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신채효성두본 춘향가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IV. 귀향과 재회 (2/3)

New-Mountain(새뫼) 2020. 7. 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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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세 탕진 허망한 신세로다, 그리해도 곧이 듣지 않을 터요.

 

날새도록 탄식할 제 이때에 소경 하나 옥 밖으로 지나는데 서울 장님 같더라면 문일수 하련마는, 시골 사는 소경이라 마구 팔아먹어,

“무꾸리들 하오.”

춘향이가 앉아 듣다,

“여보시오. 옥사쟁이. 간밤 꿈이 매우 흉하니 해몽이나 하여 보게 저 봉사를 불러주오.”

옥사쟁이 이 봉사 불러,

“저기 가는 저 봉사.”

“거 누구가 나를 찾노?”

“옥에 갇힌 춘향이가 해몽을 하려 하니 옥방으로 들어갑소.”

소경이 반겨 듣고 더듬더듬 오는구나. 춘향이 급히 나와 옥문 안에 비껴 서서,

“이리오오, 이리오.”

저 소경 거동 보소. 석화 굴덩이 같은 눈을 번뜩번뜩 번뜩이며 불똥 디딘 걸음으로,

“어디로 가, 어디로 가?”

소리만 힘들여 하며 건정건정 들어가다 옥문턱에 발 채이니, 헛수인사 한번 하여,

“댁도 평안하오?”

춘향이가 인도하여 옥방으로 들어가니 착실한 저 봉사가 지팡이와 담뱃대를 발부리로 꽉 누르고 두 무릎을 쪼그리고 뜸 뜬 듯이 앉으면서,

“간밤 꿈을 어찌 꾸어?”

“옥창에 앵도화가 어지러이 떨어지고, 단장하던 몸 거울이 한복판이 깨어지고 흉악한 허수아비 문 위에 달려 뵈니 정녕 죽을 꿈 아니오?”

저 소경 하는 말이,

“옥중 고생하는 터에 복채를 달란 말이 소리판에서 하기에는 틀렸으나, 점이라 하는 것은 귀신으로만 하는 터니 재물이나 돈이 없이는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음이라.

정성을 안 들이면 귀신 감동 못 할 터니 복채를 내어놓소.”

춘향이가 품 안에서 돈 한 냥을 내어놓으니 소경이 돈을 들어 뼘으로 뼘어 보고 한참을 웅크려,

“응응, 어허 그 꿈 신통하네. 장히 좋은 꿈이로세. 꽃이 떨어지면 열매가 열 터이니 열매는 목 자로다. 나무 목 아래 아들 자 하면 오얏 리자 정녕하고, 거울이 깨지기는 옛날에 서덕언은 깨진 거울 을 가지고서 옛 연분을 찾았었고, 허수아비라 하는 것은 낡은 옷과 찢어진 갓을 입은 것이니 이가 성 가진 사람 옛 연분을 찾으려고 낡은 옷에 찢어진 갓을 쓰고 올 꿈이나, 문 위에 달릴 제는 우러러볼 터이니 헌 옷은 입었어도 사람마다 무서워하지. 어허 그 꿈 장히 좋으이.”

복채를 집어 차고 부리나케 일어서며,

“내 해몽과 같아서 자네 몸이 잘 되거든 우리 같은 병신 목숨 부디부디 잊지 마소,”

봉사가 간 연후에 춘향이 홀로 앉아 스스로 탄식하여 하는 말이,

“나의 꿈은 흉한 꿈이요, 소경 말은 실속이 없는 말이라. 우리 낭군 이도령님 어찌 지금 올 수 있나.”

눈물로 해를 지고 밤 깊도록 탄식하다가 정신없이 졸더니 천만뜻밖 저의 노모 문밖에 와 크게 불러,

“이아, 아가. 잠 자느냐?”

춘향이가 깜짝 놀라 옥방 문을 떡 열치고,

“어머니 와 계신가?”

“오냐, 오냐. 내가 왔다.”

“적적한 깊은 밤에 약한 다리 어두운 눈 어찌 찾아 와 계신가?”

“긴히 할 말 있으니 이리 잠깐 나오너라.”

춘향이는 효녀인 고로 밤에 온 늙은 어미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잠시 지체 아니하고 옥문으로 기어 올 제, 아픈 다리 무거운 칼 걸을 수가 전혀 없어 뭉긋뭉긋 기어 오니, 춘향 어미 하는 말이,

“애고 내 딸 불쌍하다. 저 좋지 못한 몰골이 웬일인고. 밤낮으로 기다리던 너의 낭군 와 계시니 문구멍으로 내다 보라.”

춘향이가 옥문 잡고 간신히 일어서서 문구멍으로 내다 볼 제, 비위 좋은 어사또가 헌 옷에 찢어진 갓 차린 맵시 부끄러움 하나 없어, 연잎 뜬 듯 낯을 들고 달려들며 하는 말이,

“이 사람이 이 얼굴을 행여나 알아볼까?”

춘향이가 자세 보니 갑자기 그 형상이 바뀌기는 하였으나, 예전의 모습은 그대로이구나.

“와 계신가, 와 계신가. 우리 낭군 와 계신가. 더디었네. 더디었네. 어찌 그리 더디었나. 그 사이에 부모님은 건강은 안녕하옵시며 서방님 천 리 행차 평안히 오시니까? 어찌하여 그 글과 글씨로 급제를 못 하신가. 입은 옷차림에 꾸민 맵시 남 보기는 과객이나, 하는 말씀 뵈는 기운 내 짐작은 의심이지. 수가를 속이려고 범수 옷을 입었으나, 소진의 처 내 아니니 베틀에서 내려오지 않기를 하겠는가.

집안이 망하여도 내 서방, 과객이라도 내 서방, 그리다가 얼굴 보니 이제 죽어 한이 없네. 그새 그리 떨어져 있기는 동방에 촛불 밝히고 새 사람 만나 금실 좋게 즐기노라 나를 아주 잊었던가. 오늘 저녁 찾아오기 어찌 그리 신통한가. 구름에 싸여 온가. 바람에 불려온가. 구성진 그 목으로 이야기나 조금 하소.”

어사또가 시게 웃어,

“어허, 내 일 허망하다. 내 신세 된 내력은 너의 노모 들었으니 물어보면 알려니와 사또 올라가신 후에 다른 고을 못 하시고, 집안의 변고가 끊이지 않으니, 나발소리 들던 돈이 끔찍이 허망하게 없어지더라. 쓴 데 없이 간데없어 날짜를 헤아리며 콩만 든 점심을 먹으니, 외상 팥죽 아니면은 연명하기 할 수 없고, 자나 깨나 너의 생각 장가도 들기 싫고, 과거도 보기 싫어 너를 찾아보려 하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걸어서 내려올 제, 오이껍질이 아니면은 말이 아니 되었지야.”

춘향이 들은 후에 옥문 구멍 손을 넣어 어사또의 손을 잡고 다정히 하는 말이,

“궁상을 저리 떨면 내가 곧이들을 테요? 아내를 몰라본다는 말이 사기에는 있거니와 나조차 그러할까. 날짐승 중에 봉황이와 길짐승 중에 기린이는 상서로운 줄 다 아나니, 어찌하여 저 기상에 춥고 배고픔을 이기지 못할 터인가. 

긴한 증거 또 있는 게 연약한 이 기질이 혹독한 곤장 맞고 죽었을 제 혼이 날아 하늘에 올라가니, 직녀 성군 하는 말씀, ‘네 전신은 내 시녀요, 네 낭군은 태을 선관이고, 생을 겪은 후에 부귀영화 하리라.’고 정녕 분부하시던데, 서방님은 아니 오고 독한 매를 또 맞으면 이 목숨이 횡사하고 직녀 성군 헛말 했을까. 주야 걱정 하였더니, 오늘 저녁 임 오시니 이번 나는 아니 죽네. 좋을시고, 좋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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