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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의 '홍경래전' - 11. 안주

New-Mountain(새뫼) 2022. 10. 3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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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安州 (안주)

 

안주(安州)는 평안도에서 제일가는 요지다. 바로 북에 청천강(淸川江)을 끼고 있고, 의주로 통하는 대로의 길목이라, 사십이 주의 병마(兵馬)에 대하여 명령권을 가진 평안 병사(平安兵使)의 본영(本營)이 있다. 따라서 성곽이 견고하고, 출반군졸이 늘 주둔하

고 있어, 시골 보통 소읍과는 그 형편이 매우 다르다.

안주가 이러한 요지니만큼, 경래도 여기를 함락시키기가 그리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하였었다. 그리하여 관군(官軍)의 병력이 이리 집중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먼저 평양에서 대동관을 폭발시켜 폭동을 일으키게 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실패로 돌아가고 도리어 이쪽의 비밀만 탄로시킨 결과로 되었으나, 경래의 안주 공격의 용의가 상당히 신중하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안주에 있는 내응 동지로는, 김명의(金銘意), 김대린(金大麟), 이인배(李仁配), 이무경 (李茂京) 형제 등이 있었는데, 이 중에서 김명의는 김진사라고 하여 제일 유력하였으나, 시골 샌님이라 그 태도가 극히 소극적이고, 김대린 이하는 모두 안주 병영의 비장(裨將), 혹은 교속(校屬)으로, 적극적이고 활동력은 있었으나, 믿음성이 부족하였다. 그러므로 모두 신도회의 이래의 동지들이나, 경래를 중심으로 한 수뇌부 측의 신뢰는 그다지 두텁지 못하였다.

그러나 안주에는 이러한 내응 동지 이외에 훨씬 큰 존재로, 미묘한 입장에 서있는 안 주병사 이해우(李海愚)가 있다. 그는 죽 - 무관으로 지내왔으나, 글도 제법 잘하였고, 더구나 병서(兵書)에는 깊은 연구를 쌓어서 지략이 비범하였다. 다만 현재 조정에서 정권을 잡고 세도를 부리는 김조순(金祖淳)의 무리들과는 파가 달라서, 안주병사의 자리도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매우 불안하였다. 그러므로 무슨 기회만 있으면 김조순의 무리를 몰아내고 중앙에서 당당하게 입신양명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다만 원래 위인 이 극히 침착하고 지략이 과인하여, 조금도 표면에 나타내지 않고, 묵묵히 맡은 임무를 충실하게 해나갔을 뿐이다.

그리다가 신도 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내린 이하 네 명이 한 번에 싹 없어졌을 때 해 우는 비밀리에 무슨 엉뚱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재빠르게 알아채고, 그들이 돌 아온 후에 은근히 대린을 어르고 어루만져서, 그 같이 그 사실을 토로시키고 말았다. 대린 편에서도, 될 수만 있으면 해우를 이편으로 끌어넣으라는 경래 등의 요청이 있었음으로, 그러한 사실을 토로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참가만 해주면 중요한 자리에 앉혀서 크게 써줄 것이라는 말까지 전하였다. 해우는 여러 가지로 자세히 그 내용을 물어서 의외로 대규모인 데 탄복하여, 그 자리에서 바로 찬의를 표하고, 다만 자기 지위가 지위니만큼 들어내 놓고는 할 수 없고, 비밀리에 측면에서 원조하고 협력할 것을 말하였다.

십이 월을 접어들며, 심상치 않은 다복동의 소문이라든가, 거기서 퍼져나오는 여러 가지 유언비어로, 안주에서도 인심이 점차로 동요되며, 더구나 십팔 일에 이르러서는 내응 동지들이 충동거리는 바람에, 수많은 시민들이 보따리를 싸 짊어지고 성 밖으로 피난하러 떼를 지어 몰려나갔다. 해우는 독한 감기가 걸려서 누워 있는 체하고, 자기 집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십구 일에는 그 전날 밤 다복동에서 기별하여 가산을 습격하였다는 소문이 들려와서 안주읍 안이 물 끓듯 뒤끓어도 해우는 여전히 칭병하고 나지 않았다. 안주목사(安州牧使) 조종영(趙鍾永)이 혼자 몸이 달아서, 해우의 집에 쫓아와서, 이러한 대란이 터졌는데 병사로서 이처럼 아무 대책도 강구하지 안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들이댔으나, 해우는 뜬소문이지 사실은 대단치 않으리라고 부인하여 버렸다. 종영은 크게 분개하여 병사는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제가 나서서 육방 아전과 군노 사령을 총동원하여 북을 울리며 군졸을 소집하고, 피란 가는 시민들을 억지로 진정시키어 요동치 못하게 성문을 닫아버렸다. 그러나 내응 동지들이 자꾸만 충동거리어, 새로 병정 모집에 응하는 자는 하나도 없고, 출번 군졸들도 오지 않고, 별별 소문이 다 떠돌았다.

해우는 한편 대린을 시키어 기병하자마자 곧 안주를 공격할 것을 주장케 하였다. 평소에 병서를 정독하였더니 만큼, 작전상 그것은 절대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가산 회의에서 대린이 안주 공격을 주장한 것도 사실은 해우의 지령이었으며, 박천 회의에서 안주 공격을 주장한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즉시로 안주를 공격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하리라는 것이 해우의 신념이었다.

그러나 가산 회의에서 대린의 주장이 완전히 묵살 당하였다는 보고를 듣고, 해우는 경래와의 협력을 거의 단념하였으나, 그래도 최후로 한 번 더 주장해보게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서도 듣지 않는 경우에는, 경래가 실패할 것은 결정적이니까 차라리 그의 목을 베어 조정에 바치어, 이것으로써 공을 세우도록 하라고 - 인배, 무경 등을 시키어 대린과 협력하도록, 박천으로 보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십일 일에는 박천군수 임성고가 옥중에서 몰래 써 보낸 자세한 보고가 들어와, 해우로서도 이 이상 더 칭병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을 수가 없이 되었다. 그리고 연이어서 내린 이하 네 명이 경래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하고, 도리어 모조리 그들의 칼에 죽어버렸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다음 이십이 일에는 곽산군수 이영식이가 변복을 하고 소를 타고 와서, 김사용 등의 북군의 행동을 자세히 보고하며, 안주 병영에서 후원만 하여준다면 제 개인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도 죽자 하고 싸워서 반드시 경래의 무리를 쳐 무찌를 것을 맹세하였다. 그리고 뒤를 이어 정주군수 이근주가 말을 타고 달려와서 정주가 함락한 연유를 보고하였다.

해우는 이러한 보고를 듣고 경래와의 협력을 완전히 단념하고, 화가 저 자신에게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자기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생존자 김명의를 암살하여 버리고, 안주의 방비에 대하여서도 태도를 일변하여 종영과 힘을 합하여 군사를 모고, 병기를 정비케 하였다.

결코 박천서 군칙이 추측하듯이, 해우는 처음부터 경래를 배반하기 위하여, 대린 등의 무리를 이용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위인이 워낙이 침착하고 약어서, 어느 편으로 붓는 것이 유리할까를 저울에 달아,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편으로 붓는 - 철저한 기회주의자에 불과하였을 뿐이다.

한편 홍총각은 이십이 일 아침나절 정주에 입성하여 김사용과의 연락을 지은 후에, 바로 말을 달리어 송림(松林)으로 향하였다. 송림은 안주에서 청천강을 끼고 서로 맞 건너다 보는 곳으로, 가산서 비밀리에 행동한 홍총각의 백여 명의 정예부대가, 먼저 여기에 도착하여 한편으로 안주의 동정을 살피며, 한편으로 홍총각 오기를 고대고대 하고 있었다. 이십이 일 저녁나절 홍총각이 여기 도착하였을 때에는 명령일하(命令一下)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게, 이미 만단의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안주의 동정도 그날부터 다소 경비가 심해지고, 병정들도 꽤 많이 모이고 하였으나, 대부분은 어린아이 와 늙은이로 이쪽에서 기습만 하면 단숨에 함락시킬 수 있다는 것이 완연하였다.

홍총각은 더 지체할 것이 없이 그날 밤에 야습을 하기로 결정하고, 군량을 있는 대로 내다가 모두 저녁을 배부르도록 먹이었다. 그리고 빙판이 진 청천강 얼음의 조사라던가, 안주의 성을 넘는 데 쓸 사닥다리라든가, 어둠 속에서 제 편을 구별하기 위하여 쓸 암호라든가 - 물 샐 틈 하나 없이 준비는 다 되었다.

초저녁이 지나 이윽고 밤이 깊어졌다. 홍총각은 전 부대를 한데 모아 최후의 훈시를 한 다음에, 막 출발의 명령을 내리려 할 때다. 그때 경래로부터 밀사가 달려와서 급하게 경래의 친필의 밀서를 바치었다. 대린의 무리가 반역하여 자기가 중상을 입은 사실과, 안주병사 이해우가 대단히 수상하고 엉큼한 자라, 어떠한 음모를 하고 있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과, 그러므로 안주 공격을 중지하고 곧 박천으로 오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명령은 절대적이니 어기지 말라고, 끝에 써 있어, 그의 엄격한 태도가 표명되어 있다.

만사는 다 글렀다. 홍총각의 이때까지의 가진 고심도 이제는 완전히 허사가 되고 만 것이다. 이 명령이 작전상 부당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이번 이 계획 자체가 거의 수뇌부 전부의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래의 특별한 묵허(黙許) 밑에서 진행되었더니 만큼, 이제 경래마저 이것을 반대하게 되었으니, 안주 공격을 중지하는 이외에 아무 도리도 없는 것이다.

홍총각은 비통한 어조로 부하들에게 밀서의 내용을 말하고, 다시 또 말을 달리어 박천 대본영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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