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XIV. 어사 출도 (2/3)

New-Mountain(새뫼) 2020. 6. 2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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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구나

 

본관이 꾸짖으며 나무라되,

“그만하면 썩 흡족함이거든 또 기생 안주를 하라는고. 어허 괴이한 손이로고.”

운봉이 기생 하나 불러,

“약주 부어 드리라.”

그중 한 년이 마지 못하여 술병 하나 들고 내려오니, 어사가 하는 말이,

“너 묘하다. 권주가 할 줄 알거든 하나만 하여 나를 호사시키어라.”

그 기생 술 부어 들고, 외면하며 하는 말이,

“기생 노릇은 못 하겠다. 비렁뱅이도 술 부어라, 권주가가 웬일인고? 권주가가 없으면 목구멍에 술이 아니 들어가나?”

혀를 차며 권주가한다.

“먹으시오, 먹으시오. 이 술 한 잔 먹으시오.”

“여보아라, 요년. 네 권주가 본래 그러하냐? 행하 권주가는 이러하냐? 잡수시오, 말은 마음에 들기에도 못하느냐?”

그 기생 독을 내어 쫑알이며,

“애고, 망측하여라. 성가시지 아니하오. 잘하여 주오리다. 처박으시오, 처박으시오. 이 술 한 잔 처박으시오. 이 술 한 잔 처박으시면 목숨이 길고 길 것이니, 어서어서 들이 지르시오.”

고년의 얼굴 낯익히고,

“에라, 요년. 아서라.”

술 마시고 음식상 끌어당겨 놓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주린 판에 비위 열녀 순식간에 다 후루루 떠 넣고, 또 상좌에 통하기를,

“사월 팔일에 등 올라가오. 음식은 잘 먹었소마는, 또 괘씸한 입이 시어 못하겠소. 저 초록 저고리의 다홍치마 입은 어린 기생 좀 내려보내오면 호사하는 판에 담배까지 붙여 먹겠소.”

운봉이 기생 불러,

“붙여 드리라.”

그 기생 내려오며,

“그리 사나 수컷이라. 온갖 못된 놈의 소리를 다 하네. 운봉은 자리에서 분부 한몫 맡았나.”

하며,

“담뱃대 내시오.”

어사가 돌통대를 내어주니 고 기생이 서초 한 대 떼어내어 붙여주니 어사가 대 받고,

“이리 오너라, 절묘하다. 게 앉았다가 한 대 더 붙여 다고.”

손목 쥐고 앉았더니, 이윽하여 뱃속에서 별안간에 장악원이 육자비하는 소리처럼 똥땅쭈르록 꼴꼴 딱딱 별소리가 다 나더니, 뱃속이 꿈틀하며 방귀가 나오려 하고 밑구멍을 뚫는지라.

발뒤꿈치로 잔뜩 괴었다가 슬며시 터 놓으니 부스스하고 그저 우르르 이어 수없이 나오는지라. 방귀 내가 온 동헌에 다 퍼지니 구린내가 어찌 독하든지 말든지 곧 코를 쏘는지라. 좌중이 저마다 코를 가리우고 응 소리가 연속하다.

본관이 호령하되,

“이것이 필연 통인 놈의 조화이로다. 사정을 자세히 조사하여 바삐 몰아 내치라.”

어사가 대답하되,

“통인은 잘못 없소. 내가 과연 방귓자루인지 뀌었소.”

하고, 한 번 통한 후는 그저 무한 슬슬 퉁퉁 뀌어 버리니 온 동헌이 다 구린내라. 모든 수령들이 혀를 차며 운봉의 탓만 하더라.

본관이 취한 흥을 못 이기어 술김에 객쩍은 말로 하는 말이,

“여보, 임실. 내게 묘한 이치 있는 일이 있소. 심심한 때면 이방 놈과 모든 숨은 땅을 찾아내어 단둘이 꼭 반씩 나누니, 그런 재미 또 있는가? 여보 함열 현감. 재물을 몹시 착취하여서 백성들이 살아갈 수 없게 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 전에 없는 별봉이 근래에 무수하고, 궁핍하고 돈이나 쌀을 구걸하는 친지와 친구들이 끊일 적이 전혀 없고, 뇌물을 확실하게 바쳐야 하는 것이 전보다 배가 되니, 내 실속을 차릴 수가 없어, 밤낮으로 고민하여 생각하니, 환곡 이자의 오묘한 이치도 할 만하고, 또 사십팔 면 부유한 백성들을 낱낱이 추려내어 좌수 벼슬을 내리거나 풍헌 벼슬 내리거나, 아전의 구실을 바꿈질 같은 것 내어주면 은근한 오묘함이 있고, 또 봄이면 민간에 계란 하나씩 내어주고, 가을이면 닭 한 마리 받아들여 거두어 모으면, 여러 천 마리 마뜩하고, 흉년이면 관포 받고 헐값에 주기, 이런 노릇 아니하면 지탱할 길 과연 없소.”

운봉이 하는 말이,

“여보오, 본관. 객쩍은 말 말고 이런 성대한 장치에 풍월 읊는 글이나 하옵시다.”

좌우 수령 좋다 하고 시축지를 내어놓고 운을 내어 글 지을 제, 어사가 또 통하되,

“윗전에 말씀 올라가오. 나도 비록 걸인이나 오늘 우연이 좋은 잔치 만나 배불리 얻어먹고 그저 가기 맛없으니 붓과 먹을 좋이 빌리시면 차운이나 하오리다.”

좌우 수령 속으로 웃고,

“저 꼴에 글이라니.”

운봉이 만류하되,

“글을 짓는데 귀천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로다.”

문방사우 가져다가 어사 앞에 놓아주니 어사가 붓을 들고 순식간에 지었으니,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금으로 만든 그릇에 아름다운

술은 일천 사람의 피요,

옥반가효는 만성고라

옥쟁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촉루낙시의 민누낙이요

불똥 떨어질 때에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가성고처의 원성고라.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도다.

 

어사가 이 글 지어 모든 수령 아니 뵈고, 운봉만 넌짓 뵈고 하는 말이,

“노형은 먼저 가시오.”

운봉이 눈치 알고 본관에게 통하되,

“나는 백성 환자 주기 바빠 먼저 돌아가오.”

전주 판관 또 통하되,

“나는 마치지 못한 일이 있어 먼저 가오.”

고부 군수 하는 말이,

“나는 학질로 제때가 되면 못 견디어 먼저 가오.”

본관이 취한 중에 골을 내어 하는 말이,

“놀이는 끝까지 가야 비로소 기쁨을 다 맛볼 수 있다 했더니 종일토록 놀지 아니하고 공연히들 먼저 가니 남의 잔치 흥을 깸이라. 괴이한 자식들, 제 실속을 못 잊어서 지랄이 나나 보다. 좌중의 여보시오. 가는 이는 가거니와, 우리나 훗훗이 노사이다.”

이렇듯이 어느덧 가는 이는 가고 다 없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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