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이야기
백기완
옛날에 황해도 구월산 줄기가 황해바다를 만나 문뜩 멈춘 장산곶 마을의 솔숲에는 낙락장송을 둥지로 삼아 살고 있는 매가 있었다. 그중 장수매를 동네 사람들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생각해왔다.
장산곶매는 1년에 딱 두 번 대륙으로 사냥을 나가는데 사냥 떠나기 전날 밤에는 자기 집에 대한 집착을 버리려고 ’딱 딱 딱‘ 부리질로 자기 둥지를 부수고 날아갔다. 그래서 이 고장 사람들은 장산곶매가 부리질을 시작하면 같이 마음을 졸이다가 드디어 사냥에서 돌아오면 춤을 추며 기뻐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대륙에서 집채보다 더 큰 독수리가 쳐들어와서 온 동네를 쑥밭으로 만들었다. 그놈은 송아지도 잡아가고, 아기도 채어 갔다. 사람들이 어쩌지 못하고 당하고만 있는데 이때 장산곶매가 날아올라 맞대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징을 치고 꽹과리를 울리면서 장산곶매를 응원했다. 그러나 독수리가 큰 날개를 한번 휘두르면 장산곶매는 그 날개바람에 나가 떨어져 피투성이가 되곤 했다. 그래도 장산곶매는 굴하지 않고 끝까지 대들며 싸우고 또 싸웠다. 장산곶매가 흩뿌린 피가 날리어 사람들의 흰옷을 붉게 물들였다. 그러다 장산곶매는 마침내 그놈의 약점을 알아챘다. 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다 펼치고 내리 치달리기 위해 잠시 허공에 멈추어 선 순간 가슴팍을 파고들어 있는 힘을 다해 날갯죽지를 찍어버렸다. 그러자 날개가 떨어져 나간 독수리는 땅으로 내리 곤두박혔다.
길고 긴 싸움이 끝나고 장산곶매는 피투성이가 된 지친 몸으로 낙락장송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 바로 그때 피 냄새를 맡은 큰 구렁이가 나타나 장산곶매가 앉아 있는 나무를 감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빨리 날아오르라고 소리를 지르며 꽹과리를 쳐댔다. 그러나 장산곶매는 퍼덕이기만 할 뿐 날아오르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았다. 장산곶매가 새끼였을 때 사람들이 마을을 지키는 장수매라고 발목에 표시를 해놓은 끈이 나뭇가지에 걸렸던 것이다.
마침내 구렁이가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달려들었을 때 장산곳매는 외다리로 이쪽으로 피하고 저쪽으로 피하면서 맞대하였다. 그러다 구렁이가 머리를 한껏 치켜올리고 내리 꽂으려는 순간 장산곶매는 온 힘을 다해 한쪽 발톱으로 구렁이 눈을 찍었다. 순간 그놈이 잠시 휘청거리자 부리로 머리통을 쪼아버렸다. 구렁이는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며 땅으로 떨어졌고 장산곶매는 나뭇가지에 걸렸던 끈을 매단 채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꽹과리를 치면서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러던 어느 날 장산곶매는 하늘로 훨훨 날아가 멀리 사라졌다. 동네 사람들은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데 다시는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로 장산곶매가 칠흑 같은 캄캄한 밤하늘에 대고 ’딱‘ 하고 쪼기만 하면 샛별이 하나 생기고, ’딱‘하고 쪼기만 하면 또 샛별이 하나 생겨 갈 길을 잃은 사람들의 길라잡이가 되었다. 지금도 장산곶매는 캄캄한 밤하늘을 가르며 ’딱딱‘ 하고 부리질을 하면서 영원히 날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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