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신채효성두본 춘향가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IV. 귀향과 재회 (1/3)

New-Mountain(새뫼) 2020. 7. 7. 11:07
728x90

IV. 귀향과 재회

 

가. 거친 풀만 가득한 춘향 집에 춘향 어미 지성으로 비는구나.

 

사잇길로 흩어 걸어 광한루에 올라가니 여러 겹의 정자 층층 나란히 앞에 있구나. 집은 아니 변했으나 지난 시간 사람 일은 다시 오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것마다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구나. 나귀 매던 버드나무 안개는 옛날처럼 십 리 제방을 둘러싸고, 그네 뛰며 놀던 꽃숲에서 복숭아꽃은 예전처럼 봄바람에 웃고 있구나. 철 따라 나는 문물과 아름다운 경치는 이러한데, 마음에 품은 사람은 어디 갔노.

시름없이 바라보며 방황하시다가 황혼의 때를 틈타 춘향 집을 찾아가니, 부서진 대나무 사립은 바람 없이 닫히었고, 사람 자취 없는 뜰에 거친 풀만 가득하다. 꽃 병풍 뒤에 은신하여 동정을 살펴보니 후원에서 사람 소리 은은히 들리거늘 가만히 열어 보니 춘향 어미 소리로다. 황토로 제단을 묻고 정화수 한 동이를 소반 위에 받쳐 놓고 그 앞에 가 꿇어 엎드려 지성으로 비는 말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삼십삼천 이십팔수 다 굽어 보옵소서. 불쌍한 내 딸 춘향 낭군 위해 수절하다가 옥중에서 곤장을 맞고 혼이 되어 가련하니, 우리 사위 이도령을 어서 수이 급제시켜 전라 감사하시던지, 전라 어사 하시던지 수이수이 내려와서 살려 주게 하옵소서.”

빌기를 다한 후에 일어나서 네 번 절하고 정화수 갈아 놓고 또 그렇게 비는구나. 어사또 들으시고 혼잣말로 칭찬하여,

“내 급제와 내 어사가 춘향 어미 덕이로다.”

춘향 어미 다 빈 후에 앞으로 돌아오며 상단 불러 하는 말이,

“너의 아씨 시장하겠다. 미음이나 데워 가거라.”

어사또 썩 나서며,

“자네 그새 평안한가?”

춘향 어미 노인이라 동네 있는 소년들도 썩 기억을 못하는데, 하물며 어사또는 아이로 보았다가 어른이 되었으니 얼른 보고 알 수 있나. 이마 위에 손을 얹고 한참 보다 하는 말이,

“약장사 하는 양반 산동 사는 최 석사지?”

“이 사람 딴말 마소. 최가는 당치 않네.”

“이것 내가 체면을 잃었네. 자라는 사람이라 갓 쓰기는 언제 했나? 아이 명창 유명하던 운봉 비전 마을 송수재지?”

“자네 말이 또 실체일세. 송가는 무슨 송가 자네 참 모르겠나?”

“참말로 모르겠네.”

“오래 졸라 무엇 하게. 구관 자제 이도령은 자네 혹시 알겠는가?”

춘향 어미 깜짝 놀라 달려들어 손을 쥐고,

“기다리고 바래더니 우리 사위 이제 온가. 나이 많아 눈 어둡고 고생 많아 정신없어 썩 기억을 못했으니 부디부디 노여워 마소.”

상단이가 내달으며 절하고 여쭈오되,

“대감님 대부인님 문안 안녕하옵시며 서방님 천리 행차 평안히 오시니까?”

어사또 대답하되,

“오, 모시고 잘 있더냐?”

춘향의 자던 방문 춘향이 갇힌 후에 잠가둔 지 오래구나. 방문 열고 불 켜 놓고, 장모 사위 둘이 앉아 수작을 하는구나.

“무정하데, 무정하데. 우리 사위 무정하데. 한번 이별 가신 후에 한 장 편지 없었으니 불쌍한 내 딸 춘향 주야 상사병이 되어 거의 죽게 되었더니, 신관 사또 도임 후에 수청 아니든다 하고 엄한 형벌로 옥애 갇힌 여러 날에 살 수가 없었으니 이를 어찌하자는가. 가신 후에 무엇하고 장가는 언제 들고 급제는 왜 못하고 대지팡이와 짚신 차림이니 가세조차 탕진했는가가. 얼굴도 못 믿겠네. 우리 사위 저 얼굴에 과객 맵시 웬일인가. 정성도 쓸데없네. 우리 사위 부귀하라 밤마다 하늘에 빌었네. 어찌하여 저리되었는지 이야기나 조금 하소.”

어사는 정체를 감추고 돌아다님이라. 첩의 장모는 고사하고 대부인이 물으셔도 속이는 법이었다. 의뭉을 장히 피워,

“남원서 올라간 후 사또가 벼슬살이에서 떨어져 다른 고을 원님 못 하시고 도적을 만나고 집에 불이 나서 가세는 탕진하고, 나는 아무 경황 없어 밤낮 생각 춘향이라. 책 펴도 춘향, 생각 붙잡아도 춘향 생각, 밥 먹어도 춘향 생각, 잠 잘 제도 춘향 생각, 할 수 없어 공부하기 그만두고 남·북한 절 구경과 재상댁 산에 있는 정자, 강에 있는 정자 다니면서 소일이나 다니기로 장가들 가망 없어 외자로 상투하고 굶다가 못하여서 자네 집을 찾아와서 데릴사위 노릇하며 친한 아전 후서방하여 연명이나 하자 했더니, 자네 딸이 저리되니 신수가 불길하면 매사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네 그려.

장모가 내 얼굴을 이왕 추키니 그 말이지, 내가 암만해도 그저 죽던 아니하여 관상쟁이가 나를 보고 강태공의 기상이라 팔십이 막 넘으면 무한 부귀하리라 하데.”

춘향 어미 깜짝 놀라,

“서방님 직금 나이 이십이 못 다 되니 부귀하기 기다리면 춘향은 옥중에서 환갑을 지내겠네. 그러나저러나 이왕 내 집 와 계시니 아무리 피곤하여도 옥의 가 다녀오세.”

어사또 마음에는 아무리 간절하나 겉으로 사양 한번 하여,

“아서, 내사 싫으이. 신수가 불길한 사람이 그런 데를 갔다 가서 본관이 만일 알고 강샘을 하노라고 잡아들여 형문하면, 연한 다리 앉은뱅이 되어 과객질도 못해 먹게.”

“피차에 양반이요, 서방님이 본래 사또 자네시니 칠 일도 없거니와 설령 치면 맞으시려오.”

“똑같이 양반이나 당파가 다른 고로 얼굴을 알지 도 못 하였고, 체면을 알 양이면 전관의 자제가 수청 겁탈하고 하였다 하면 어이하리. 계집에게 몹시 반해 눈에 독이 올랐으니 범 탄 놈의 기상이요, 낮에 나온 도깨비라. 다가올 생사 돌아보지 않고 저 할 대로 하게 되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우니 내 신세가 그 아니 비웃음을 당하지 않을까.”

“그럴 리가 왜 있겠소. 내 집에 오시고도 저 아니 와 보았다면 제 마음이 어떻겠소.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여 보오.”

촉롱에 불 켜 들고 문을 열고 나가거늘 어사또가 못 이긴 체 춘향 어미 뒤를 따라 옥으로 들어갈 제, 춘향이가 지나간 밤 초경 이경 못든 잠을 삼경에야 겨우 드니 옥 창문에 앵도꽃이 어지러이 떨어지고 단장하던 몸 거울이 한복판이 깨어지고, 흉악한 허수아비 문 위에 달렸거늘 깜짝 놀라 잠을 깨니 한때의 헛된 꿈이라.

탄식하여 하는 말이,

“내 신세로 꾼 꿈이니 꽃같이 떨어지고 거울같이 깨어지면 허수아비 모양으로 빈 가마니로 묶으려나.”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