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더 멀리 달아날 수 없었던 안타까움이 두 눈빛 가득 담겨져 있다. 험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 시커멓게 찌든 교복 블라우스 위로 어둠이 쌓이고,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 밤 집나간 학생으로 찾아나선 선생으로 우린 어느 공원에서 마주쳤다. 주위는 밤늦게 공사하느라 아직도 시끄러웠다..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6년~97년 2013.02.19
어떤 저녁 겨우 이태 경력이 전부인 신참 선생들이 하루를 끝내고, 어디 으슥한 골목을 찾아 술을 마신다. 묵은 분필 가루는 소주가 최고라고 소주를 마신다. 쌓인 건 그 날 풀어야 한다고 밤 늦도록 마신다. 늘 안줏거리는 넉넉한 법 누구네 교장은 몇백 잘라 먹고도 떳떳하더라고 누구네 교감은 天..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6년~97년 2013.02.19
공원에서 하루는 벌써 다 저물었다. 지금쯤 산책이라도 할량 으슥한 공원에 나서면 당신은 두 발의 힘을 잃어버린 듯하게 휘청거리는 사내를 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자취가 사라져버린 공원에서 사내는 몇 개 생각에 잠겨 있을지도 모른다. 어딘가 보고 있지마는 그렇다고 한 곳을 응시하는 것..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6년~97년 2013.02.19
뒷모습 열시도 훨씬 넘은 늦은 밤 급한 귀가길을 서두는 이들 틈에서 몇개씩 가방에 묻혀 전철역을 향하는 어떤 뒷모습 어 저건 낯 익은 교복인데 반가움도 아닌 궁금함도 아닌 그런 어정정함으로 따라가다. 어깨가 너무 기울어져 있다. 뭔가 말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 다가가 어깨라도 두드려 주..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6년~97년 2013.02.19
부끄러운 사람들의 달빛보기 교도소 전망탑 위에 멀리 깨어진 달이 핏빛이다. 깨어졌음으로 높이 분출할 줄 모르고 자주 검은 도포 속에서 주저 앉는다. 아까부터 이런 달빛을 쪼이고 있는 젊음 죄수의 왼쪽 가슴엔 수인번호 대신에 詩人이란 두자가 아프게 박혀 있다. 언젠가 詩人은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었다. 몇 ..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6년~97년 2013.02.19
교문지도 다시 쏟아져 들어오는 얼굴 얼굴에서 정말로 잡아내야 할 건 무어 노랗게 물들인 아이들, 아니 반지 낀 손가락 급히 감추는 아이들, 그것도 아니 무릎 위로 치마를 한참 걷어 올린 아이들, 그것도 아니다. 불러 세울 수 없다. 핏기 가신 얼굴로 또 시험에 지친 얼굴을 어깨를 푹 늘어뜨리게..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6년~97년 2013.02.19
교단에서 교사 정년이니 월급 삭감이니 옥식각신 하는 이들 옆에서 나는 태연하게도 너무나 태연하게도 철 지난 잡지를 뒤적인다. 새로움도 없고, 산뜻함도 없이 그저 묵은 냄새로 지난 세월을 따지는 그런 의미 없는 글자 속에서 그저 과거로 헤엄쳐 나가는 것이다. 쪼그리고 앉아 교과서를 펴거..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8년 즈음 2013.02.19
환절기 바람 없는 하늘가 찍혀지는 것은 구름처럼 팔 위 다리 위 번져오는 마른 버짐. 이것이 전부라면 차라리 다행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이 계절이 끝나기 전에 남은 게 많다. 콜록콜록 야윈 기침, 허옇게 스멀거리는 가려움 작은 몸뚱아리는 계절의 변화에 이렇듯 치열하게 사랑하며 싸우며 견..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8년 즈음 2013.02.19
상가집에서 꾸벅꾸벅 절하고 고인과 나와의 관계를 짐작해도 여전히 처음 보는 사람이다. 그래도 두 손 모으고 삼가 명복을 빕니다. 삼가 해는 아직도 중천인데 오락가락, 술 한 잔 먹지 않고 돌아오는 길 괜한 눈물만 난다. 저이가 내게 무슨 은혜를 베풀었기에 그러나 누군 죽고 누군 남아 어두워지..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8년 즈음 2013.02.19
늦은 전철 안 빚 보증으로 고생한다며 나보다 더 아니든 동료의 훌쩍거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태평성대 태평 태 …… 구두위 찍혀 있는 선명한 누구의 발자국 내려다보며 지금은 태평성대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8년 즈음 2013.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