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신채효성두본 춘향가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V. 치죄와 해로 (1/3)

New-Mountain(새뫼) 2020. 7. 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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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치죄와 해로

 

가. 사람 입에 상하 있나, 이제 곧 자리에다 똥쌀 놈이 몇 놈일까.

 

그 이튿날 본관 사또 생신 잔치 차리는데, 갖춘 것이 매우 대단하여 광한루 붉은 난간에 색칠한 누각이 구름 속에 솟았는데, 처마에 흰 베로 아름다운 휘장을 하늘에 닿게 치고, 사면의 두른 것은 물색 고운 푸른 휘장, 대청에 펴 놓은 것 꽃무늬 보료, 꽃 가득한 방석, 학춤과 장수들의 쟁강춤과 용알북춤, 배따라기, 풍류하는 갖가지 악기 모두 준비하였으며, 기생, 소리꾼, 광대, 악사 제일가는 이만 골라 뽑아 사면으로 벌여 세고, 각읍 수령 모여들 제 호기가 대단하다.

영장을 겸한 운봉 현감, 승지 당상, 순천 부사, 나이 많은 곡성 현감, 무주, 용담, 진안, 장수, 광양, 낙안, 흥양 현감, 장흥, 보성, 강진이며, 화순, 동복, 광주 목사, 능주, 남평, 옥과며, 창평, 담양, 순창, 임실 여러 고을 원님들 행차 들어올 제,

별연 앞에 권마성, 승교 옆에 부축 소리 사람들이 에워싸서 어깨가 포개지고, 더운 땀을 서로 뿌려 비가 오듯 하는구나. 누각 위에서 서로 만나 주인과 손님의 예를 차려 읍하고 앉은 후에, 낭자한 삼현 소리 떵꿍이 나고 선녀 같은 기생들이 손춤 끝에 검무 출 제 좌정, 우정, 생선풍, 우조, 계면조 노랫소리, 나는 티끌 고요하고 가는 구름 머무른다.

하교상(下交床) 물리고서 큰 다담상 올리려 할 제,

이때에 어사또는 서리, 역졸 단속하여 근처에 매복하고 몰래 다니던 그 복색에 광한루 마루 앞에 얼굴을 쳐들고 천천히 걸어 들어가며,

“아뢰어라, 사령아. 여쭈어라, 급창아. 먼 데 있는 과객으로 빌어먹으며 다니다가 이러한 좋은 잔치 발부리 운수가 좋아 다행히 만나오니, 맨 끝자리에 앉히시고 술과 안주 조금 먹이시라 대청 위에 여쭈어라.”

소리를 크게 하며 거리낌 없이 들어가니 뜰에 가득한 나졸이며 소란을 막으려는 장교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팔 잡거니 등 밀거니,

“어떠한 미친 사람인지 체면이 그리 없어 수령님네 모인 자리에 이 괴상한 행동이 웬 짓인고. 음식 얻어먹으려면 감생청을 찾아가라.”

밖으로 끌어내니 어사또 고개 들어 대상을 바라보며,

“가난하고 넉넉함은 달랐으나 지체는 일반이라. 그것이든 아니든 모르고서 손님을 쫓기를 이리하니, 남궁에서는 노래하는 풍악 소리가 드높은데, 북궁은 수심에 잠겨있지만 바뀔 때가 정녕 있지.”

운봉 영장 토포사라 눈치 빠르고 말귀 알아 통인 불러 분부하되,

“그 손님 거동 보니 의복은 남루하나 기상이 준수하니, 행패를 부리지 말고 대청 위로 인도하라.”

어사또 좋아라고 광한루로 올라올 제, 교만한 모습을 잔뜩 빼어 한 어깨는 내리치고, 한 어깨는 푹 솟구어 고개는 꼿꼿하고, 배 내밀고 뒤로 젖혀 게트림 길게 빼고, 청목 부채로 코 가리고, 길버선 털메신을 벗을 생각 아예 없어 보료 위에 잘잘 끌어 눈 길게 발을 떼니, 통인들이 쉬쉬 하며,

“이 사람 보료 보게.”

어사또 씩하게 웃어 속마음에 하는 말이,

“모르겠다. 보료 위에 똥 쌀 놈이 몇이 될지.”

본관의 코앞에 가 바짝 들어앉으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명성을 들은 지가 이미 오래 되었더니 부평초가 물 위에 뜨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니 장히 좋소.”

본관 화를 내어 운봉을 바라보며,

“운봉은 생각이 많아 미친놈을 청하였고.”

운봉이 어사 불러,

“저 손님네 이리 오오. 이러한 많은 손님 주인 혼자 대접하기 오죽이 괴롭겠소. 내 옆으로 와서 앉아 우리 둘이 말합시다.”

어사또가 일어나며 본관을 또 건드려,

“나도 만일 부자라면 높이 묻고 청하여서 돈 꾸어라 하련마는, 차린 꼴이 초라하니 나더라 집 없다 마다 하지.”

본관 오죽 화나겠나. 어사또 건너가서 운봉 옆에 앉으면서 다정히 치하하여,

“음식 얻어먹기를 일삼으면 세상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오 마는 빌어먹는 미친 손을 영감은 대접하니 내 마음에 감사하오.”

운봉이 대답하되,

“그런 과객 저런 과객 분수가 다 있지요.”

어사또의 앉은 앞에 화로가 놓였으니, 본관의 수청 기생 본관 담배 붙이려고 별간죽 은수복에 양초를 담아 들고 어사또의 앞에 오니, 어사또가 소매에서 한 뼘 되는 기와 조대 썩 집어 내어놓고 쌈지의 가루담배 손바닥에 떨어 놓아 흰 가래침 탁 뱉어서 되게 비벼 담아 주며,

“이 대부터 붙여 오라.”

저 기생이 화를 내어,

“염치도 아주 없네. 본관 수청 기생더러 담배 붙여 달라 하네.”

조대를 빼서 입에 물고 앉아,

“내 대를 물러 오고, 네 대를 찾아가라.”

머지않아 다담상을 올리는데 관장 상과 과객 상이 아무련들 같겠느냐. 어사또께 드린 상이 조금 초라하였구나. 어사또가 눈 내둘러 이 상 보며 저 상보며 분주히 서둘더니, 순천을 바라보며,

“여보시오. 순천 영감 사람 입도 위아래 있소.”

순천이 알아듣고 대답을 좋게.

“한 자리에 먹는 음식 위아래가 왜 있겠소. 우리는 먼저 오고 손님은 후에 오셔 불시에 차리노라 조금 부족하였나 보오.”

어사또 하는 말이,

“수령이나 과객이나 입맛은 같을 텐데 그 상 보고 내 상 보니 속에서 화가 나오.”

거상풍악이 길게 치고 아리따운 기생들이 유리 종지, 호박 술잔에 계당주 감홍로를 가득가득 부어 들고 사이사이 늘어앉아 권주가 장진주를 엇걸어 불러낼 제, 어사또의 상 앞에는 수급비라도 나올 수 있나.

순천을 또 불러서,

“여보시오. 순천 영감 사람 귀도 상하 있소.”

순천이 알아듣고,

“여봐라. 기생 하나 저 손님 앞에 가서 노래로 술 권해라.”

그중에 늙은 기생 부득이 앞에 와서 사기 접시에 모주 부어 어사또께 드릴 적에, 바로 보기 더럽다고 고개를 외로 틀고, 권주가는 과하다고 시조로 권하는데, 하오가 안 나와서 반말로 부르겠다.

“잡으랑께, 잡으랑께. 이 술 한 잔 잡으랑께. 차나 국보다는 거친 술이 더 낫다 해도 과객에게 그도 과하지. 엥간한 거들먹 빼지 말고 잔 어서 받더랑께.”

어사또 속 좋기는 천생에 기생 서방. 속 안 좋고 기둥서방 되면 몸과 목숨을 그르치듯 하는구나. 술잔 받아 잡수시며, 시조 사설 척 맞추어 반말로 대답하여,

“술맛이야 어떻든지 큼직한 입사발에 펄펄 넘게 쳐 달랑께.”

기생 가객 통인들이 웃음에 못 견디어 입 가리고 허리가 부러진다. 어사또 안 마음에 남원 고을 관속들이 날 알 이가 많을 터니 조급하면 솔기 터질까 청목 부채 벌려서 낯은 장 싸 두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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