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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서정
아무도 날 알아볼 이 없는 낯선 교정에서
으슥하게 구석진 낡은 벤치 하나 차지하고
오랜만에 함부로 젊어진다.
쓴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그윽하게 앉아보려 한다.
근처로 누구도 없고 그래서 말이 싫다.
그렇게 나를 가장 작게 하고
스멀스멀 떨어지는 낙엽이나
그걸 밟으며 무심코 지나온 시간 같은 추억이나
또 문득 추하게 나이 들어감을
모두 다 삼켜버릴 셈인데
칼칼하게 입안 가득히 남아 있는
이미 식어버린 쓴 커피 몇 방울은
좀체 넘어가지 않는다.
쉽게 넘어서지 못할 것 같다.
모든 움직임이 멈추어 버린 시간 속에서
옆의 노란 나무 그 잎들이 모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짧디 짧은 초가을 한낮이 아직 저리 남아 있는데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는
세월의 흐름이여
내 세월이 흘러감이여
나 역시 벤치의 끝자락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설 수 없다.
그렇게 침묵하며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간혹 파랗게 내보이는 하늘빛이며,
옷틈새로 멋대로 헤집고 지나가는 바람이며,
가끔 곁으로 지나치는 낯모를 사람들
하지만 멀리 예전으로 거꾸로 흐르려는
성급하고 아직도 세상을 모르는 내 철모름을 생각하면서
가을은 이미 다 저물었는데도
그렇게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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