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6년~97년

공원에서

New-Mountain(새뫼) 2013. 2. 19.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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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벌써 다 저물었다.

지금쯤 산책이라도 할량 으슥한 공원에 나서면

당신은 두 발의 힘을 잃어버린 듯하게

휘청거리는 사내를 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자취가 사라져버린 공원에서

사내는 몇 개 생각에 잠겨 있을지도 모른다.

어딘가 보고 있지마는

그렇다고 한 곳을 응시하는 것 같지는 않다.

 

혹 당신이 사내의 주머니를 뒤져본다면

교사라는 노란 공무원증이 나올 것이며

여기 오기 전에 무얼 헀느냐고 묻는다면

가출학생탐방이라는 사유의

출장명령부에 도장을 찍었다고 답할 것이며

왜 하필 사람 없는 여기냐고 묻는다면

어제쯤 누가 여기서 집 나간 아이를 보았다고

답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 아이를 찾고 있느냐고

또 물으면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없이 고갤 저을 것이다.

그럼 뭐하느냐고 다시금 재촉이라도 하면

얼굴이 붉어지면서

아마 그는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는 딴 데 시집가고

늙은 할머니가 장사해 학비를 대 준다면

당신은 어떡할거요?

 

애를 찾지 않으면 여기서 뭐하느냐고

궁금한대로 이렇게 또 묻고 싶지만

굳이 듣지 않아도 그 대답은

사내의 차림과 표정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면도 못한 얼굴과

아무렇게나 잠바 위로 떨어지는 담뱃재와

더 이상 말하는 것이 귀찮아지는

아주 작은 모습에서

 

공원은 벌써 어둠으로 잠기었다.

서로가 보이지 않음이 좋은 핑계로

사내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다.

아니 그 전에 사내가 먼저

당신을 피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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