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VIII. 춘향 시련 (4/4)

New-Mountain(새뫼) 2020. 6. 2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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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관장을 능욕하니 각별히 매우 치라

 

저 사또의 거동 보소. 맹호같이 성을 강변에 덴 소 뛰듯 목을 끄떡 움치면서 벽력같이 소리하여 좌우 나졸 엄포하되,

“조년 바삐 내리라.”

벌떼 같은 사령 나졸 와락 뛰어 달려들어 춘향의 머리채를 비단 가게에서 비단 감듯, 잡화가게에서 연줄 감듯, 당도리 사공 닻줄 감듯, 감쳐 풀쳐 풀쳐 감쳐 길 남은 중계 아래 동댕이쳐 끌어 내려 형틀 위에 올려 매고 형방이 다짐 쓴다.

“아뢰건대 본시 창녀의 무리이거늘, 사태를 돌아보지 않고, 수절, 명절이 어찌 된 곡절이며, 또 새로운 정사를 펴려는 중에 관의 영을 거역할뿐더러, 관원에게 발악하며 능욕 관장하니, 일의 끝이 해괴하게 되어 더할 수 없이 매우 심함이요, 죄는 응당 만 번 죽을만함이라. 엄한 형벌을 내리고 무겁게 다스려도 각오한다는 다짐이니, 자백하는 문서에 수결하라.”

좌우 나졸 엄포할 제, 춘향의 여린 간장이 봄눈 스듯 다 녹는다.

“올려 매었소.”

“갖은 매 대령하라.”

집장뇌자 거동 볼작시면, 키 같은 곤장, 한 길 넘는 주장이라. 형장, 태장 한아름을 안아다가 좌우에 촤르륵 쏟아 놓고,

“갖은 매 대령하였소.”

사또 분부하되,

“만일 저년을 사정 두는 폐단이 있으면 너희를 곤장 모서리로 앞정강이를 팰 것이니 각별히 매우 치라.”

청령집사 앞에 서서,

“매우 치라.”

집장뇌자 거동 보소. 형틀 앞에 썩 나서며 춘향을 내려다보니 마음이 녹는 듯 뼈가 저리고 두 팔이 기운이 없이 저 혼자 하는 말이,

“이 거행은 못 하겠다. 이유 없이 벼슬에서 쫓겨날지라도 차마 못할 거행이라.”

이리 주저하는 차에 바삐 치라 호령 소리 북풍한설 된서리라. 한 뇌자놈 달려들어 두 팔을 뽐내면서 형장 골라 손에 쥐고, 형틀 앞에 썩 나서서,

“사또 분부 이렇듯이 엄하신데 저 애를 어찌 아끼리까? 한 매에 죽이리다.”

두 눈을 부릅뜨고 형장을 높이 들어 검장 소리 발맞추어 번개같이 후려치니, 하우씨 강물을 건널 제 배를 지던 저 황룡이 굽이를 펼쳐다가 푸른 바다를 때리는 듯, 여름날 급한 비에 벼락 치는 소리로다.

백옥 같은 고운 다리뼈가 부서지며 갈라지니, 붉은 피가 솟아나서 좌우에 빗발치듯 뿌리는지라. 춘향이 일신을 모진 광풍에 사시나무처럼 발발 떨며 독을 내어 하는 말이,

“죽여주오, 죽여주오. 어서 바삐 죽여주오. 얼른 냉큼 죽이시면 죽은 혼이라 날아가서 한양성 중 들어가서 우리 도련님 찾으리니, 그는 사또의 덕택이올시다. 수절을 죄라 하면 식칼로 형문을 치옵소서.”

고개를 빼고 눈을 감으니, 옥같이 깨끗한 마음과 난초 같은 아름다운 기질, 연꽃 같은 모습이 순식간에 변하여, 찬 재 되고 살점이 늘어지고 백골이 드러나며 맥박이 끊어지니 살기를 바랄쏘냐.

좌우에 구경하는 이들이 가슴이 타는 듯 모두 눈물을 머금고 대신 맞으려 할 이 많아 다투어 들어가려 할 제, 사또의 마음인즉 뒤가 물러 이 형상을 보고, 인물을 아주 언짢아하고 혀를 차며 속으로 하는 말이,

“아무리 무지한 시골놈인들 주리로 죽일 놈이로다. 저리 고운 계집을 그리 몹시 박아 치는 심술이 불량한 망나니 아들놈이 또 어디에 있으리오? 속이 부쩍부쩍 조여 못 보겠다. 인물이 저만하니 마음인들 굳으리라마는 그다지 아득하여 깨닫지 못하는가.”

이렇듯 아끼면서 삼십 대 형벌로 볼기를 몹시 치니 말로 못할 못된 모습이로다.

“이 사람, 이낭청. 고년이 그런 줄 몰랐더니 맵기가 곧 고추로세. 종시 풀이 아니 죽네. 그러나 내가 처음 부임해서 살인하기는 어떠한지?”

“글쎄, 그러하외다.”

“이 사람, 무엇을 글쎄 그러하다 하노?”

옥사쟁이 불러 분부하되,

“저년을 갖다가 가두되, 다른 죄수는 하나도 두지 말고 저 하나만 똑 가두어 착실히 엄중하게 가두어라.”

옥사쟁이 분부 듣고, 매우 착실히 뵈려 하고 대답하되,

“저를 칼 씌워서 소인이 함께 내려가, 소인의 집의 기별하여 밥을 하여다가 먹고 앉으나 누우나, 한 차꼬에서 밤낮으로 맞붙들고 당직만 하오리다.”

“이놈, 너는 윗간에서 지키되, 바로 보지도 말고 돌아앉아서 각별히 지키어라.”

옥사쟁이 분부 듣고, 크나큰 전목칼을 춘향의 가는 목에 선봉대장 투구 쓰듯 흠썩 쓰인 후에, 칼머리에 봉인을 하고, 거멀못으로 수습하고 옥중으로 내려갈 제, 약하고 약한 약골인 저 춘향이 호된 매를 삼십 맞았으니, 제가 어이 다시 일어서리.

겨우겨우 부축하여 관문 밖에 나올 적에 한걸음에 엎어지고 두 걸음에 쓰러진다.

걸음마다 사슬 소리 이어나며 간장 다 녹는다.

칼머리를 손의 들고 울며 하는 말이,

“나의 죄가 무슨 죄인고. 나라의 곡식을 훔쳐 먹었던가. 엄한 형벌로 무겁게 다스림이 무슨 일인고. 살인죄인 아니거든 칼과 족쇄 웬일인고. 애고, 애고, 설운지고. 이를 어이하잔 말인고. 죄가 있어 이러한가, 죄가 없어 이러한가. 한없이 멀고 푸른 하늘 증인 되어 한 말씀만 하여주오.”

이렇듯이 울며 관문 밖에 내달으니, 춘향 어미 거동 보소. 센머리를 흩어버리고 두 손뼉을 척척 치며,

“애고, 이것이 웬일인고. 신관 사또 내려와서 백성을 잘 다스리지 아니하고 생사람 죽이러 왔네. 생금 같은 나의 딸을 무슨 죄로 저리 쳤노. 무남독녀 외딸로서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어서 쥐면 꺼질까, 불면 날까. 쓴 것은 내가 먹고 단 것은 저를 먹여 고운 의복 좋은 음식 밤낮 없이 돌보면서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기며 길러낼 제, 이런 몹시 힘들고 어려운 지경을 꿈속에나 생각하며 뜻에나 먹었으랴? 애고, 답답 설움이야. 이를 어이 하자는 말인고.”

칼머리를 받아 들고 데굴데굴 구르면서,

“애고, 애고, 설운지고. 남을 어이 원망하리. 이것이 다 네 탓이라. 네 아무리 그리한들 닭의 새끼 봉황이 되며, 각 관의 기생 열녀 되랴? 사또 분부 들었다면 이런 매도 아니 맞고 작히 좋은 깨판이랴? 돈 쓸 데 돈을 쓰고, 쌀 쓸 데 쌀을 쓰고, 꿀병 기름 조기를 늙은 어미 잘 먹이지. 헤어지고 나면 멀어진다 하니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이하니 기생 되고 아니하랴? 나도 젊어서 친구 볼 제 높이 보면 감병 수사, 낮춰 보면 각읍 수령 무수히 겪을 적에 돈 곧 많이 줄 양이면 일생 잊지 못할레라. 심란하다. 수절 수절 남절이 수절이냐? 훗날 만일 또 묻거든 잔말 말고 수청들어 이익이나 찾으려무나. 너 죽으면 나도 죽자. 바라나니 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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