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 아름다운 어울림
가. 오늘 내 분부도 시행하지 못할쏘냐
수노 놈이 분부 듣고 큰 소리로 높여 점고할 제,
“타고난 군자는 꾸밈이 없어
맑고 깨끗한 마음의 옥련이 나오.
기쁘게 서로 삼가라고 알리며
꽃줄기에 다섯 덕을 갖춘 복희 나오.
봄 달이 가을 달보다 더 나으니,
패옥 소리 찰랑찰랑하는 진주옥이 나오.
푸른 나무 우거진 보름밤에,
주렴 걷는 미인 월출이 나오.
찬란히 빛나는 문장으로 덕의 귀함을 살피니,
성스러운 세상 진귀한 날짐승 같은 채봉이 나오.
고당부가 한 번 쓰인 후에
열두 봉우리 끝에 초운이 나오.
인간 세상 팔월에 모든 꽃이 다 졌으나,
홀로 맑은 향기 지키는 계홍이 나오.
즐겁고 화목한 세상 사람들이 봄 언덕을 오르는
요임금 세상에 사는 순일이 나오.
적벽의 뭇별들이 호표 바위에 앉을 때에,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 입은 계명월이 나오.
종성 땅의 백옥같이 사람이 옥 같으니
봄날 따뜻한 선옥이 나오.
빛이 수레 앞뒤 열두 대나 비추니
온 세상이 헐뜯지 못한지라, 명옥이 나오
강남에서 연밥 따는 배 양쪽으로 노 저으니,
가을 물에 핀 꽃 연홍이 나오.
겨울날 평강의 모래밭에서
죽순을 구하던 순절이 나오.
빼어난 봉우리에 구름 걸리니
사흘 동안 향 피우던 향희 나오.
지금 시대 문장에 절로 사람이 있으니
붉은 계수나무 한 가지에 월향이 나오.
진나라 여인이 퉁소를 잘 부는 줄 알았으니,
훨훨 신선처럼 날아오르는 채란이 나오.
광한전 아래 꽃 한 잎이
구름 밖으로 향기를 퍼뜨리는 계향이 나오.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희미한데
요임금 시절의 순심이 나오.
다 나오.”
어사가 분부하되,
“너희들 바삐 가서, 춘향의 쓴 칼머리를 이로 물어뜯어 즉각으로 다 벗기라.”
하니, 이는 아까 괘씸하게 본 연고이러라. 기생들이 달려들어 젊은 년은 이로 뜯고, 늙은 년은 혀로 핥아 침만 바르거늘,
“조년은 왜 뜯는 것이 없느뇨?”
“예, 소녀는 이가 없어 침만 발라 축여만 놓으면, 불어날 사이에 젊은것들이 듣기 더 쉽사외다.”
이렇듯이 뜯으면서 어림 아는 약은 것은 수군수군하는 말이,
“춘향아. 내 지난번에 산삼으로 좁쌀 미음하여 보내었더니 먹었느냐?”
한 년 내달아 하는 말이,
“일전에 실백잣죽 쑤어 보내었더니 보았느냐?”
또 한 년 하는 말이,
“수일 전에 편강 한 봉 보내었더니 알았느냐?”
또 한 년 하는 말이,
“저, 거시기, 밤콩 볶아 보내었더니, 보았느냐?”
이렇듯이 자기 공을 남이 칭찬하여 주기를 바라니 어사가 호령하되,
“요괴 같은 요년들아. 무슨 잡말들 하나니. 칼을 바삐 벗기어라.”
호령을 심하게 하니, 기생들이 겁을 내어 죽고 살기를 돌아보지 않고 뜯을 적에, 뭇개들이 뼈다귀 뜯듯 늙은 범이 개새끼 듣듯, 뜨덤뜨덤 뜯어낼 제, 이 빠진 년, 입술 터진 년, 볼때기도 뚫어지고 턱 아래도 부서지며 죽을힘을 다 들여서 즉각 내에 칼 벗기니, 불쌍하다. 연지 같은 저 춘향이 기절함이 분명하다.
어사가 갈팡질팡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의원 불러 약 짓기를 명령할 제,
“김주부야 살려주소. 이주부야 살려주소.”
여러 의원 공론하여 명약한다. 생맥산, 통성산, 회생산, 패독산 함부로 효력 있는 약을 내어 바삐 다려 퍼부으니, 만고 열녀 춘향이가 회생하여 일어나니, 어사가 또한 상쾌하여 정신이 상쾌하고 마음이 즐거움에 기쁨을 억제하지 못함이라.
즉시 내려가 붙들고 싶으나, 한 번 속여 보려 하고 음성을 변하여 분부하되,
“길옆의 버들과 담장 위의 꽃은 누구나 꺾을 수 있음이라. 들으니 너만한 창기년이 수절을 한다 하니, 수절이 무슨 곡절인고. 네 본관 사또 분부는 아니 들었거니와, 오늘 내 분부도 시행 못할쏘냐? 너를 이제 석방하여 수청으로 정하는 것이니, 바삐 나가 낯을 씻고 빨리 올라 수청하라.”
춘향이 이 말 듣고 움쭉 소스라쳐 하는 말이,
“애고, 이 말이 웬 말이오? 조약돌을 면하였더니 수마석을 만났구나. 도마 위에 오른 고기가 되었으니 칼을 어찌 두려워하리오. 용천검 드는 칼로 베려거든 베이시고, 착고 채워 수레 묶어 찢어발기려거든 찢어발기시고, 울산전복을 봉황 모양 오리듯 오리려거든 오리시고, 깎으려거든 깎으시고, 기름 끓여 삶으려거든 삶으시고, 갖은양념 주물러서 쟁이려거든 쟁이시고, 구리기둥에 쇠를 달궈 지지려거든 지지시고, 석탄에 불을 피워 구우려거든 구옵소서.
조롱 말고 어서 바삐 죽여주오. 본관 사또 불량하여 소나무 잣나무 같은 나의 절개 빼앗으려고 수삼 년을 옥에 넣어 반 귀신을 만들었소. 금석 같은 백년기약 이상한 일이라고, 엄한 형벌을 내리고 무겁게 다스려 생주검을 만들었소. 죽기로만 바라다가 하늘과 신령이 도우셔서 어사 사또 앉으셨사오니, 하늘 같은 덕택과 올바르게 밝히시는 처분을 입어 살아날까 비옵더니, 사또 분부 또한 이러하옵시니 다시 무엇이라 아뢰오리까? 얼음 같은 내 마음이 이제 와서 변할쏜가? 어서 바삐 죽여주오.”
눈을 감고 이렇듯이 악을 쓰니, 어사가 이 말 듣고 박장대소하며 칭찬하되,
“열녀로다, 열녀로다. 춘향의 굳은 절개, 천고에 견줄 데 없음이요, 아름다운 장한 뜻은 고금의 오직 한 사람이라.”
책상 치며 크게 칭찬하고,
“아름답다, 절개로다. 기특하고 신통하다. 아리땁고 어여쁘다. 절묘하고 향기롭다. 반갑고도 기쁘도다. 어이 저리 절묘하니, 눈을 들어 나를 보라. 내 얼굴도 이도령과 같으니라.”
춘향이 정신이 없은 중이나 음성이 귀에 익고, 말소리 수상한지라. 눈을 잠깐 들어 쳐다보니 수의어사가 잊지 못한 낭군임이 정녕하다. 천근같이 무겁던 몸이 날개가 나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름이라. 한 번 소소 뛰어올라 들입다 덥석 안고 여산폭포에 돌 구르듯 데굴데굴 구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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