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섬 뽀얀 안개, 어설픈 파도 다리를 굳게 내릴 곳은 처음부터 없었기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 수 없다. 어디 좋은 곳 찾아 떠나볼 욕심도 없이 물길 흐르는 곳에, 시간 흐른 곳에 묵묵히 자리 지켜내고 꾸밈도 없이 과장도 없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땅, 그 위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8년 즈음 2013.02.19
서른 두 해 아침에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다 멈춰본 적 없습니다. 바쁘게 바쁘게 걸어보지도 않았습니다. 한 번, 단 한 번 뒤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저 멀리 저 먼 곳을 응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생일이랍니다. 오늘이 서른 두 번째 생일랍니다. 살아가는 것처럼 힘든 게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어..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8년 즈음 2013.02.19
친구 친구 비슷비슷하게들 나이 먹어가다가 문득 멈춰서서 마주 바라본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아랫배에 드러나는 앞 이마 셀 수 없을 만큼의 흰 머리칼들 서로 킥킥거리다가 세상 이야기를 한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한평한평 늘리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에 점점 줄어가는 통장 잔고에 ..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8년 즈음 2013.02.19
일상 일상 자고 일어난 곳은 내 방이 아니라 다녀오마 문닫고 나온 곳은 내 집이 아니라 잘 다녀오오 배웅하는 이는 늘 보아오던 그 사람이 아니라 문득 올려다본 하늘빛은 늘 보던 그 푸른 빛이 전혀 아니다. 낯섬으로 시작하는 일상 달려가다 그 속에서 곤하게 졸다. 갑자기 다가오는 버스차..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8년 즈음 2013.02.19
사람의 나라 - 5.1 노동절 시위 사람의 나라 - 5·1 노동절 시위 음음음음 우우우우 어서어서 가자 퍼벅퍼벅퍼벅 쿵쿵쿵쿵 어서어서 달려가자 죽지 말고 살아보자. 와와와와.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8년 즈음 2013.02.19
석양 어쩌리, 저렇게 새빨갛게 노을지는데 끝끝내 내어 뱉은 한 마디는 살아남은 몸을 태우고 아득히 우리 추억까지 날려버렸구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한 그 사람이 다시 사랑을 해 주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무엇을 남겨두고 무엇을 일깨우며 제 몸 한 줌 먼지되도..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8년 즈음 2013.02.19
산다는 것은 비 개인 날 바람이 몹시도 불었습니다. 한 자락 두 자락 나는 바람 속에 흩어지는 아카시아 꽃잎을 봅니다. 흩어지는 세월의 잎을 헤아립니다. 꼭 서른 두 햅니다. 비가 오기 시작한지 또 날이 개기 시작한지 그 속에서 바람맞으며 살아온지 꼭 서른 해 또 두 햅니다. 턱 아래 알맞게 달린 ..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8년 즈음 2013.02.19
아내의 머리 설거지통 위에서 문득 보았습니다. 잔설처럼 아니 첫눈처럼 얹혀 있는 그네의 흰 머리칼 드문드문. 그 흰색이 뭘 뜻하는지 잘 압니다. 세월의 아픔 속에서 속으며 살아온 잃어버린 시간, 찾을 수 없는 것. 어디론가 문득 사라져 버리는 순박하게 겁없던 고운 꿈들, 이젠 찾을 수 없는 것. ..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8년 즈음 2013.02.19
그럭저럭 흘러간다면 그럭저럭 흘러갈 세월이라면 아무런 분노도 갖지 말자. 아쉬움도 안타까움도 사랑도 처절함도 모두 다 갖지 말자. 그렇게 그럭저럭 지나쳐버릴 삶이라면 더 이상 돌아버리지 말자. 어느 날 내게 큰 의미가 되었던 이들도 언젠가 내게 큰 아픔이 되었던 이들도 또 그렇게 될 이들도 모두다..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8년 즈음 2013.02.19
가을 서정 가을 서정 아무도 날 알아볼 이 없는 낯선 교정에서 으슥하게 구석진 낡은 벤치 하나 차지하고 오랜만에 함부로 젊어진다. 쓴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그윽하게 앉아보려 한다. 근처로 누구도 없고 그래서 말이 싫다. 그렇게 나를 가장 작게 하고 스멀스멀 떨어지는 낙엽이나 그걸 밟으며 ..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8년 즈음 2013.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