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개인 날 바람이 몹시도 불었습니다.
한 자락 두 자락 나는 바람 속에
흩어지는 아카시아 꽃잎을 봅니다.
흩어지는 세월의 잎을 헤아립니다.
꼭 서른 두 햅니다.
비가 오기 시작한지 또 날이 개기 시작한지
그 속에서 바람맞으며 살아온지
꼭 서른 해 또 두 햅니다.
턱 아래 알맞게 달린 까끌한 수염과
담뱃진으로 누렇게 변색된 거울 속의 모습과
한 칸 한 칸 늘어가는 허리띠와
또 월급날 볼품없는 숫자를 바라보는
궁실거림과 높아지는 아내의 언성에 한없이
한 없이 움추려듬과 더 이상 안을 수 없이 커 버린
딸애의 모습과
꼭 서른 두 해를 지나쳤습니다.
돌이켜보면 바로 어제 일도 기억할 수 없는데
지나온 서른 두해 무얼 했는가도
알지 못하고 세월을 지나쳤습니다.
다만 새벽 남 모르게 흩어뿌린 빗줄기가
슬프고, 개어가는 하늘 한쪽 어두움이
더 슬프고, 이어 몹시도 부는 험한 바람이
더욱 슬플 뿐이고
그리고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정말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 터이지만
나는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서른 두 해, 앞으로 또
몇 해 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무엇으로 또 한 해를 지나쳐야 합니까.
떨어져 고인 빗물이 흘러 없어지듯이
오늘 하루를 올 한 해를 살아가야
합니까.
시를 찢어 버립니다.
찢어 발 밑어 흩어 뿌려둡니다.
그리고는 말해 버립니다.
꽃잎을 뿌려 두었다고
밟히는 꽃잎을 또 밟으며
세월의 파편을 헤아립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우산을 접고
이직도 흩뿌리는 비도 아닌 비를 맞습니다.
세월도 아닌 세월을 살아봅니다.
인생도 아닌 인생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중얼거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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