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XI. 어사 이몽룡 (3/4)

New-Mountain(새뫼) 2020. 6. 2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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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무도한 이도령은 영영 소식 끊겼는가

 

멀리 달아나 한 곳에 다다르니 기암 층층 절벽 사이 폭포의 푸른 물이 떨어지고, 계곡 옆 좌우 넓은 바위 위에 자기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이 무수하다. 땀 들여 세수하고 또 한 곳 다다르니 짧은 머리 나무하는 아이 소모는 아이들이 쇠스랑에 호미 들고 <산유화> 소리하며 올라올 제,

“어떤 사람 팔자 좋아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어 염려 없고, 또 어떤 사람 팔자 운수가 사나워 한 몸이 난처하고, 아마도 가난과 추위, 고생과 즐거움을 돌려 볼까.”

또 한 아이 소리하되,

“이 마을 총각, 저 마을 처녀, 남자는 장가 여자는 시집이 제법이다. 일 처리가 공평한 하늘 아래 세상일이 사리의 옳고 그름도 지다.”

어사가 서서 듣고 혼잣말로,

“조 아이 녀석은 의붓어미에게 밥 얻어먹는 놈이요, 조 아이 녀석은 장가 못 들어 애쓰는 놈이로다.”

하고, 또 한 곳 다다르니 농부들이 가래질 부침하고 선소리한다, 그 노래에 하였으되,

 

“천황씨가 나신 후에

인황씨도 나시도다.

얼널 얼널 상사대

수인씨 나신 후에

음식 익혀 먹는 법을 가르치시도다.

얼널 얼널 상사대

하우씨 나신 후에

산을 뚫어 길을 냈단 말인가.

얼널 얼널 상사대

신농씨 나신 후에

온갖 약초를 가려냈단 말인가.

얼널 얼널 상사대

은왕 성탕 나신 후에

큰 가뭄 칠 년 만났으니

손톱 깎고 머리 자는 후에

뽕밭에서 비를 기원한다.

얼널 얼널 상사대

나라가 태평하고 풍년이 들 제

아득하게 넓은 들의 농부들아.

태평세월 이 세계인가.

우리 임금 성덕 아니신가.

얼널 얼널 상사대

갈천씨 적 백성인가.

우리 아니 순박한 백성 아닌가.

잔뜩 먹고 배 두드리는 우리 농부

천만 년 즐거워라.

얼널 얼널 상사대

순임금이 만든 쟁기

역산에서 밭을 갈고

신농씨 만든 따비

천만 년을 유전한다.

얼널 얼널 상사대

남양 융중의 제갈 선생

세상에 이름이 떨치기를 바라지 아니하고

양보음을 읊은 후에

몸소 산의 밭을 갈았구나.

얼널 얼널 상사대

시상의 다섯 버드나무 도처사도

높은 벼슬길을 마다하고

작은 봉급을 멀리 하고

황무지가 된 논밭을 갈았구나.

얼널 얼널 상사대

어와 우리 농부들아.

사월 남풍 보리타작

구십월 볏가리를

우걱지걱 지어봅세.

얼널 얼널 상사대

오곡백곡 지어 내어

우리 임금께 바치고서

남은 곡식 있거들랑

부모 봉양하여 봅세.

얼널 얼널 상사대

봉양하고 남거들랑

처자 식구들 먹여 봅세.

얼널 얼널 상사대

남은 곡식 있거들랑

일가친척 구제합세.

얼널 얼널 상사대

어와 우리 농부들아,

농사하고 들어가서

햇곡식의 배 불니고

기직장수나 달래 봅세.

산승 같은 혀를 물고

연적 같은 젖을 쥐고

굽닐굽닐 굽닐러서

돌송이나 오고 갑세.

얼널 얼널 상사대

우리 농부 들어보소.

불쌍하고 가련하다.

남원 춘향이는

뜻밖에 원통하게 죽단 말인가.

성질이 흉측함 이도령은

영영 끊어져 소식 없단 말가.

얼널 얼널 상사대.”

 

이런 소리 다 들으니 무슨 핑계로 말 물으리오. 별안간 딴전으로 하는 말이,

“저 농부 여보시오. 검은 소로 논을 가니 컴컴하지 아니한지?”

“그렇기에 볏 달았지요.”

“볏 달았으면 응당 더우려니?”

“덥기에 성엣장 달았지요.”

“성엣장 달았으면 응당 차지?”

“차기에 소에게 양지머리 있지요.”

이렇듯 수작할 제, 한 농부 내달으며,

“우스운 자식 다 보겠다. 얻어먹는 비렁뱅이 녀석이 반말지거리가 웬일인고? 저런 녀석은 무게를 알게 혀를 슴베자로 뺄까 보다.”

한 농부가 내달아,

“아서라. 이 애, 그 말 마라. 그분을 솜솜 뜯어보니 주제는 비록 허술하나, 손길이 뽀야니 양반일시 분명하다. 세 폭 자락에 하 맹물은 아니로다.”

한 농부 하는 말이,

“영감. 너무 아는 체 마오. 손길이 희면 다 양반인 게요? 나는 그놈을 뜯어 보니 거지 중 상거지요, 손길을 보니 움 속에서 송곳질만하던 갖바치 아들놈이 분명하오.”

늙은 농부가 묻는 말이,

“어디에서 살며, 어디에로 가시오?”

어사가 대답하되.

“서울에서 살더니 능광주 땅에 친척과 외척 찾으러 가다가, 마침 양기를 회복할 길이 없고, 공교롭게도 점심때니 요기나 할까 하고 앉았지.”

여러 농부가 공론하고 열의 한술 밥으로 한 그릇을 두둑이 주니 어사가 포식한 후 치하하고,

“다시 보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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