 분부하되,

“저 아전 아직 분간하여 용서하고 관청빗 부르라. 목포는 각 일 필, 백미 일 석이오, 전문 이 냥, 남초 서 근, 장지 세 권, 이대로 내리어라. 기특하다. 그야 과연 그렇다고 할 만한 아전이로다.”

마음의 상쾌하여 풀갓끈뒷짐지고 대청에 거닐면서,

“춘향아, 너 그 제사 사연 들었느냐? 꼭 필요하지 않은 원정이라. 한 번이면이야 괴이하랴. 다시는 잔말 말고 바삐 올라 수청하라. 관청으로 말하자면 네 집 찬장 될 것이요, 운향고는 네 곳간이요, 목전고도 네 곳간 되고, 일읍 주관이 네 손바닥 안이라. 이런 깨판 또 있느냐?”

춘향이 여쭈오되,

“원정에 아뢴 말씀 분간이 없삽고, 다시 분부 이러하오시니, 노비 신분에서 놓여나온 후는 관기가 아니옵고, 도련님 가신 후로 밖에 나오지 않고 수절하여 만으로 나눈 것의 하나라도 열녀의 본을 받고자 마음에 새겼사오니 분부 거행은 못하겠소.”

신관이 이낭청 불러 하는 말이,

“계집의 한두 번 태도는 응당 예전부터 내려오는 관습인 줄 아느냐? 없으면 맛이 없으니.”

“글쎄. 그러하외다.”

사또 춘향에게 달래는 말이,

“네가 그때에 아이들끼리 만나 살고, 딸기 맛보듯 하여 새콤한 맛에 그리하나 보다마는, 하룻비둘기가 재를 넘느냐? 그러하기로 저런 설움을 보는구나. 네 어른의 우거지국에 쇠옹두리뼈 넣은 듯한 크고 깊은 맛을 보아 무궁한 재미를 알 양이면 깜빡 반하리라. 이 사람, 이낭청. 내가 평양 서윤 갔을 제, 금절이년 수청 들어 삼천 냥 내리고, 그 외에 앞뒤로 만난 기생 준 것은 하도 많아서 셀 수가 없는 줄 아는가? 나는 어찌한 성품인지 기생들을 그리 주고 싶은데.”

이낭청 대답하되,

“글쎄 그러하외다. 사또께서 대동 찰방 갔을 제, 관비 한 년 데리고 자고, 그 년의 비녀까지 빼앗고 돈 한 푼 아니 주었지요. 또 운산 현감 갔을 제, 수급이 한 녀석 데리고 석 달이나 수청 들이고 쇠전 한 푼 아니 주고, 도리어 저의 은가락지 윤을 내 주마 하고 서울 보내었지요. 언제 평양 서윤 영변 부사 가서 기생에게 그리 후히 내리었소?”

신관이 기가 막혀 눙쳐 하는 말이,

“이 사람 실없는 말로 놀리지 마소. 저런, 아이들 곧이듣네. 여보아라, 저 말 곧이듣지 마라. 그럴 리가 있느냐? 날을 사귀어만 보아라. 알아듣느냐? 생각하여 보아라. 노류장화는 사람이 누구나 꺾을 수 있음이라. 천만의외에 너만 년이 정절, 수절, 성절, 덕절하니 그런 좀스러운 절을 말고, 큼직한 해주 신광절이나 하여라. 네가 수절을 할 양이면 우리 대부인은 딱 기절을 하시랴? 요망한 말 다시 말고 바삐 올라 수청하라.”

춘향이 여쭈오되,

“자고로 열녀 하되 때가 없으리오. 양가죽을 입고 낚시질하던 엄자릉도 간의대부 벼슬 마다하고 자릉대에서 피해 살고, 절개 시킨 백이 숙제 주나라에 속한 것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서 채미가를 불렀으며, 천하의 신선 진도남도 화산의 석실에서 수도하고, 순임금의 두 왕비는 피눈물을 흘렸고, 유한림의 사부인도 수월암에서 숨어 지냈고, 낙양 의녀 계섬월도 천진루에 글을 읊어 평생 수절하였다가 양소유를 따라가고, 태원 땅 기생 홍불기도 난세에 뜻을 세워 만 리 길에 군대를 따라가며 을 따라가며 남편 이정을 따랐으니, 몸은 비록 천하오나 절개는 막는 법이 없사오니, 물밑에 비친 달은 잡아내어 보려니와, 소녀의 정한 뜻은 이생에서 빼앗지 못하오리이다. 한 가닥 이 마음을 통촉 슬프게 여기어서 놓아 주옵소서.”

“이 사람, 이낭청. 요사이 기생짓 하는 계집이 오르라 하기 무섭지. 어여쁘지 아니한 것들이 어여쁜 체하고 분 바르고 연지 찍고 궁둥이를 뒤흔들면서 장마개구리 호박잎에 뛰어오르듯 신발 신은 채 마련 없이 덤벅덤벅 오르건마는 이것은 제법 반반한 계집의 행실이로세.”

이낭청 대답하되,

“나 보기에는 썩 들어 잡아 경계 반반한 계집이라 할 길도 없을 듯하고, 또 이제 바른 말씀이지. 하 그리 경계 없단 말할 길도 없소.”

“이 사람, 자네 말대답이 한 곬로 하는 일이 없고, 검은뿔을 가로로 박듯이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 쯤에서 뭉그러지게 하니, 그 어이한 말대답인고. 괴이한 인사로세.”

이낭청, 대받아 대답하되,

“또 이제 전혀 괴이한 인사 아니라 할 길도 없고, 또 괴이한 인사라 할 길도 없소.”

사또, 눈쌀 찌푸리고 하는 말이,

“자네는 왜 이리 씨양이질하노. 허허 괴이한 손이로고.”

홧김에 울부짖어 짐짓 호령하되,

“요년, 춘향이라 하는 년의 딸년아. 오르라 하면 썩 오를 것이지 무슨 잔말을 그다지 잔망스럽게 하노? 모양이라도 한 번 두 번이지 얼마 맞으면 슬플꼬? 어서 오르고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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