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X. 옥중 춘향 (1/2)

New-Mountain(새뫼) 2020. 6. 2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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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옥중 춘향

 

가. 오늘이나 편지 올까 내일이나 소식 올까

 

이 말 저 말 내어 그리 저리 흩어지니, 춘향의 거동 보소.

정신을 겨우 차려 눈을 들어 살펴보니, 옥방 형상 가엾다. 앞문에는 살이 없고, 뒷벽에는 외만 남아, 시절은 음력 섣달이라. 겨울바람은 뼈까지 불고 눈보라 흩날리니 뼈마디가 저려 온다. 북풍 눈보라 찬 바람은 화살 쏘듯 들어오니, 머리끝에 서리 치고 손발조차 얼음 같다. 거적자리 헌 누비에 그리 저리 겨울 가고 봄이 지나 여름 유월이 다다르니 완연한 오랜 죄수로다.

헌 자리에 벼룩 빈대 야윈 등에 종기를 퍼뜨리고, 팔뼈 없는 모기들은 뱃가죽에 침질할 제, 하늘이 흐리고 비가 내려서 축축한 궂은 날에 귀신의 울음의 소리가 처량하고, 컴컴한 세상 어두운 밤에 옥의 고초가 그지없다.

이팔청춘 이 세상 최고의 미인이 가련히도 되겠구나. 향기로운 상산의 난초 잡풀 속에 묻혔는 듯, 말 잘하는 앵무새가 새장 가운데 갇혔는 듯, 맑은 개울물에 놀던 고기 그물 속에 걸렸는 듯, 벽오동에 깃든 봉황 나무 가시 안에 들었는 듯, 대보름 밝은 달이 떼구름에 싸였는 듯, 근심스럽고 슬프고 쓸쓸할 때 홀로 앉아 밤낮으로 길게 탄식하며 우는 말이,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이를 어찌하잔 말인고? 북해에 안치되었던 소무의 높은 절개 기러기 다리에 서신을 보내 풀려났고, 유리에 갇힌 문왕의 큰 덕이 미녀와 말을 선물하여 풀려났고, 붕당으로 벼슬에 오르지 못했던 이응이도 이제 마침내 놓였구나. 무죄의 오랜 죄수 이내 몸이 어이하여 놓여 볼꼬.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높기도 높을시고. 저 구름에 올라서면 임 계신 데 볼 것이요, 드넓은 푸른 저 물결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흘러가니, 저 물같이 흘러갈 양이면 임 계신 데 가련마는, 쉼 없이 가는 세월 오래인들 은은한 이 한마음 잊을쏘냐?

옥중에서 밝은 달을 보며 긴긴밤에 감옥의 서창에 비껴 앉아 산에 낀 구름과 바다 위의 달을 바라본들, 속절없이 끊는 간장 누구에게 이를쏜가. 밤에 깊이 못 든 잠을 낮 베개에 잠깐 드니, 꿈속에서 다시 만나 서로 만나 피차 그리움을 이를 적에, 경박할손 한 쌍의 나비 두견의 울음소리에 흩어지니, 본 듯 못 본 듯 황홀하다.

깊이 잠들지도 깨지도 않은 어렴풋한 상태를 분별할 제, 흐트러진 탐스러운 머리에 비녀 꽂기 잊었구나. 가을 달과 봄바람의 네 계절은 사시절은 베올에 북 지나듯 아무도 없는 쓸쓸한 곳에 혼자 앉아 생각하니 임뿐이라. 쓸쓸하게 지는 낙엽 부는 바람 나부끼는 의상이라. 여자의 향기로운 넋과 몸이 사라질 제, 구슬 같은 눈물이 뺨에 가득하구나.

보고지고, 우리 낭군. 어찌 그리 못 오는고. 봄 물이 사방의 못에 가득하여, 물이 막혀 못 오시나. 여름 구름은 기이한 봉우리에 가득하여 산이 높아 못 오시나. 가련하도다. 오늘 밤에 기생집에서 머무시어 사랑 빠져 못 오시나. 말타기 닭싸움에 아직 돌아오지 않으시나. 노름에 잠겨 못 오시나. 오늘이나 편지 올까. 내일이나 소식 올까. 응당 한 번 오련마는 이럴 리가 없으리로다. 바라보니 아득하고, 생각하니 목이 멘다.

빈 산에 나뭇잎 지고 빗줄기만 쓸쓸함은 나를 두고 이른 말이로다. 동쪽 정원에 복숭아꽃 배꽃이 잠깐 피는 삼월의 늦봄은 수심이요, 빈 산에 나뭇잎 지고 빗줄기만 쓸쓸하니 사월 남풍에 수심이라. 오동나무에 밤비 올 때 귀뚜라미 울음소리요, 겨울 가고 봄이 오니 송구영신 수심이라.

비취 이불, 원앙금침, 공작 병풍 두른 결혼 잔치가 호사도 되려니와, 연분을 위한 뜻이려니 이제로 보려 하니 이별이 수심이다. 이별에 설운 뜻을 뉘에게 이를쏘냐?

가슴이 다 타오니 임 그리는 불길이요, 눈썹의 맺힌 한이 임 그리는 불길이라. 피와 살로 생긴 몸이 이리 섧고 어찌 살리. 나 죽고 임 죽으면 그제야 원수 되어, 나 좋고 임 좋으면 그 아니 연분인가.

이정의 홍불기는 남복하고 군대를 따랐고, 탁문군의 <봉구황곡>은 예전과 지금이 다를망정, 인심이야 다를쏘냐? 왕소군 반첩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랑하는 마음 원하기야 마음은 함께라. 서왕모의 청조연과 소중랑의 흰 기러기 이런 때에 있을진데 소식이나 전할 것을.

꽃과 달같이 맑은 얼굴 눈에 어른거려 눈에 보이는 듯. 세상은 뜻이 있어 우리 둘을 만들었는데, 세월은 무정하여 옥 같은 모습과 붉은 얼굴이 헛되이 늙음이로다. 나며들며 오락가락 임 가던 길 바라보니 이내 그리움이 허사로다. 무정한 세월은 물 흐르듯 돌아가고 유의한 우리 인생 이별에 다 늙는다.

여관 쓸쓸한 등에 쓸쓸한 회포도 슬프거든 푸른 창의 빈방에 임 이별을 이를쏜가. 빈 산에 달 떠올라 저문 날과, 하늘이 흐려 달빛이 어두운데, 비가 내려 젖어 있고, 깁을 둘러 초혼하면 영이별이 이때로다.

어느덧 잠자리를 제대로 보지 않고 잠이 들어 꿈에나 보자 하되, 수심 겨워 잠 못드네. 저놈의 꾀꼬리 쫓아버려라. 나무 위에서 울지 못하게 하여 다오. 네 울음에 잠 못 이루어 임 계신 곳에 못 가노라. 몸에 날개가 없으니 바라본들 어이하리. 가는 버들잎이 봄바람에 날리는 저문 날과 오동나무 가을 밤에 이리 그리고 어찌 살리. 달은 밝고 바람은 찬데 밤은 길고 잠 없어라.

옛일을 솜솜 헤아리니 어찌 아니 서러울쏘냐? 덕이 금수에까지 미쳤던 탕 임금도 하나라 걸왕의 포악으로 하대옥에 갇혔다가 도로 놓여 성군 되고, 만고 성현 공자님도 광 땅에 욕을 보나 도로 놓여 성현 되고,

밝은 덕을 신민에게 베풀었던 주 문왕도 상나라 주왕의 포악함으로 유리옥에 갇혔다가 도로 놓여 성군 되고, 맑은 충절과 큰 절개의 소중랑도 흉노에게 잡혀가서 북해에 갇혔다가 고국으로 돌아오니, 이런 일로 보아서는 억울한 이내 몸이 행여나 옥에 나서 세상 구경 다시 할까.

애고 애고, 설운지고. 주야장천 울음 운들 속절 춘향 전혀 없다. 오늘이나 방송할까, 내일이나 풀려날까. 밤낮으로 기다리나 놓을 뜻은 전혀 없고, 취중에 술주정이 나면 때때로 올려 몹시 때려 한 달에 세 번 문초하며 사또가 일을 하며 죄를 자백하라 죄를 내린들, 소나무 잣나무같이 곧은 절개 북풍 찬 눈을 두려워하랴?

애고, 이를 어이하리. 죽을 밖에 하릴없다. 온갖 병이 거듭하여 일어나니 속절없이 나 죽겠네. 우리 도령님 한 번만 보고지고, 한 번 보고. 그때 죽어도 한이 없고, 당장 죽어도 한이 없고, 이 자리에 죽어도 한이 없겠네. 이 몸이 죽기 전에 아무쪼록 보고지고. 아프기도 그지없고 춥기도 가이 없다 마디마디 썩는 간장 드는 칼로 저며내어 산호 상자 백옥함에 점점이 담아다가, 임의 눈의 뵈고지고.

보신 후에 썩어진들 관계하랴. 첩첩이 높은 봉에 자고 가는 저 구름아. 나의 슬픈 눈물 빗발 삼아 품어다가 임 계신 옥창 밖에 뿌려 주렴. 이렇듯이 아픈 몸이 임을 보면 낳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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