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XIV. 어사 출도 (3/3)

New-Mountain(새뫼) 2020. 6. 2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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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청천의 벽력이라 암행어사 출또요

 

이때에 삼반 하인 맞춘 때가 다가오니, 관문 근처 골목마다 파립 장사, 망건장사, 미역장사, 황아 장사, 각각 외며 돌아다녀 삼반 하인 손을 치니,

군관 서리 역졸들이 청전대를 둘러 띠고 붉은 전립을 젖혀 쓰고, 마패를 빼어 들고 삼문을 꽝꽝 두드리고,

“이 고을 아전 놈아. 암행어사 출또로다. 큰문을 바삐 열라.”

한편으로 관가의 창고를 잠가버리고 우지끈 뚝딱 두드리며 급히 짓쳐 들어오며,

“암행어사 출또하오!”

이 소리 한마디에 태산의 범이 울고, 청천의 벽력이라. 기왓골이 떨어지고, 동헌이 터지는 듯 놀음이 고름이요, 삼현이 깨어짐이요, 노래가 모래 되고, 술상이 선반이라.

좌우 수령 거동 보소. 겁낸 거동 가소롭다. 언어수작 뒤집어 한다.

“갓 내어라, 신고 가자. 나막신 내어라, 쓰고 가자. 나귀 내어라, 입고 가자. 창의 잡아라, 타고 가자. 물 마르니 목을 다오.”

임실 현감 갓모자를 뒤집어쓰고,

“이놈들, 허무한 놈 갓구멍을 막았구나.”

칼집 쥐고 오줌 누니, 오줌 맞은 하인들이 겁결에 하는 말이,

“요사이는 하늘에서 더운 비를 주나 보다.”

쥐구멍에 상투 박고, 구례 현감 말을 거꾸로 타고 하인더러 묻는 말이,

“이 말, 목이 본래 없나?”

여산 부사 오줌 싸고,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말이 빠져 이가 헛날린다. 굴뚝 뒤에 숨었다가 줄행랑이 개가죽이라. 개구멍으로 달아난다.

이렇듯이 덤벙일 제, 본관 원님 똥을 싸고, 실내 부인 똥을 싸고, 서방님도 똥을 싸고 도련님도 똥을 싸고, 소인네도 똥을 싸고, 온 집안이 똥 빛이라.

“이를 어찌하오리까?”

남원 부사 대답하되,

“그러하면 발 빠른 놈을 바삐 불러 왕십리를 급히 가서 거름 장사 있는 대로 성화같이 잡아 오라.”

배반이 낭자한데, 몽둥이 찬 놈 괴이하다. 장구통도 깨어지고, 큰 북통도 깨어지고, 해금통도 깨어지고, 피리 젓대 짓밟히고, 거문고도 깨어지고, 양금 줄도 끊어지며, 교자상도 부서지고, 화충항도 깨어지고, 찬합도 흩어지고, 준화 가지 부러지고, 차담상도 으스러지며 꽃이 그려진 병도 다 부서지고, 양각등도 다 짓찧어서 쭈그러뜨려지고, 청사초롱도 구멍이 뚫어지며, 그런 잔치 다 파하여 동헌이 텅 비었구나.

좌수 이방 몹시 힘든 중에 미친 듯이 날뛰고 삼번관속, 육방 아전 된벼락을 맞았구나. 관아의 안팎이 위아래 없이 똥 빛으로 진동한다.

삼공형과 삼향소를 우선 고문하여 자백을 받아 내고, 유배지로 보내고 본관은 파면하고 관아의 창고를 봉하여 남원 밖으로 내친 후에, 어사의 거동 보소.

동헌 대청 홀로 앉아 삼방 하인 분부하여 관아 일의 절차 바삐 할 제 대기치 나열하고, 삼공형 불러들여 고을에서 이루어진 폐단 묻고, 도서원 불러 논밭에 물리던 세금 묻고, 사창빗 불러 곡식 장부 묻고, 군기빗 불러 군대의 장비와 군인들의 옷 물어 꾸짖어 바로잡고, 전세빗 불러들여 쌀을 빌려주어 받지 못한 것이 있는가를 알아본다.

죄를 물어 한 차례 매우 세게 때려 석방하고, 예방 불러 불효하고 삼강오륜을 지키지 않는 죄인들을 멀리 유배하고, 형방 불러 살인죄로 갇힌 이가 있는가를 묻고, 이런 분부 다한 후에 옥사쟁이 바삐 불러,

“옥에 갇힌 춘향이를 옥사쟁이의 손대지 말고, 모든 기생 따르게 하여 바삐 대령시키어라.”

옥사쟁이 명령을 듣고 옥문 열쇠 손에 들고 옥문 밖에 바삐 가서 열쇠를 거꾸로 박고,

“어따, 성화하겠다. 어찌 아니 열리는고?”

잇달아 재촉이 벼락과 천둥 같은지라. 옥사쟁이 할 길 없어 발로 박차 문을 깨고 업어 놓고 손을 치되,

“어서 이리 나오너라, 어서 바삐 나오너라.”

한 해 묵은 오랜 죄수들이 뭉게뭉게 다 나온다. 옥사쟁이 미친 듯이,

“어따, 바삐 나오너라.”

구수들이 의논하되,

“국가에 경사 있어 감옥의 문을 활짝 열고 죄인을 모두 놓아주는가 보다.”

그저 함부로 꾸역꾸역 다 나오니, 감옥 안이 텅 비었구나. 옥사쟁이 성화하여,

“어따, 이놈들 나오지 말라.”

일변 들이밀며,

“어서 바삐 나오너라. 사람 죽겠다. 너만 어서 나오너라.”

구수들이 어이없어,

“누구를 나오라느냐?”

“어따, 성화하겠다. 저 아이만 나오너라.”

저 아이가 누구니?”

“춘향이만 나오너라.”

춘향이 이 말 듣고 혼이 없어 나오면서,

“애고, 이제는 나 죽겠네. 서방님은 어디에 가고 이때까지 아니 오노.”

춘향 어미 들입다 잡고,

“애고 애고, 달아났다. 이제는 아주 갔다. 조금도 생각 마라. 밥을 하여 많이 주니 마파람의 게눈이라. 애고, 그놈 잠을 잘 제 동냥꾼이 분명하더라. 돌꼇잠에 이를 갈고 기지개 잠꼬대에, ‘밥 한술 주옵소서. 돈 한 푼 좋은 일 하오.’ 한두 번이 아닐러라.

만일 고을 사람들이 그놈인 줄 알 양이면 손가락질 지목하여, 춘향의 서방, 춘향의 서방, 할 양이면 이 아니 부끄러우냐? 아서라, 생각 마라. 눈꼬알을 보아 하니 소도적놈이 다 되었더라.

이 집 저 집 다니다가 남의 것을 훔치기라도 하면 그런 우환 또 있느냐? 만일 다시 오거들랑 엄지손가락을 깍지손하고, 금일 원님이 묻거든 단번에 허락하면 어찌 아니 좋을쏘냐? 물라는 쥐나 물지, 수절이 무엇이니?”

춘향이 울며 대답하되,

“애고, 그 말 듣기 싫소. 그 말 그만하오. 죽을 밖에 하릴없소.”

좌우편을 살펴보나 서방님이 간데없다. 저 춘향의 거동 보소.

“애고, 이를 어찌할꼬? 죽기를 한하여 이를 갈고 엄형을 받으나, 부모가 남긴 몸을 아끼지 아니하고 형장 끝에 다 썩어 뼈만 남도록 수절하더니, 건곤 천지 우주 간에 이런 일도 또 있는가? 서방님이 어디에 가고 나 죽는 줄 모르는고. 죽도록 그리다가 하느님이 감동하사 생전에 겨우 만나 잠시라도 얼굴을 대하매 죽어도 아무 한이 없음이라. 나 죽는 양 친히 보고 남의 손 빌지 말고 장례나 마쳐 줄까.

신신부탁하였더니 끝끝내 내 마음과 같지 않아 야속하기 측량 없네. 서방님도 마저 날 버리니 누구를 믿고 살자는 말인고? 나는 이리 애를 태워 죽건마는 서방님은 장부이시라 아무래도 여자의 간장 같으리오. 나 죽는 꼴 보기 싫어 아니 오나. 어디에로 가 계신고? 오수의 장터에 가 계신가? 죽을 밖에 하릴없다. 애고 애고 설움이야.”

칼머리를 앞으로 와락 빼쳐 뒤로 벌떡 주저앉아 두 다리를 펴 벌리고 대성통곡하는 말이,

“애고, 이제야 나는 죽네. 이 세상의 해와 달과 별들아. 오늘날의 나는 죽소. 산천초목 날김승, 길짐승들아. 오늘날의 나는 죽네.”

눈을 번쩍 떠보면서,

“광한루야, 나 죽는다. 오작교야 나 죽는다. 당초에 너로 하여 도련님을 만났더니, 오늘날에 이별하니 언제 다시 만나보리. 광한루야, 잘 있거라. 오작교야, 너는 만팔천 세를 누리려니와 내 인생은 오늘날뿐이로다. 상단아, 어머님 뫼시고 잘 있거라. 아무 때나 서방님 오시거든, 나 없다고 괄시 말고 잘 대접하고, 나의 세세한 말 자세히 하여 다고.”

상단이 통곡하며,

“그 말 마오. 듣기 싫소.”

이렇듯이 울음 울며,

“애고 애고 설운지고. 어머니 나 죽은 후에 어찌 살려 하오?”

인하여 혼절하여 칼머리를 안고 거꾸러지니, 뭇 기생이 들이 달아 떠 들어다가 동헌 뜰에 내려놓고 춘향이 기절하였음을 아뢰오니, 어사가 수노 불러 분부하되,

“아까 놀음 놀던 기생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점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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