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IX. 남원 왈짜들 (3/4)

New-Mountain(새뫼) 2020. 6. 27. 17:58
728x90

다. 춘향아 언문책을 읽을 테니 들어보게

 

또 한 왈짜가 언문 책 본다.

“이날 큰 강 중에 화염은 하늘에 퍼져 가득하다 함성은 크게 떨치는데, 좌편은 한당, 장흠 양쪽의 노 젓는 군대가 적벽 서쪽으로 짓쳐오고, 우편은 진무, 주태 양쪽 노 젓는 군대가 적벽 동으로 짓쳐오고, 가운데는 주유, 정보, 서성, 정봉의 크나큰 배들이 불기운을 끼워 삼강구로 일시에 짓쳐 들어오니, 불기운은 바람을 돕고 바람은 불 위엄을 도우니, 이 이른바 삼강 수전이요, 적벽 오전이라. 북군이 화살 맞으며 불에 타며 물에 빠진 자가 너무 많아서 그 수효를 헤아릴 수가 없음이러라.

 

한 왈짜가 하는 말이,

“나는 <수호지(水滸志)> 보겠다.

각설, 송강이 강주성 밖에 나와 대종, 이규, 장순 등을 만나지 못하고, 홀로 마음이 심심하매 느리게 걸어 나가 경개를 구경하며 나아가더니,

한 술집 앞을 지나며 우러러보니 푸른 술집 깃발을 달았는데, 심양강정고라 하였고, 처마 밖에 소동파의 글씨로 심양루라 썼거늘, 송강이 이르되,

‘내 운성현 있을 제 들으니, 강주의 심양루가 좋다 하더니 과연 옳도다. 내 비록 혼자 왔으나 그저 지나지 못하리라.’

하고, 누각 앞에 다다라 돌아보니, 문가의 주황 칠한 기동 위에 분칠한 팻말 둘을 달고, 각각 다섯 자로 썼으되, 이 세상에서 비교할 데 없는 술이요,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누각이라 하였거늘, 송강이 누에 올라 난간을 의지하여 눈을 들어보니 아로새긴 처마는 햇빛에 바래고, 그림 그린 들보는 구름에 잠겼으며, 푸른 난간은 창밖에 나직하고, 붉은 장막은 문 위에 높이 달았는데, 취한 눈을 두른 곳에 구름 어린 첩첩한 산은 푸른 하늘을 의지하였고, 푸른 물 긴 강은 정자 기둥을 둘렀는데, 상서로운 구름이 어리었고, 내 끼인 강물에 흰 마름 꽃이로다. 갯벌 어귀에 이따금 배 젓는 할아비 돛 지우는 양을 보고, 다락가에 푸른 실느티나무 멧새 울고, 문 앞 가는 버들에 빛나는 말을 매었더라.”

 

어떠한 왈짜가 <서유기> 본다.

“화설, 삼장법사의 스승 제자가 선당에 쉬더니, 가을 하늘에 달이 심히 밝거늘 산의 어귀에서 나와 달을 구경하더니, 행자가 왈,

‘스승님아, 달도 보름이면 뚜렷하고 그믐이면 이지러져 끝이 있건마는, 우리는 끝이 없으니 언제나 경전을 가져, 동쪽 땅에 전하고 공을 이루리오.’

삼장 왈,

‘스승 제자가 모름이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게으른 마음을 내지 아니함이 옳으니라.’

저팔계 왈,

‘나는 언제나 공을 이루고 음식이나 배불리 많이 얻어먹을꼬.’

행자가 귓바퀴를 치며 왈,

‘이 터무니없는 돼지놈은 매양 음식만 생각하느냐?.’

하니, 모두 웃더라.

삼장이 돌아와 잠이 없어 공작경 한 편을 외우고, 푸개를 베고 졸더니, 문득 잠결에 들으니 선당 밖에 슬픈 바람이 지나며 은은히,

‘장로야.’

하는 소리 나거늘, 삼장이 정신이 흐릿한 중에 머리를 들어보니, 문밖에 한 나이 지긋한 이가가 온몸에 물을 흘리고 섰거늘, 삼장이 꾸짖어 왈,

네 어떤 요괴기에 이 한밤중에 와 나를 희롱하느냐? 나는 욕심 많은 평범한 중이 아니라, 도덕 높은 당황제가 지은 글을 지녔고, 또한 아랫사람에 세 제자가 있으니, 부지런하여 뫼를 만나면 길을 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고, 용을 항복 받느니, 너 천년 요괴 왔다 하면 그저 두지 아니하리니, 바삐 가고 선당 근처에 어른거리지 말라.’

그 사람이 눈물을 머금고 가로되,

‘나는 요괴 아니라 보상국왕이로라.’

하거늘, 삼장이 눈을 들어보니, 과연 용포, 옥대에 평천관 쓰고 백옥규를 쥐었으니, 엄연한 군왕의 얼굴이거늘, 삼장이 놀라 깨어나니 잠자리의 한 꿈이라. 음산한 바람은 습습하고 등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데, 제자들은 잠을 익히 들어 코 고는 소리 우레 같더라.”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