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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서의 번역 - 무라카미 하루키
내가 처음 번역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소설가가 번역하는 거니까 보통 번역자와는 뭔가 달라야 한다'는 의식 내지 자부심 같은 것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지만, 한동안 경험을 쌓고 여기저기머리를 쿵쿵 부딪히고 나니 그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되도록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지극히 수수하고 중립적으로 텍스트에 몸을 맡기고, 그 결과 종착점에서 절로 '뭔가 다른' 부분이 나온다면 그건 그것대로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독특한 맛을 내려고 노린다면 번역자로서는 아무래도 이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훌륭한 오디오 장치가 최대한 자연음에 가까워지기를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번역의 진짜 묘미는 세세한 단어 하나하나까지 얼마나 원문에 충실하게 옮기는가. 그것 하나다. 스피커를 예로 들면 소리를 들었을 때 '오, 훌륭한 소리군' 생각하면 이급이고, '오, 훌륭한 음악이네'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이 진짜 일급이다. 번역을 하면 할수록 더더욱 뼈저리게 절감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말할 필요도 없이, 나는 아직 그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다. '알고는 있는 정도다. 취미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파고들면 상당히 심오한 것이 번역의 세계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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