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VII. 신관 부임 (3/4)

New-Mountain(새뫼) 2020. 6. 2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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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남원 고을 기생들을 점고차로 대령하라

 

통인 불러 좌수 몰아 쫓아내라고 한 후에,

“여보아라, 삼반관속들이 나를 경계에서 맞이하느라고 먼지를 쐬고 바쁘게 들어왔으니, 다른 점고는 다 제쳐 놓고, 그편에 있는 기생 하나도 빠지지 말고, 점고 차례로 대령하라. 네 고을이 큰 고을에 미인이 많은 고을이라 하니, 기생이 모두 몇 마리나 되나니?”

이방이 아뢰되,

“원기와 이속, 비속, 공비, 대비 합하여 계산하오면, 합이 오십 명이 되옵나이다.”

“어허. 매우 마음에 드는구나. 기생의 이름이 붙은 것은 하나도 새어나지 않게 하고 톡톡 떨어 점고에 다 현신하게 하라.”

이방이 명을 듣고 나와서, 모든 기생에게 말이나 글로 알려주고, 수군수군 모여 의논하되,

“이 사또 알아보겠다. 사또가 아니오. 백설이 풀풀 흩날릴 제, 깔고 앉는 개잘양의 아들놈이로다.”

의논이 분분하고, 창빗아전은 겸 형방이라. 수노 불러 기생 명부 들여놓고 차례로 점고할 제 남원 명기 다 모였다.

신관이 차례로 대강 살펴보고, 형방 아전 큰 소리로 높여 호명할 제,

 

“가을 한창 팔월 보름날 밤에 광명 좋다, 추월이 나오.

하얗게 꾸민 벽에 비단을 바른 창안에 고요하고 적적하여 한가하다, 향심이 나오.

오동나무 거문고를 타고 나니, 탄금이 나오.

사마상여 거문고 소리에 탁문군의 정욕이라. 오동나무 달빛 아래 봉금이 나오.

짙은 검푸른 빛을 지닌 남전에서 나는 아름다운 옥이라. 두 나라의 보배 금옥이 나오.

무릉도원 깊은 곳을 찾아가니, 무릉도원에 봄빛이 물에 어리었다. 버들이 푸른 이월 삼월 봄날에 온갖 생명이 번화하니 춘단이 나오.

신혼 방의 비단 창문에 비친 달을 온 나라의 백성들이 사랑하니, 애월이 나오.

강남에서 연밥을 따는데 지금 이미 날을 저물었구나. 물속의 아름다운 여인 부용이 나오.

원앙금침 속에서 봄 꿈이 어지러우니, 네가 분명한 영애로다. 어서어서 나오너라. 옥토끼가 약을 찧는 달나라에 비껴 섰는 계월이 나오.

모란처럼 천하에서 아름다운 너를 보니 눈 같은 피부에다 꽃 같은 얼굴이로다. 승옥이, 너도 저 마치 서거라.

영명사를 찾아가니, 명사십리 늦은 봄에 설도 같은 해당춘이 나오.

낙빈왕이 즐기던 달빛인가, 동쪽 언덕에 초생달 뜨니 명월이 나오.

춘하추동 네 계절에 밝은 빛이 좋다, 월색이 나오.

가는 비가 봄바람에 난간으로 향했으니 꽃 중에 부귀한 모란이 나오.

늦단풍이 이월의 꽃보다도 더 붉으니 강산에 봄빛이 풍성한 외춘이 나오.

축축 늘어진 큰 소나무는 군자의 절개이니, 네 계절 푸른 송절이 나오.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었더니, 스승님은 약초 캐러 가셨다더라. 운심이 나오.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 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로다. 선월이 나오.

서쪽 정자에는 강 위의 달이 뚜렷이 밝았는데, 동쪽 누각에서 설중매 나오.

은하수에 놓인 오작교에 칠월칠석 강선이 나오.

허리춤에 채인 환도 빼어 들고나니, 천금이 나오너라.

한밤중에 미인이 오니 쪽문 안에 봄빛 매화로다. 나오너라.

주황 당사 벌매듭을 차고나니, 금낭이 나오.

양금, 단소, 거문고에 맞춰 맑은 노래에 묘한 춤을 추는 혜란이 나오.

꽃 같은 얼굴과 고운 모습으로 한 조각의 얼음 같은 명심이 나오.

나는 꽃을 제기 차니 봄바람 불어 꽃잎이 풍성하고 우거지고, 명주 실타래가 풀리듯 이어지는 나무 그늘 깊은 곳에 앵앵이 나오.

삼월 동풍에 꽃이 가득하고 강 가득 꽃비 내리는 금강에는 꽃향기와 달빛이 어려 좋은데, 강남의 푸른 물 위에 연잎이 나오

첩첩한 청산에 썩 들어가니 어부가 없다. 범덕이 나오.

안고름의 향낭이, 겉고름의 부전이, 비에 털녜, 비에 뻥네, 어서어서 나오너라.”

한창 이리 점고할 제, 사또 참지 못하여

“아서라. 점고 그만하여라. 조기, 조 대강이, 일곱째 섰는 조년 나이 몇 살이니?”

“서른한 살이올시다.”

“아서라. 계집이 삼십이 넘으면 단물이 다 나느니라. 너도 저만치 바깥 줄로 서 있거라. 저기 얼굴 허연 저년은 이름이 무엇이니?”

“영애올시다.”

“나이는 몇 살이니?”

영애 생각하되,

‘서른한 살에 단물이 났다고 물러났다 하였으니 날랑은 바싹 줄여보리라.’

하고, 사십이나 거의 된 년이 염치없이

“열세 살이올시다.”

사또 호령하되,

“조년 뺨쳐라.”

영애 겁내어 또 아뢰오되,

“소인이 대강 먼저 아뢴 나이올시다.”

“그러면 온통 나이는 얼마나 되나니?”

겁결에 과히 늘려서 아뢰오되,

“쉰세 살이올시다.”

사또 골을 내어 하는 말이,

“한서부터 주리를 할 년들. 더벅머리 댕기 치레하듯, 파리한 강아지 꽁지 치레하듯, 꼴 어지러운 것들이 이름은 무엇이니 무엇이니, 나오너라 나오너라. 거 원, 무엇들이니 하나도 쓸 것이 없구나. 아까 영애 긴 영 자 사랑 애 자, 어허 구워 죽일 년 같으니. 이마 앞 짓는다고 뒤꼭지까지 다 벗겨지도록 머리를 생으로 다 뽑고, 밀기름 바른다고 청어 굽는 데 된장 칠하듯 하고, 연지를 뒤벌겋게 온 뺨에다 칠하고, 분칠은 회시하는 놈의 회칠하듯 하고, 눈썹 지었다고 양편에 똑 셋씩만 남기고, 어허 주리에 알머리를 뽑을 년 같으니, 뉘 돈을 먹으려고 열세 살이오? 눈꼴 하고 닭도적 년 같으니, 이년 목을 휘어 죽일 년들, 모두 다 몰아 내치라. 원기라 하는 것이 그뿐이냐?”

형방이 눈치 알고 대여 부르되,

“전비 춘향이 쉬오.”

사또 역정 내어 하는 말이,

“옳다. 춘향이란 말 반갑구나. 어이하여 이제야 부르나니, 춘향이가 뻥녜 아래란 말이냐?”

“저어하오되, 아직 나이 어린 고로 그러하외다.”

“그러면 무엇무엇 여럿을 부르지 말고, 거꾸로 그 하나만 불렀다면 그만 깨판이로구나. 그러나 그는 왜 ‘나오’ 말이 없고, ‘쉬오’ 하니? 웬일인고?”

“아뢰옵기 황송하오되, 기생 중 노비 신분에서 놓여나 천민에서 벗어나서 기생 명부에 없나이다.”

사또 정신이 시원하고 상쾌하여 하는 말이,

“내가 서울서부터 들으니 향이라는 이름이 아주 유명하시더구나. 이사이 평안하시냐? 또 그 대부인 월매씨라든지, 그도 평안하시냐?”

“네, 아직 무고하신 줄로 아뢰오.”

사또 연하여 나가 앉으며, 이렇듯 경계에 반반하게 인사한 후에 다시 분부하되,

“춘향을 일시라도 지체 말고 속히 불러 대령하라.”

형방이 여쭈오되,

“제 몸은 무병 하오되, 구관 사또 도임시에 책방 도련님과 백년해로 기약하여 대비 정속하고 지금 수절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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