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VII. 신관 부임 (4/4)

New-Mountain(새뫼) 2020. 6. 2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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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춘향이를 불러서 이제 바삐 현신시키라

 

 

신관이 이 말 듣고 놀라 하는 말이,

“어허, 세상의 변괴로다. 입에서 아직 젖내 나는 아직 어린아이들이 첩, 첩, 첩이라니, 또 본디 기생년이 수절 말이 가소롭다. 까마귀 학이 되며 각 관청 기생들이 열녀 되랴? 이제로 바삐 불러 현신시키라.”

형방이 명을 듣고 관속 불러 분부하니, 관속들이 분부 듣고 한걸음에 바삐 나와 춘향이 부르러 갈 제, 춘향이 본디 재주가 높고 도도하며 말씨와 행동이 매몰차고 높은지라. 관속들이 꺼리고 싫어하더니, 팔 척이나 되는 군노사령 훨쩍 뛰어나가는 거동 보소.

산짐승털 벙거지, 털모자 안에 넓은 단을 안을 올려, 말총증자, 굴뚝상모, 눈 고운 공작 꼬리를 당사실로 엮어 달고, 성성전 징도리, 밀화 징도리, 은영자 넓은 끈에 날랜 용 자 떡 붙이고, 환도 사슬 걸어 차고, 화류장도 끈을 달아 배와 가슴에 비껴차고, 넓고 큰길로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바삐 가며 이를 갈고 벼르면서, 서로 의논하는 말이,

“여보아라, 여숙아. 내가 틀린 말이 있거든 아무리 같은 직책이라도 곧 욕을 하여라.

아이년 이도령하고 한창 이렇다 할 제, 하루는 도령 아이 보러 들어오는 때에, 내가 마침 문을 보다가,

‘이 애, 춘향아 너무 그리 마라. 도령님 보고 나오는 길에 비장청에 들어가서 서초 조금 얻어 가지고 오려무나. 언제라 언제니. 네 덕에 빨강 담배 맛 조금 보잤구나.’

이리하였지. 어느 실없쟁이 아들이 틀린 말 하였겠느냐? 그 아이년이 말하는 것을 개방귀로 알고, 우리를 도무지 터진 꽈리로 알아 눈을 거들떠도 보지 아니하고, 홈치고, 감치고, 대치고, 뒤치고 뺑당그르치고 들어가니, 말한 내 꼴 어찌 되었나니.

네면 어떻게 분하겠나니. 괴이하고 버릇없는 말이다마는 한다 하는 토포행수 병방군관, 육방아전, 삼반관속이라도 늘 하는 짓은 저에게 설설 기는 체 하거니와, 무슨 일이 오래도록 꺼리는 일이 있는지 앙심을 잔뜩 먹고 있다가, 매라도 칠 양이면 엄지가락을 진득 눌러 속으로 곯게 엉덩이를 끊는 수가 있거든.

하물며 저 같은 게, 어허 절구통이 생긴 년 같으니, 그 말 곧 하려 하면 넋이 오르더라. 제 이도령이란 것이 무엇이니? 강물은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는 법이라. 우리네는 매양이지. 이번에 불러다가 만일 매가 내리거들랑 너도 사정 두는 놈은 내 아들놈이니라.”

하고, 춘향의 집 들어간다.

이놈의 심술들은 화승총에 도화선이 꼬인 듯하고, 동풍 안개 속에 수숫잎 꼬인 듯하며, 망건 뒤에 부등깃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수가 틀리면 찰시루를 쪄서 놓고 밤낮 보름을 빌어도 이가 아니 드는 놈들이라.

성화같이 달려들어 대문 중문 박차면서 벌떼같이 뛰어들어 춘향이 부르기를 반공중에 뜨게 불러 멀고 가까운 산천이 떠 들렸다. 호통하며 들어올 제,

“일이 났다, 일이 났다. 이놈의 죄에 저놈이 죽고, 저놈의 죄에 이놈이 죽고, 네 죄에 나 죽고, 내 죄에 너 죽어 뭇주검이 나겠구나.”

하며, 모진 범이 행랑채에 달려들며, 주린 개 미역죽에 달려들 듯, 우레 진동하는 듯하더라.

이때 춘향이는 이도령만 생각하고, 복숭아꽃 자두꽃이 활짝 핀 봄날의 으스름달밤과, 가을비에 젖어 오동잎이 떨어질 때에 눈물 섞어 한숨 지고, 먹어도 맛있지 않고, 잠을 자도 편안하지 않으니, 옥 같은 귀밑머리와 발그스레한 붉은 얼굴이 초췌하고 자연히 허리띠도 느슨해지니, 초가집에서 보는 달에 마음 절로 상하고, 밤비 속의 말방울 소리에 장이 끊어지더라.

모든 일에 뜻이 없고 경황이 없어 옥 같은 피부에 꽃다운 몸을 버려 잠자리에 던져두고, 일편단심 임 생각에 죽어지라 소원을 하고,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재미가 전혀 없어 긴 탄식 짧은 한숨 일을 삼아 사라질 듯이 정신을 잃고 녹는 듯이 말없이 가만히 있어 시름없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잇따라 이부자리에 모든 일을 후리치고 식음을 전폐하고, 아주 산송장이 되어 한양만 바라고 밤낮으로 두 손을 보아 빌 뿐이러니, 금일도 북쪽을 시름없이 바라보고 슬픈 눈물을 금치 못하고 누웠더니, 이 소리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 앉아 유리 구멍으로 열어보니, 예전에 혐의 있는 놈이 모두 골라 나왔구나. 마음에 곰곰 헤아리니,

“분명 관가에 무슨 중병이 났나 보다. 어찌하여야 옳단 말인고. 벌써 일이 이리되었으니 애걸이나 하여 보자.”

훨쩍 뛰어 내달으며 붉은 입술과 흰 이를 반쯤 열고 미소를 머금고 고운 자태로 손뼉 치고

“애구나. 저 손님, 보고지고, 반갑기도 그지없고 기쁘기도 측량 없네. 최패두 오라버니 그사이 평안하오? 이패두 아주버니 요사이 안녕하오?

형님네들과 아주머니 태평하시고, 집안에도 연고 없이 지내오? 어린아이들도 잘 자라고 제씨네도 평안하고 건강하오? 종씨네도 잘 다니오? 벼슬 일은 일이 많지 아니하오? 이번 사또 뫼시러 서울은 평안히 다녀와서 먼 길에 병이나 아니 났소? 그전 우리에게서 가져간 강아지 요사이는 매우 컸지요?

그사이 어찌하여 한 번도 못 오시든가? 구실에 다사하여 못 오던가? 지날 길이 없어 놀면서도 못 오던가? 사람들도 무정할사 어찌 그다지 발을 끊었노? 내 몸 하나 병이 들어 적막한 강산 누었으니 병으로 누워 있어 세상일이 다 끊어졌는데 한 번이나 와 본다면 무슨 하늘에 벼락 칠까? 세상에 야속들도 하오. 이패두 아주버니, 내 말 들어보오. 한 번 그때에 아제 문 지킬 제, 날더러 서초 말하기에 대답도 아니하고 들어갔더니, 필경 나를 야속히 알아 계시지요?

그 바로 전에 나하고 마주 서서 말한 사람을 염탐하였다가 뒤대청에 앉기를 은근히 하고, 비밀이 잡아들여 흉하고 잔인하게 형벌을 내리는 것을 보았기로, 아제도 그렇게 해로울까 하여 반가운 손님을 보아도 인사도 변변히 못하는 터이기로 들을 만하고 들어갔더니, 그때에 그런 자세한 속 모르고 응당 어떠히 알았지요?

마음먹고 들어가서 도련님 보고 나오는 길에 비장청에 들어가서 서초 얻어 휴지에 싸서 허리춤의 넣고 아제를 주자 하고 삼문 간에 나와 보니, 아제는 어디에 가고 다른 패두 문 보기로, 바로 집으로 가서 보고 이런 말씀이나 하고 들이자 하였더니, 도련님이 뒤를 따라 어느 사이 나오기로 바로 집으로 와서 그리저리 틈이 없어 우리 어머니더러 부탁하되, 아제 집의 가서 보고 그 사연이나 전하여 달라 하였더니, 어머니도 건망증이 있어 진작 가지 못하였고, 도련님 올라가신 후 어느 날 조용하기 한 번 가니 아주머니 혼자 계셔 아제는 서울 갔다 하기에 섭섭히 돌아와서 그렁저렁 이때까지 한 번도 못 만나서 이런 정담 못하였네.”

곱디 고운 손가락을 늘여서 이패두의 손을 잡고 방안으로 들어가며 하는 말이,

“하, 오랜만에 만났으니 술이나 먹고 노사이다. 관의 명령을 받은 일로 왔나? 심심하여 날 찾으러 왔나? 무슨 바람이 불어 왔노? 내가 꿈을 꾸나 그리던 정을 오늘이야 펴겠네. 반가울사 귀한 객이 오늘 왔네. 사람 그리워 못 살겠네.”

이렇듯이 아양으로 사람의 간장을 농락하니, 저 패두놈 거동 보소.

이전 일 생각하니 오늘 일이 의외로다. 이전에 크게 칭찬하여 말하기를 도솔궁 선녀이러니, 오늘날 치켜 줄을 거짓 행동인 줄 정녕히 알건마는, 분길 같은 고운 손으로 북두칠성 끝에 달린 갈고리처럼 험한 저의 손을 잡은지라.

고개를 빼지우고 내려다보니, 제두리뼈가 시근시근 돌같이 굳은 마음 봄바람 부는 강 위의 살얼음같이 육천 뼈마디가 다 녹는다.

저의 둘이 서로 보며,

“이 애, 여숙아. 사람의 마음이 물같다 이른지라. 이 아이 형상을 잠깐 보니 내 마음은 간데없다.”

여숙이 대답하되,

“그런 줄 몰랐더니, 너는 매우 모질구나.”

이패두 이른 말이,

“네 말은 어찌한 말이니?”

최패두 하는 말이,

“나는 그 형상 보기 전에 이 애 일만 생각하여도 마음이 아즐아즐하고 바아지는 듯하더니, 아까 이 집으로 들어오니 잔뼈는 다 녹고 굵은 뼈는 다 초친 무럼의 아들이 되고, 공연이 온몸이 절절 저려오니 도무지 이러니저러니 말하기 싫더라마는, 아까 네가 날더러 하던 말을 아서라 말아라 하기는 동료의 정을 꺾는 듯하여 말을 아니하고 들을 만하였다마는, 도무지 그 일이 대단치 않은 일에 마음이 너그럽지 못하여 하잘 것도 없고, 또 한밤 잔 원수가 없다 하니 벌써 언제 한 일을 이때까지 미안히 아는 것이 우리가 도리어 그럴듯하지 못한 모양 같고, 또 제 말을 들으니 정녕히 세세한 속 마음이 그러한 일이 시들어 떨어지지 않으면 계속 떨어질 줄 아느냐? 그사이 우리가 한 번도 저를 찾아 문병하지 못한 것이 첫째는 우리가 잘못하였는지라. 저의 다정한 뜻과 같지 못한 줄이 후회로다.”

이패두 대답하되,

“여보아라. 우리네가 괴이한 말 같다마는 악하려 하면 악하고 선하려 하면 선하거든, 그만 일로 영영 죽을지언정 저를 좁게 안단 말이 되는 말이냐? 한번 말하고 품은 뜻을 버리잔 말이지, 어찌 저를 혐의하리오.”

이렇듯이 수작하며 방 안으로 들어가니, 춘향이 삼등초 한 대 떼어내어 백통죽에 담아 붙여 이패두 주고, 또 한 대 붙여다가 최패두 주며, 한 냥 돈 집어내어 아이놈 주며,

“이 건너 김풍헌 집 바삐 가서 황소주에 꿀을 타고 양지머리 차돌박이 어서 바삐 사 오너라.”

주안상을 차려 놓고 술을 부어 권할 적에, 한 잔 두 잔 서너 잔에 네다섯 잔을 기울이니, 아주 마음이 되는대로 풀리어 하는 말이,

“이 애, 무숙아. 우리가 저 아이와 사귄 정분이 어디 있느냐? 어찌 차마 저를 잡아가잔 말이니? 이만 일을 에둘러 묵주머니를 못 만든단 말이냐? 벌써 죽어 장례를 마치고 제 노모만 있어 차마 설워 울더라, 하면 아무 일이 없을까 하노라.”

여숙이 대답하되,

“저를 보니 그 일이 잔인도 하고, 애를 써서 저 모양이 되었는 것을 그리 성화하여 굳이 잡아가잘 것은 없으되, 만일 남의 사정을 몰래 알아내어 날나리가 나는 판에 우리에게 죄 내리는 것은 시들부들하다마는 부썩 잡아들이라 하면 네 어미나 대신 바치려느냐?”

춘향이 묻는 말이,

“대저 이것이 어인 곡절인가? 관계된 일이나 알고 가세.”

이패두 이른 말이,

“통인의 윤득이가 방정맞고 입 빠른 줄 너도 자세히 알거니와, 네 말을 톡톡 떨어다가 사또 귓구멍에 달구질을 하였고, 또 사또라도 아는 법이 모진 바람벽 뚫고 나온 중방 밑 귀뚜라미의 아들이라. 서울서부터 네 소문을 온통으로 역력히 자세히 다 알고 내려와서 기생 점고할 제 형방 집리가 수습하려다가 못하여, 기어이 불러들이라 말하고 억울하고 한스러운 일을 만들었으니, 우리 탓이라고는 할 수 없음이라. 우리는 조금도 염려 마라.”

춘향이 이 말 들으매,

“수청 면키 어렵도다. 애고, 이를 어찌할꼬?”

하며,

“필경 이런 일이 있어도 하고 원정 지어 두었더니라.”

하고, 꺼내어 품에 품고 돈 닷 냥 내어다가 패두 주며 하는 말이,

“이것이 약소하나, 관청 안에 패두님들과 함께 술잔이나 지내시오.”

여숙이 왼손으로 받아 차며 하는 말이,

“아니 받는 것은 네 정을 막는 것이기 받기는 받으나, 또한 실로 받아 가야 나는 일 푼 간섭 없다마는, 네게 무엇 받는 것이 얼굴이 뜨뜻하다. 어떠하던지 우리네가 잘 꾸며 볼 것이니 아무렇거나 그만 있거라.”

하고 두 놈이 크게 취해 서로 마주 이끌고 관정의 들어갈 제, 매우 정신을 차리나 아주 취하여 겨우 들어가 관가에 고할 제 혀를 제대로 놀려 말을 똑똑히 하지 못하여,

“춘향이 잡으러 갔던 패두 지금 아뢰오.”

사또 분부하되,

“춘향이 불러 대령했느냐?”

두 놈이 꼼지락거리며 아뢰되,

“춘향이요? 죽었소. 어찌하여 죽었소.”

“이놈 어찌하여 죽었다고?”

하더니,

“그리하래요.”

“뉘가 그리하라드니?”

“글쎄올시다. 춘향이가 술잔인지 먹이옵고, 또 돈 닷 냥인지 주면서 그리하래요.”

이패두 말을 자르면서

“쉬, 이놈아. 그 말은 왜 아뢰나니?”

최패두가 또 아뢰되,

“여보옵시오. 이놈, 보옵시오. 그 말을 아뢰오지 말라 하고 옆구리를 콱콱 찌르옵니다.”

사또 분부하되,

“이놈, 너는 무슨 말을 말라고 그놈을 찌르나니?”

이패두 아뢰되,

“아니올시다. 급히 다녀 들어 오옵노라고 등에 땀이 나서 가렵기에 긁노라 하오니, 팔로 그놈을 건드렸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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