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신채효성두본 춘향가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III. 고난과 기다림 (3/4)

New-Mountain(새뫼) 2020. 7. 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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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암행 어사 제수 받아 남원 고을 가려는데 춘향이가 죽는다오.

 

하룻밤 슬퍼하며 지낼 적에,

이때에 도령님은 본댁에 올라가서 재상댁과 혼인하고 글공부만 힘쓰더니, 진풍연 잔치 끝에 경과를 주시거늘, 문방사우 가지고서 춘당대에 들어가니 ‘요임금이 다스린 오십 년’이란 글제를 걸었거늘, 봉황을 토하고 말에 기대어 쓰는 글재주, 용은 구름을 타고 뱀이 안개를 노니는 필법을 마치어 첫 번째로 글을 지어 가장 먼저 글장을 바치었으니, 임금의 눈에 기쁨이 넘쳐 장원 급제 곧바로 한림 벼슬 홍패 교지 타 가지고 돈화문 밖 썩 나서니, 입은 것은 청삼이요, 꽂은 것은 사화로다.

준마에 은안장 얹고, 화동이 옥피리 불며, 청개와 홍개를 별배와 추종이 들고, 장악원 풍류 속에 호기 있게 문에 도착하여 부모가 맞이하고 사당에 참례하며 선산 찾아 제사 지내고 유가한 후에 임금 은혜에 감축하더니, 이한림 풍채 학문은 임금이 사랑하사, 인정전에 들게 하셔 간곡하게 하교하시기를,

“당나라 문장가의 글 두 구절이 만고의 격언이라. ‘저희들은 임금님 마음이 밝게 비치는 꽃불이 되어 화려한 잔치 자리만 비추지 말고, 도망 다니는 어려운 집안들도 두루 비춰 주리라.’ 하는 말이 진실한 말이기로, 임금이 정사에 바빠 겨를이 없고, 궁궐이 깊고 깊어 온 세상이 멀었으니 백성들의 병과 고통을 옥루에서 알 수 있나.

팔도어사 보내기로 양사에서 문신 가리려는데, 너 생긴 몸가짐 보고 너 지은 글을 보니, 조정의 재목이요, 유학의 문장이라. 나이는 비록 젊었으나 기쁨과 슬픔을 같이 할 것이기에 호남 어사 특별히 제수하니 네 가서 조심하라.”

마패 하나, 유척 하나 사목책을 주시거늘, 한림이 황송하고 감격스러워 머리를 숙에 은혜에 감사하고 여쭈오되,

“나이 어리고 재조 없어, 범방이 말 고삐 잡아 정치를 바로 하였단 말 설령 믿지 못하오나, 왕준이 쉽고 어려움을 피하지 아니하였던 일을 본받고저 하옵나니, 착한 사람은 승진시키고 악한 자는 처벌 하옵기를 정성을 다하여 보답하기를 꾀하나이다.”

하직하고 절을 하고 물러 나와 임금의 명은 속히 거행하기 위하여 하룻밤이라도 집에서 유숙하지 아니하고 급하게 떠날 적에, 서리, 중방 단속하여 청파에서 역마 잡아타고 그날로 강을 건넜구나. 경기도 충청도 길가의 각읍 지체 없이 내려와서 여산에 당도하니 전라도 초입이로다. 종인들을 분발시켜 각읍 사정을 살피고 다니라 보내시고, 어사또의 차린 복색 어찌 보면 가난한 양반이요, 어찌 보면 점쟁이라.

모자 받은 굵은 포립 죽영을 달아 쓰고, 빨아 다린 중추막에 목분합을 눌러 띠고, 무명 고의 적삼이며 새 길버선 흰 총신에, 한 손에는 곱돌조대, 또 한 손에 청목으로 만든 부채 들고 전라감영 들어와서 여러 날 머무르며, 오십삼주 삼등 수령 잘 다스린 공적에 잘되고 잘못됨을 대강 먼저 염탐한 후에, 임실 보고 오수 보고 남원으로 들어오니, 논 가는 농부 하나 한 쟁기에 두 소 매어 논을 한참 갈아 가다 논두렁에 쉬어 앉아 옆구리의 돌통대를 쑥 잡아 빼어 들어서 헛김 나는 아래통을 아드득 바싹 돌려 구록피 찰쌈지에 가루담배 한 줌 내어 맑은 침 흰 가래침 와락 툭탁 뱉어서 손 위에 도두 놓고, 이 손 사이 저 손 사이 싸그락 싹 비비어셔 돌통대에 되게 담아 엄지손가락 힘써 눌러, 저리 좋은 담뱃대를 뉘가 빼앗아 가는지 열 손가락 움켜 쥐고 곁불에 푹 찔러서 두 눈이 우묵, 양 볼이 딱딱 쥐소리 나게 뿍뿍 빨아 먹는구나.

어사또가 지나는 나그네같이 그 옆에 가 쉬어 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농부하고 말을 붙여,

“두 소가 함께 가니 어떤 소가 잘 당기노?”

“소 들으면 화낼 텐데 그 말 하여 뭐 하게요?”

“그도 그러할 듯하니 안 듣는 이 말을 할까.”

“자네 고을 원님 정체 어떠하다 한다던가?”

“우리 고을 네 번 망했지.”

“원님 일은 매우 잘 하는가?”

“이를 게 들어보오. 부자는 패망, 아전은 도망, 백성은 원망, 출패는 요망. 그게 네 번 망한 것 아니오. 흉악한 일 또 있지요.

우리 고을 춘향이가 매우 예쁜 미인이지. 구관 자제 책방하고 백년가약 맺었기로 수절하고 있는 것을, 신관 사또 이 원님이 수청 아니 든다 하고 달마다 세 번씩 불러내어 뚜드리며 목에 칼을 씌우고 옥에 가두며 볶아 내니, 불쌍한 춘향이가 그사이 죽었는지 정녕 재앙이 미칠 것이오. 재앙 받을 놈 또 있것다. 구관 책방 그 자식은 한 번 간 후 소식 없어 저 까닭에 죽는 사람 돌아도 아니 보니 내 솜씨에 만났으면 논두렁에 엎어 놓고 가랫장부 공상볼기 흠뻑 때려 주련만은 그 자식을 볼 수 없어 어찌할 수가 없지.”

어사또가 말리어,

“어허 과하구나, 너무 그리하지 말렸다.”

“말라 하니 임자씨가 이도령과 일가인가?”

“일가는 아니로되, 피차 똑같이 양반이라 듣기에 불안하네.”

일어서서 나오시며 혼잣말로 칭찬하여,

“희한한 말이로다. 그러할시 분명하면 그 욕이 꿀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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