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 몸이 죽기로야 하겠소만, 임 그리워 애고애고 설운지고.
이때의 춘향 어미 상단을 데리고서 냇가로 빨래 갔다 이 소식을 늦게 듣고, 아홉 번 구르고 열 번 거꾸러지며 급히 오니, 춘향이가 몹시 매를 맞고 벌써 하옥하였는데 뻣뻣한 송장이라. 우르르 달려들어 춘향의 가는 목을 칼머리 앙구어서 무릎 위에 올려놓고 두 낯을 한데 대고 문지르며 통곡한다.
“애고 내 딸 죽었구나. 눈을 떠라, 눈을 떠라. 네 어미 내가 왔다.”
가슴을 내려 씻고, 입으로 코를 빨며 상단을 아래 앉아 저의 아씨 상한 다리 살손으로 주무르고 청심환, 소합환과 소주, 아이 오줌, 생강즙 등등을 입에다 전짓대 대고 무수히 흘려 넣으니 수식경 지낸 후에 춘향이 숨이 튼다.
“후유.”
일성 긴 한숨에 감은 눈을 겨우 뜨니, 노모와 상단이가 위아래로 앉았거늘, 저의 어미 손을 쥐고,
“어머니, 우지 마소. 신수가 불행하여 혹독한 매를 맞았으나 이 몸이 죄 없으니 죽기야 하겠는가.”
춘향 어미 눈물 씻고 춘향의 손을 쥐고 온갖 사정하는구나.
“아비 없는 무남독녀 너 하나뿐이기로 진자리에 내가 눕고 마른자리 너를 뉘여 배고플까, 추워 할까, 다칠세라, 병 날세라, 손톱으로 튕긴 일 없고, 가시 아니 긁혔으니, 딸 낳으면 농와라는 문자는 나에게는 부당이라. 손바닥의 진주같이 밤낮 사랑 길렀더니 새 종아리 같은 다리 삼모장이 웬일인가. 아무리 생각하되 죽을 밖에 수 없으니 너 죽는데 보지 말고 내가 먼저 죽으련다.”
가슴 탕탕 뚜드리니 춘향이가 하는 말이,
“내가 기절하였을 제 이상한 일이 있어 정녕 아니 죽을 터이니, 이야기나 들어보소.”
다른 가객 몽중가는 황릉묘에 갔다는데, 이 사설 짓는 이는 다른 데를 갔다 하니, 앉아 계신 분들의 처분 어떨는지.
춘향이가 꿈 이야기를 자세히 하는구나.
“죄 없이 곤장 맞기 원통하고 분하기에 삼십 대를 다 맞도록 아프단 말 아니하고, 내 마음속에 있는 대로 낱낱 죄 없음을 말하였더니, 묶은 것을 풀라 하는 소리 정신이 삭막하여 어쩌는 줄 모르고서 이 몸이 나비 되어 바람결에 싸이어서 조각조각 높이 떠서 위로만 오르는데, 가만히 헤아려 보니 하니 팔구만 리 오르더니 찬 기운이 뼈저리고 맑은 빛이 눈부신다.
옥 같은 좋은 밭에 아름다운 꽃과 풀이 가득 피고 은 같은 맑은 바다에 기이한 짐승과 신비로운 물고기가 떠서 논다. 사면 흰 느릅나무 수풀 속에 까막까치 우는구나. 한참 구경하노라니 구름옷에 안개 치마 입은 나이 어린 여동 하나 옥고리와 여의주 손에 쥐고 고이 걸어 나오더니 나를 보고 반기면서 성군께서 부르시니 어서 들어가자기에 마음의 괴이하여 공순히 대답하되,
‘인간의 천한 몸이 우연히 여기 와서 지명도 모르는데 어떠하신 성군께서 어찌 알고 부르리까.’
여동이 대답하되,
‘가 보면 알 것이니 나의 뒤를 따라오라.’
여동과 함께 수십 걸음 들어가니 꽃 무늬 영롱한 좋은 집의 문 위에 붙인 현판 천정전 세 글자를 황금으로 크게 쓰고, 그 뒤에 또 있는 집 현판에 영광각 운모로 병풍 둘러치고, 옥 눈처럼 희고 깨끗한 자리를 폈으니 산호로 갈고리를 꾸려 수정 발을 매달고 향 주머니에 난초와 사향의 향기 일어 정녕 인간 아닌 곳에, 어떠하신 한 부인이 얇은 비단옷에 흰 비단 치마 봉황 보요 관을 쓰고 백옥 베틀 황금 북에 칠양금을 짜시거늘, 계단 아래에 절을 하니 여동을 분부하여 높은 대 위로 인도하여 특별히 만든 의자에 앉힌 후에 성군이 분부하되,
‘네가 이 집 알겠느냐? 세상 사람 하는 말들 저 물이 은하수요, 내 별호가 직녀성이라. 네가 전에 이곳 있어 나와 함께 지내던 일 아득히 잊었느냐?’
다정히 물으시기에 다시 꿇어 여쭈오되,
‘인간의 천한 몸이 창녀의 자식으로 여염집에 나고 자랐옵더니, 이곳 어찌 아오리까?’
성군이 웃으시며,
‘전생에 하던 일을 자세히 들어보라. 네가 나의 시녀로서 서왕모의 반도 잔치에 내가 잔치 참예 갈 제, 네가 나를 따라왔다가 태을성군 너를 보고 애정을 못 이기어 반도 던져 희롱하니, 네가 보고 웃은 죄로 옥황상제 크레 화를 내사, 둘이 다 인간 땅에 귀양보냈으니, 너의 낭군 이도령이 태을의 전신이라. 전생의 연분으로 이생 부부 되었으나 고생을 많이 시켜 웃은 죄를 다스리자 이 재앙을 만났으니, 괴로움을 달게 여기고 지내면은 후일에 부귀영화 측량이 없을 것을, 약한 몸에 중한 형벌 뜻밖에 죽게 됨도 걱정이 되고 좁은 성정 설운 마음 자결할까 위태하기에 너를 지금 불러다가 이 말을 이르나니, 이것을 먹었으면 매 맞은 독이 즉시 차도가 있으리니 허다한 고생 다 하여도 아무 탈이 없으리라.’
경장, 옥액 좋은 술과 교리, 화조, 과실 안주, 여동 시키어 주시거늘 돌아앉아 먹어보니 정신이 상쾌하여, 직녀 성군 모시고서 반도회에 갔던 일이 어제같이 환하게 떠오르기로 다시 인간 아니 오고 천정전에 있자 했더니 성군 분부하시기를,
‘하늘이 정하신 일 임의로 못할 테요, 너의 노모 너 기다려 시각이 바빴으니 어서어서 돌아가서 이 고생 겪은 후에 인간 오복 누리다가 이곳으로 도로 와서 만날 날이 있을 터니 섭섭히 알지 말고 급급히 돌아가라.’
여동이 부채 들고 두 번을 부치더니 바람결에 몸이 싸여 이곳으로 내려오니 술과 과실 좋은 향내 입에서 그저 나네.”
춘향 어멈 깜짝 놀라,
“애겨, 이것 큰일 났다. 독한 매에 넋 나가서 빈 입을 씹는구나. 인간의 천한 몸이 직녀성을 어찌 보며 구만리 먼 하늘을 어찌 그 새 다녀오리.”
서로 잡고 통곡한다.
하루 이틀 열흘 보름 간신히 지낼 적에 옥중에 설운 고생 갈수록 어렵구나. 철옹같이 두른 담에 사람 소리 끊어지고 외만 남은 부서진 벽 비바람을 못 피하고, 헌 가마니에 벼룩 빈대 몸 굼실거려 살 수 없고, 깊은 밤에 부엉이, 올빼미 귀 시끄러워 잠자겠나.
하늘이 흐리고 비가 내려서 축축한데 귀신의 곡소리에 간신히 지내더니 달은 밝고 바람은 선선한데 두견새 소리가 또 간장을 끊는구나. 소중랑 북해에서 기러기는 아니 오고, 반첩여 장신궁에 반딧불만 지나간다. 때 묻은 남루 의상, 쑥때 머리 귀신 얼굴, 적막한 옥 안에서 혼자 앉아 생각나니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우리 낭군 보고지고. 오리정 이별 후에 한 자 편지 없었으니, 부모 봉양 글 공부에 겨를 없어 그러한가. 새장가 들어 신혼으로 금실 좋게 지내느라 날을 잊고 그러한지. 무산신녀 구름 되어 날아가서 보고지고. 달 속의 선녀인 항아처럼 가을하늘에 높이 솟아 번듯 돋아 비추고자. 가고 오는 것이 막혔으니 앵무새 말 같은 편지를 내가 어찌 볼 것이며 밤새워 뒤척이며 잠 못 이루니, 나비가 되어 임을 만나는 꿈을 꿀 수 있나. 손가락에 피를 내어 내 사정을 편지 할까. 간장의 썩은 물로 임의 얼굴 그려 볼까.
한 떨기 배꽃 가지에 봄비를 머금은 듯 내 눈물을 뿌렸으면, 밤비에 들리는 말방울 소리에 창자가 끊어질 듯, 비만 와도 임의 생각에 임도 나를 생각할까. 푸른 연못에 떠 있는 연꽃 캐며 남편 기다리는 여인과, 바구니 들고 임 생각에 뽕 따는 것을 잊은 아낙네들도 낭군 생각 일반이나, 나보단 좋은 팔자이리. 옥문 밖을 못 나가니, 연 캐고 뽕 따겠나. 임을 다시 못 뵈옵고, 옥중에서 곤장 맞아 죽게 되면 무덤 앞에 돋는 나무 상사수가 될 것이요, 무덤 근처 있는 돌은 망부석이 될 것이니 생전 사후 이 원통을 알아 줄 이 뉘 있으리. 애고애고, 설운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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