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XI. 어사 이몽룡 (1/4)

New-Mountain(새뫼) 2020. 6. 28. 10:47
728x90

XI. 어사 이몽룡

 

가. 어사를 맡기시면 탐관오리 살피오리다

 

차설, 이도령은 경성으로 올라와서 은근히 저를 위한 정이 가슴에 못이 되고, 오장에 불이 되어 구름 낀 산을 시름없이 바라보매, 몸에 날개 없음을 한탄하고 정신을 잃을 듯이 염려되어 밤마다 관산을 넘나드니, 꿈에 다니는 길이 자취 곧 날 양이면, 임의 객창 밖에 돌길이라도 닳으리라. 아무리 생각하여도 하릴없다.

“내가 만일 병 곧 들면 부모에게 불효 되고, 저를 어찌 다시 보리. 학업을 힘써 공명을 이룰 양이면, 부모에게 영광과 효도를 뵈고, 문호를 빛낼진대, 내 사랑은 이 가운데 있으리라.”

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할 제, 한 번 보면 모두 다 기억하는 재주 있는 남아이거든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는 듯 아무 염려할 것이 없도다.

 

이적선은 이미 백골에 서리가 내렸고

일의 끝도 다만 이름만이 아름다운 것을

가련한 한나라는 물러가 어디로 갔는가.

오직 맹나라 동쪽 들판엔 잡초만이 우거졌구나.

황산 계곡엔 낙화만이 흩날리고

백락 하늘가엔 기러기 떼 구슬프다.

두자의 미인도 지금은 간 곳 없고,

연못의 밝은 달도 기운지 오래 됐네.

 

이런 문장 우습구나. 당시에 뛰어난 재주로 글과 글씨가 매우 뛰어나더니,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은 평안하며 시절이 조화롭고, 세월이 풍요롭다. 태평한 시대의 큰 길거리를 평화로운데 격양가는 곳곳에서 들리더라.

나라에 경사가 있고, 덕이 널리 펴져 알성과 뵈시거늘, 시지를 옆에 끼고 춘당대 들어가서 현제판 바라보니, ‘강구에 문동요라.’ 뚜렷이 걸었거늘,

비단 같은 아름다운 마음과 바다처럼 넓은 지식으로 글제를 어떻게 풀어낼까 생각하고, 용미연에 먹을 갈고, 순황모무심필을 반쯤 흠썩 풀어, 왕희지 필법으로 조맹부의 글씨체를 본받아 글씨를 단숨에 써 내려가니 점 하나 보탤 것 없는 문장이라.

첫째로 글을 써서 제출하니, 상시관이 글을 보고 칭찬하여 이른 말이,

“글씨를 볼작시면 용이 움직이는 양 날아오르는 듯하고, 글귀를 볼 양이면 아무래도 귀신이 곡하겠다. 글의 품격은 굴원이요, 문을 쓰는 법은 한퇴지라. 글자마다 비점이요, 구절마다 관주로다. 상지상에 등급을 매겨 장원급제 하겠구나.”

금방에 이름 쓰고,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고, 임금이 내린 술을 석 잔 마신 후에, 몸에는 청삼이요, 머리에는 어사화라. 잘 달리는 좋은 말을 비껴 타고 장안 큰길 꽃 버들 사이로 당당하게 돌아올 제, 따르느니 선달이요, 부르나니 신래로다.

이원풍악은 사람의 입으로 퍼져 왁자하고, 비단옷을 입을 화동은 쌍피리를 비껴 부니, 단산의 가을바람에 아름다운 봉황의 소리로다. 낙수교에 파란 구름이 떠 있으니 시절이 태평이라. 길가의 버들과 담 밑의 꽃들은 우거지고 거리거리 격양가를 부를 적에, 살구꽃 핀 문 앞에 다다르니 부모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 시골 마음의 오랜 아전들이 소리 모아 칭찬하니, 세상에 좋은 것이 급제 밖에 또 있는가?

삼 일 동안 유가한 연후에 선산 찾아 제사 지내고, 임금 앞에 절을 하니, 주상께서 친히 불러 만나 본 후 반기시고 물으시되,

“불차로 쓰려 하니 내직 중에 무슨 벼슬, 외직 중에 어느 곳을 소원대로 아뢰어라.”

이도령이 머리를 조아리며 은혜에 감사하고 아뢰기를,

“소신이 나이 어리고 재주가 부족하여 천은이 망극하여 소년 급제하였으니 황공해서 몸 둘 데가 없어서 아뢸 바를 모르오나, 주상의 아래에서 감히 꺼리어 감추거나 숨기지 못 하올지라. 임금의 덕이 미치지 않는 먼 지방에는 탐욕이 많고 행실이 깨끗하지 못한 관리들이 재물을 받고 법을 마음대로 하여, 외롭고 의지할 데 없는 백성들이 겪는 괴로움을 알 길 없사오니, 어사를 시키시면 백성들의 괴로움과 각관의 탐관오리 역력히 살펴다가 주상께 아뢰리다.”

성상이 들으시고 칭찬하시되,

“기특하다. 높은 벼슬 다 버리고 암행어사 구한 뜻은 나라를 구하려는 충신 네로구나.”

전라 어사를 특별히 내리시니, 평생의 소원이라 어찌 아니 감사하고 축하할 일 아니리.

바로 그날 길을 떠날 적에, 어전에 하직하고 집에 돌아와 고사당에 절을 하고 부모에게 하직하고, 비단옷을 다 버리고 철대 없는 헌 찢어진 갓에 무명실로 끈을 하고, 당만 남은 헌 망건에 갖풀 관자 종이당끈 졸라매고, 다 떨어진 베 도포를 모양 없이 걸쳐 입고, 칠 푼짜리 목분합띠를 가슴 한복판에 눌러 매고, 헤어진 맞붙이를 웃대님으로 질끈 매고, 가장자리 없는 임금의 내린 부채를 손에 쥐고, 남대문을 내달아서, 군관, 비장, 서리, 반당, 영리한 군 골라 뽑아 옷을 갈아 입혀 남모르게 먼저 보내고 정체 숨겨 남모르게 내려갈 제,

칠패, 팔패, 이문동, 도적골, 쪽다리 지나, 청파 배다리, 돌모루, 동작리 바삐 건너, 승방뜰, 남태령, 인덕원, 과천, 갈뫼, 사근천, 군포내, 미륵당 지난 후에, 오봉산 바라보고, 지지대 올라서서 참나무정이 얼른 지나, 교구정 돌아들어, 장안문 들이 달아 팔달문 내달아, 상류천, 하류천, 진개골, 떡전거리, 중미, 음의, 진위, 칠원, 소사, 비트리, 천안삼거리, 진계역 지나, 덕평원, 진숙원, 새숫막 번듯 지나, 공주 금강을 갑자기 돌아 지나, 은진, 닭다리, 능개울 삼례 지나, 여산, 고산에 전주가 여기로다.

수의어사 쇠로 만든 관을 쓴 듯 깊은 산의 사나운 호랑이로다.

지나는 길옆의 각읍 수령들이 어사 떴단 말 바람결에 얻어듣고 옛 관청의 일들 다 버리고, 새로 일을 닦을 적에, 천둥에 벼락이라. 관속들이 송구하여 관청빗은 가슴치고 이방아전 속이 탄다. 관가 창고에 있는 돈과 포목, 환곡과 세금, 여러 문서 닦을 적에, 사결에 한 짐 열 뭇, 육 결에는 석 짐 닷 뭇, 팔 결에는 닷 짐 열 뭇, 위에 두 짐 닷 뭇, 따라서 쉰석 짐 닷 뭇이라. 동쪽 서쪽 창고에 쌀과 돈, 포목을 무턱으로 들이더라.

이방은 부르거니 호방은 쓰거니 한창 이리 끓을 적에 부모 불효 형제 불화하는 놈과 탐관오리 염탐하여 이리저리 다니면서, 여러 고을 소문 들은 후에 노구바위 지나 임실을 달려드니,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