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신채효성두본 춘향가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III. 고난과 기다림 (4/4)

New-Mountain(새뫼) 2020. 7. 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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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춘향 편지 받아 보고 백성 말을 들어보니 본관은 명관이라

 

한 모퉁이 돌아가니 나이 많은 이십 총각 아이 초록 대님 발싸개에 육승포 온골로 전대하여 허리를 잡아매고 윤노리나무 지팡이를 한 손으로 끌면서 탄탄대로 넓은 곳에 갈 지 자로 흩걸으며 시절 노래 부르는데,

“어이 가리, 어이가리. 오늘 가다 어디 자고 내일 가다 어디 잘꼬. 유황숙이 단계 뛰던 적로마 가졌으면 이제 한양 가련마는, 조그마한 이 다리로 몇 밤 자고 한양 가리. 어허 어허.”

한참 이리 올라갈 제 어사또가 찌꺽 닿아,

“이애, 너 어디 있나?”

“남원 읍내 사옵니다.”

“무슨 일로 어디 가노?”

“서울 삼청동 구관댁에 가오.”

“그 댁에 어찌 가노?”

“구관 자제 나이 어린 첩 춘향 편지 가지고 가옵니다.”

“이아, 날 잘 만났다 도령님 댁에 안 계시니라. 공부하러 절로 가서 네가 가도 못 볼 테요, 만일 대감 아시면 너만 탈을 당할 터니, 그 편지 나를 주면 갔다가 빨리 전하마.”

저 아이 하는 말이,

“도령님과 친하시오?”

“오냐. 내가 일가 된다.”

저 아이 편지 주며,

“부디 떼어 보지 말고 갔다가 전한 후에 답장 맡아 보내시오.”

“안부 편지는 엿보지 않는다 했으니 떼어 볼 리가 있겠느냐.”

저놈이 곧이듣고 하직하고 간 연후에 솔밭으로 들어가서 편지 떼어 보아 갈 제, 중간쯤 읽어 가다 아주 설워 못 견디어 눈물이 비 같구나.

 

‘숲속에서 서로 이별 떠난 후에 주상 계신 장안 멀었으니, 부모님 모시고 때때옷 입고 춤추시고 계옵신지. 숙녀와 정혼하여 종과 북소리가 잘 어울리듯 즐겁게 지내시는지, 멀리 바라보아도 보이지 않는 이 신세가 삼가 사모하는 마음 그지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하옵더니, 신관 사또 도임 후에 수청 아니 든다 하고 엄한형벌에 단단히 가두었으니 약한 목숨 아침이 아니면 저녁에 죽을 터니, 낭군 위해 죽어 절개를 지키면 내 영화는 되거니와, 아들 없는 늙은 어미 과부된 외로움을 겸했으니 그 아니 불쌍하오.

내가 만일 죽거든 어미를 데려다가 댁 근처에 두옵시고 살았을 제 구완하고 죽은 후에 묻어주면 절개를 지키고 의롭게 죽은 이 영혼이 죽어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으오리다. 정신없고 손 떨리어 급하게 갖추지 못한 글을 잠시 올리나이다.

남원 옥중 춘향 상서.’

 

편지를 다 본 후에 뉘 어디서 혹 보는지 사방을 둘러보며 눈물 씻고 내려와서 한참을 가노라니, 이건 매우 부자 농사, 남녀노소 수백 명이 일자로 늘어 엎드려 모를 한참 심어 갈 제, 짓궂은 머슴들이 두레 북 꽹과리와 걸립, 창부 무동춤에 상사소리 더 좋구나.

토동통 꽝맥꽝.

“어여루 상사디야. 우리 조선 태평시절 도덕 높은 우리 성상 미복하고 동요 듣던 요임금에 버금이라. 두둥둥 상사디야.”

“삼대 시절 덕이 높고 지혜로운 임금의 정전법이 좋을시고. 나라 논에 비를 내려 마침내 우리 사사로운 논에 미치노니 각기 논두렁에 지어 먹네. 어여루 상사디야.”

“진나라 천맥법에 빈부가 생겨나서 좋은 논은 일찍 심고 낮은 논은 늦게 심는다. 어여루 상사디야.”

“큰 들에는 늦벼요, 구렁배미 달구 올벼 쌀. 높은 논에 밭벼요, 텃논에는 찰벼로다. 어여라 상사디야.”

“기러기 떼 늘어 엎드려 게걸음이 좋을시고. 투구 쓴 듯 담은 밥과 빡빡한 보리 탁주, 저 남쪽으로 밥을 가져올 적에 밭 가는 농부 와서 좋아한다. 어여라 상사디야.”

“초 벌, 두 벌 만도리에 김을 매어 갈 제 유월 뜨거운 하늘 더운 날에 땀방울이 곡식 밑에 떨어지니 어찌할꼬. 어여라 상사디야.”

“이 농사를 다 짓거든 높고 낮은 밭에 수확이 많아 농짝에 가득 차고 수레에 가득하니, 오곡 잘 여물어 풍년 드소. 어여라 상사디야.”

“우걱찌걱 쓸어 들어 천 개의 창고를 구하며 이에 만 개의 수레 상자에 채워 아내와 아이에게 지게 할 적에. 어여라 상사디야.”

“경복궁 새 대궐의 요순 같은 우리 임금 저 소뿔 잔을 들어 가득 부어 남산 술잔 올려 보세. 어여라 상사디야.”

어사또 길에 서서 한참 구경하시다가 건너 두렁 바라보니 갓 쓰고 중추막에 긴 담뱃대 중간쯤 쥐고 서너 명이 앉았거늘, 반민인 줄 짐작하고 그 옆으로 건너가서 혼잣말로 말을 붙여,

“농사 때를 아니 잃고 백성들이 즐겨 하니 본관 아마 명관이지.”

한 사람이 대답하되,

“돈은 매우 밝게 보지.”

어사또 반겨 물어,

“어찌하여 그러하오?”

“굶지 않는 백성들을 나날마다 청하여서 대고 돈을 꿔가라 하는데, 수이 허락 아니하면 엄한 형벌 로 엄히 가두어 뺏어 가고.”

“송사는 어떨는지?”

“돈을 주면 이기게 해 주고, 감영에서 환자 한 섬에 닷 두씩 돈으로 받으라 하면, 고을에서는 돈 받기를 한 섬에 칠팔 두씩. 세곡 한 섬에 열 냥하면 관아에서 받는 값은 열두석 냥. 향교 소임에도 값 받으니, 오른 사람 할 수 없고, 돈 받은 장부에 깎고 소임 파니 아전도 살 수 없어, 출패 보고 노형하고, 간사하고 교활한 향리 수족 삼아 우리 남원 사십팔방 돈이라고 생긴 것은 아이 고름 채인 것도 씨 없이 다 긁었으니, 이후에 태어난 아이 돈 얼굴 모르지요.”

어사또가 깜짝 놀라,

“어허, 백성들 처지가 말 아니로고. 구관은 원님 노릇을 어떻게 했다 하오?”

“짝이 없는 명관이지. 백성들이 퉁비하자 숟가락을 거뒀지요.”

어사또 들으신 후 차차 앞으로 들어가니 남원 읍내 여기로다. 사면을 둘러보니 산천은 낯이 익고 성곽은 전과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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