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X. 옥중 춘향 (2/2)

New-Mountain(새뫼) 2020. 6. 2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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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내가 만일 죽거들랑 한양성내 묻어주오

 

<수심가(愁心歌)>를 지어내니,

“내 몸이 여자 되고 군자를 사모하나

밝은 해가 무정하여 세월이 깊어 가니

뒤척뒤척 잠 못 드니 청춘이 아깝구나

봄 석 달에 깊은 병이 뼛속까지 들었으니,

가슴에 썩은 피를 편작인들 어이할꼬?

대문 앞의 버들과 창밖의 매화는

가지마다 봄빛이요

금실로 맺었으며 흰 눈으로 다듬었다.

끝이 없는 봄빛은 어이하여

나의 회포를 돋우느뇨

사람이 다시 젊어질 수 없다는 걸

나도 잠깐 알건마는

동쪽 정원의 복숭아꽃 배꽃은 봄임을

임은 어이 모르는고

탁문군의 거문고는 남산의 솔잣나무로 만들어

월하노인의 끈으로 맺어내어

우리 인연 맺고지고

죽지사와 매화곡을

임의 이름 삼아 던져두고

사람 소리 없는 황혼의 저녁에

한숨 섞어 노래한들 그 뉘라서 찾아오리

푸른 하늘이 알 리 없고 밤빛이 처량하다.

상사일념 못 이기어 북창을 의지하니

새벽 서리 찬 바람에 슬피 우는 저 기러기야.

낭랑하고 찬 소리에 남은 간장 다 썩는다.

나의 회포 그려내어 임의 곳에 보내고저.

사람이 목석이 아니거든 어이 아니 감동하리.

어와 내 일이여

약수 삼천리에 파랑새를 바라거늘

봄바람 불던 어젯밤 비에

꿈속의 혼백이 날겠구나.

푸른 뱀과 흰 사슴이 길을 그릇 인도하여

임 계신 데 아니 가고 거미줄에 걸렸으니

애틋하다 나의 신세

고운 여자 팔자가 사납다니 가련하다

어와 설운지고, 이생에 품은 한을

후생에나 즐기려 원하나니

천지 일월성신 후토는

어여삐 여기소서.”

 

어미에게 이른 말이,

“내가 만일 죽거들랑 육진장포로 질끈 동여 이름난 산과 큰 내에 묻지 말고 한양성 내 올려다가 큰길 물가에 묻어주면 도령님 오고갈 제 음성이나 들어보세.”

춘향 어미 하는 말이,

“경황없는 소리 하지 마라. 도령님이 꿈에나 너를 생각하랴? 소견 없이 생각 말고 미음이나 먹어 보라. 네 병세를 헤아리니 회복하기 어렵도다. 임 그리는 상사병과 매 맞아 생긴 장독증에 음식을 전폐하고 산 귀신이 되겠구나. 집안 살림살이 모두 팔아 의원에게 병을 묻고, 무녀에게 굿을 하여 살리기로 애를 쓴들, 임 그리는 상사병에 무슨 효험 있을쏘냐?”

춘향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나는 싫소. 혈육으로 삼긴 몸이 이리 섧고 어이 살리. 죽자 하니 청춘이요, 살자 하니 고생이라. 전생 죄악 아닐진대 집안의 동토 분명하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고 하였으니, 지성으로 기도하면 관가로부터 받는 재앙과 구설수가 소멸할까?”

날을 택해 경을 읽으려 하고, 온갖 경문으로 소원을 빈다.

불설 ≪천지팔양경≫과 삼귀 삼지 ≪삼재경≫에, ≪금강경≫, ≪태세경≫, ≪공작경≫, ≪반야경≫, ≪조왕경≫, ≪천수경≫, ≪도액경≫을 다 읽으며, ≪안택경≫도 읽으리라. ‘여시아문 일시불공 장보살 관세음보살.’ 온갖 경을 다 읽으며, 무당 들여 굿을 하되,

“야곽산초는 삼천죽절로 풍덩 들이쳐 꽃구경 가려하오.”

이렇듯이 굿을 하되, 절반도 효험이 없었으니,

“이를 어찌하잔 말인고? 속절없이 나 죽겠네.”

춘향 어미 슬피 울며,

“애고 애고, 설운지고. 나의 팔자가 운수가 사납고 복이 없어 삼종지도 다 버렸다. 어려서 부모 잃고 자라나서, 중년에 남편 여의고, 말년에 와 너 하나를 두었더니 저 지경이 되었으니, 누구를 바라고 사자나니.

한나라 군사 제갈량도 충성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를 갚으려다가 가을밤 오장원에서 큰 별로 떨어지고, 저 서산에 오른 백이 숙제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려다가 수양산 안에서 굶어 죽고, 천하를 떠돌던 개자추도 허벅지를 베어내어 임금을 섬기려다가 면산에서 불타 죽고, 삼려대부 굴원이도 나라 위해 충성에 애쓰다가 멱라수에 빠져 있다.

너도 열녀 되려거든 개천 구멍에나 빠지려무나. 너를 배고 조심할 제,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았고, 자른 것이 바르지 않으면 먹지 않았으며, 눈은 바르지 못한 색을 보지 않았으며, 발은 위험한 땅을 밟지 않으며, 열 달 몸을 좋게 가져 너를 낳아 기를 적에, 진자리는 내가 눕고 마른자리 너를 뉘여,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기며 길러냄은 너를 두고 이름이라.

온갖 비단으로 몸을 싸고 보옥으로 장식하여 말년 영화 보자 했더니 미인이어도 기구한 운명이 네로구나. 저리될 줄 어찌 알리?”

이렇듯이 초조하여 밤낮없이 서로 붙들고 울음으로 세월을 보내나, 이도령의 소식은 마침내 알 길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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