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8년 즈음

산다는 것은

New-Mountain(새뫼) 2013. 2. 19.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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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개인 날 바람이 몹시도 불었습니다.

한 자락 두 자락 나는 바람 속에

흩어지는 아카시아 꽃잎을 봅니다.

흩어지는 세월의 잎을 헤아립니다.

 

꼭 서른 두 햅니다.

비가 오기 시작한지 또 날이 개기 시작한지

그 속에서 바람맞으며 살아온지

꼭 서른 해 또 두 햅니다.

 

턱 아래 알맞게 달린 까끌한 수염과

담뱃진으로 누렇게 변색된 거울 속의 모습과

한 칸 한 칸 늘어가는 허리띠와

또 월급날 볼품없는 숫자를 바라보는

궁실거림과 높아지는 아내의 언성에 한없이

한 없이 움추려듬과 더 이상 안을 수 없이 커 버린

딸애의 모습과

 

꼭 서른 두 해를 지나쳤습니다.

돌이켜보면 바로 어제 일도 기억할 수 없는데

지나온 서른 두해 무얼 했는가도

알지 못하고 세월을 지나쳤습니다.

 

다만 새벽 남 모르게 흩어뿌린 빗줄기가

슬프고, 개어가는 하늘 한쪽 어두움이

더 슬프고, 이어 몹시도 부는 험한 바람이

더욱 슬플 뿐이고

그리고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정말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 터이지만

나는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서른 두 해, 앞으로 또

몇 해 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무엇으로 또 한 해를 지나쳐야 합니까.

떨어져 고인 빗물이 흘러 없어지듯이

오늘 하루를 올 한 해를 살아가야

합니까.

 

시를 찢어 버립니다.

찢어 발 밑어 흩어 뿌려둡니다.

그리고는 말해 버립니다.

꽃잎을 뿌려 두었다고

 

밟히는 꽃잎을 또 밟으며

세월의 파편을 헤아립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우산을 접고

이직도 흩뿌리는 비도 아닌 비를 맞습니다.

 

세월도 아닌 세월을 살아봅니다.

인생도 아닌 인생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중얼거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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