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IX. 남원 왈짜들 (2/4)

New-Mountain(새뫼) 2020. 6. 2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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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춘향아 기운차려 우리 노래 들어보게

 

이렇듯이 다투면서 여러 한량 왈짜들이 칼머리를 받아들고 구름같이 양쪽에서 부축하여 보호하며 옥중으로 내려갈 제, 칼 멘 왈짜 <선소리> 한다.

 

“얼널네화,

남문 열고 종을 쳤다.

샛별이 돋아 오네.

앞뒷집의 촛불이 꺼져가니

발등거리 불 밝혀라.

얼널네화 얼널네화

요령은 쟁쟁 울려 서소문이요,

만장은 날아 나부끼며 모화관을

치마바위 돌아갈 제

담제꾼이 발 부르트고

행자와 곡비 목이 멘다.

얼널네화 얼널네화.”

한 왈짜 내달으며 뺨따귀를 딱 붙이거늘,

“에구, 이것이 웬일이니?”

“에구라니, 요 방정의 아들놈아. 산사람 메고 가며 상여꾼의 소리는 웬일이니?”

“오냐. 내가 무심히 잘못은 하였다마는 사람들이 많이 빽빽하게 모인 가운데에 무안쩍게 뺨은. 제 어미를 붙기에 그다지 치느냐? 이것도 집안의 힘으로 메여 먹느냐? 너희들이나 잘 메여 먹고 살아라. 도무지 말을 원치 아니하려 하기에 망정이지 이것을 메고 가려는 내가 열없는 바사기 아들이지. 그 말하여 무엇하리.”

하면서, 와락 내어 던지니, 뒤에 따르던 왈짜가 혼이 떠서 하는 말이,

“이 애, 저 목 보아라. 이것이 땀나고 열오르는 짓이랴? 주리를 할 자식이라니.”

그 왈짜 하는 말이,

“너희는 뒤에서 부축하여 오는 체하고, 등의 손도 넣어보며, 젖가슴도 만져보고, 뺨도 어찌 닿아 만져보고, 손도 또한 틈틈이 쥐어 보고, 온갖 맛있는 간질간질한 재미와 은근한 음탕한 소리와 난잡한 짓거리 다 하고, 우리는 두 돈 오 푼 받고 모군 서는 놈의 아들놈처럼 가면 좋은 줄만 알고 간단 말이냐? 다른 사람은 아이를 불사르고 탯줄을 기른 줄 아는구나.”

이렇듯이 장난하고 그렁저렁 옥에 내려가 엄하게 가두니, 모든 왈짜가 벌여 앉아 위로하며 소일할 제, 한 왈짜 노래 부르되,

 

“동산에 비 내리던 어제

사안과 바둑 두고,

초당에 달 든 오늘 밤에

이백을 만나 술 한 말을 마시며

시 백 편을 짓노라.

내일은 맥상의 청루에서

두보와 한단의 기생과

큰 잔치를 하리라.

 

사마천의 만고에 떨칠 문장,

왕일소(왕희지)의 많은 사람들이 쓰는 필법,

유영의 술 좋아함과

두목지의 색을 좋아함을

백 년을 마음과 힘을 다하면

이 몸도 아울러 갖출 수 있을 것이나,

아마도 양쪽을 다 갖추기 힘든 것은

순임금과 증자의 효도와

비간과 같은 뛰어난 인물들의 충인가 하노라.

푸른 산중에 백발의 노인이

고요히 홀로 남쪽 봉우리를 향해 앉았더라.

바람 부니 소나무에는 거문고 소리가 들리고,

안개 잦아드니 골짜기에는 무지개가 뜨더라.

주걱새 우는 소리는 천고의 한을 노래하고

소쩍새 우니 이 한 해 또한 풍년이 들겠구나.

누가 산이 적막하다고 하였던가?

나는 이곳이 즐거움이 끝이 없다 생각하노라.

 

여러 왈짜들이 돌아가며 가사 하나씩 하는구나. 무슨 가사들 하는고?

다음 회를 볼지어다.

갑자년 칠월 상순 누동에서 쓰기를 마치다.

 

화설, 이때 모든 왈짜들이 가사 하나씩 하자 하고, 한 왈짜가 <춘면곡> 한다.

”봄 잠을 늦게 깨어

대창을 반쯤 여니

뜰의 꽃은 활짝 피고

날던 나비 꽃에 앉아

강가 버들은 우거져서

성긴 안개 띠었구나

창 앞에 덜 익은 술

거친 잔에 술 가득 부어

두세 잔 먹은 후에

호탕한 미친 흥을

부질없이 자아내어

백마 금편으로

야유원을 찾아가니

꽃향기는 옷에 배고

달빛은 가득한데

미쳤는가, 취했는가.

흥에 겨워 머무는 듯

이리저리 기웃하다

정을 두고 섰노라니

취와주란 높은 집에

녹의혹상 한 미인이

사창을 반만 열고

고운 얼굴 잠깐 들어

웃는 듯 찡그리는 듯

요염하게 맞아주네.

은근한 눈빛으로

녹기금을 비껴 안고

청아한 곡조로

봄 흥취를 자아내니

운우 양대상에

초몽이 다정하다."

 

또 한 왈짜가 <처사가(處士歌)> 한다.

"타고난 내 재주가 쓸데없어

세상의 부귀공명 하직하고

한가히 지내면서 목숨을 부지하여

산속에 숨어 사는 선비가 되오리라.

거친 칡옷 몸에 걸치고

세 마디 대지팡이 손에 들고

낙조 비친 물가 경치 좋은 데로

짚신 신고 천천히 내려가니

적적한 소나무 대문은 닫혔는데

고요한 살구나무 동산에 개 짖는다.

경치가 무궁하니 좋을시고.

숲속의 초목이 푸르렀다.

푸른 바위 병풍처럼 둘렀는데

흰구른 깊은 곳에 집을 짓고

강호의 어부처럼 살아가며

대 모자에 도롱이를 젖혀 쓰고

넓게 펼쳐진 모래밭에 내려가니

갈매기만 날아갈 뿐이로다.

갈대로 돛 만들어 높이 달고

넓고 푸른 물결 위로 흘려 저어

큰 잉어를 낚아내니

송강의 농어와 비기겠나.

맑은 강에 해 저물었다.

모래톱에 배를 매고 돌아오니

남북의 외로운 마을 두세 집이

노을과 저녁 안개에 잠겼구나."

 

또 한 왈짜가 어부사 한다.

"머리 흰 늙은 어부 갯가에서 살아가니

혼잣말로 물에 살기가 산보다 더 좋다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아침 물이 물러가자 저녁 물이 들어오누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하니

배에 기댄 어부 어깨 하나가 으쓱이더라.

 

푸른 물풀 잎 위에서 시원하게 바람이니

붉은 여뀌 꽃 옆으로 해오라기 한가하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동정호에서 바람 불어 돛단배를 몰아간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하니

급히 앞산 지나더니 벌써 뒷산이로구나.

 

온종일 배를 띄워 안개 속에 나아가니

때때로 노를 저어 달빛 아래 돌아오누나.

이어라, 이어라.

내 마음 가는 곳에 모든 일을 잊으려니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하니

돛대를 두드리며 정처 없이 가오리다.

 

모든 일에 마음 없고 낚시에만 뜻을 두니

삼공과도 이 강산은 바꿀 수 없었구나.

돛 걸어라, 돛 걸어라.

산 비와 계곡 바람에 낚싯줄을 걷었어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하니

한평생 삶의 자취 푸른 물결에 있었노라.

 

동풍 부는 해질녘에 초강은 더욱 깊고,

이끼 낀 낚시터에 만 가닥 버들 그늘,

배 저어라, 배 저어라.

부평초 같은 신세 백구의 마음이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하니

강 건너 어촌에는 두세 집만 있을 뿐이네.

 

탁영가 그치자 강변이 고요하거늘,

대나무 길 사립문은 아직까지 열려 있구나.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밤에 진회에 배를 대니 술집이 가깝구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하니

질그릇에 쑥 젓가락 혼자 술을 마시누니.

 

취해서 잠이 드니 부르는 이 하나 없고

여울까지 흘러가도 알지를 못하였도다.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복숭아꽃 흘러가니 쏘가리는 살쪄 있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하니

강 가득한 달과 바람을 고깃배에 실었어라.

 

고요한 밤 물은 찬데, 물고기는 낚이지 않고

빈 배 가득 밝은 달만 싣고서 돌아오네.

닻 지어라, 닻 지어라.

낚시 끝내고 돌아와서 작은 배를 매어 두니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하니

서시를 태워야만 풍류가 아니로다.

 

낚싯대를 의지하고 배 위에 올랐으니

세상의 명예 이익 아득히 멀었도다.

배 붙여라, 배 붙여라.배를

매려 하니 지난 자취 그대로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하니

노 젓는 소리에 산수만 푸르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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