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또는 함께 200

남일대 해수욕장에서

남일대 해수욕장에서 작정하고 가려 했던 바다가 아니었다. 이런 곳에, 이런 바다가 있는 줄도 알지 못했고, 그저 가다보니, 그저 거기 있었던 바다일 뿐이었다. 땅 끄트러미 남해안의 남일대 해수욕장. 집안의 누구와도 인연이 없던 공군으로 아들 녀석이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게 작년 이맘 때였다. 전염병에 조마조마하며 한 해를 기다리다 오늘에야 온 가족이 여기까지 내려왔다. 장장 여섯 시간의 운전은 엄두가 나지 않아, 김포로 갔다가 거기에서 비행기를 타고 사천에 내린 다음, 낯선 풍경 속에 잠시 머물다가 낯선 이 도시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내비가 가리키는 대로 낯선 도로를 달려 네 가족을 가득 채운 빌려탄 차는 진주에 이르렀다, 공군훈련소. 짧게 머리를 깎은 청년들이 서 있는 틈에 아들 녀석을 밀어 넣고..

교원연구년으로 한 해를 잠시 쉬어가며

연구년을 신청하면서 교직에 들어온 시간과 지나온 학교 수를 다시 따져 보았다. 33년에 8학교. 함께했던 수많은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은 모두 기억하기에는 저 숫자의 무게가 너무 크다. 교육청에서 하는 교원연구년을 신청하였다. 다행히도 선발되었고, 덕분에 올 한 해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올 한 해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제자의 편지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교무실 앞에 한 청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재작년, 작년 이태 동안 가르쳤던 아이 마음이 아파서 다른 또래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하는 아이. 대학에도 그런 전형으로 입학하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이제서야 기숙사에 들어간단다. 이제 매일 돌보아주던 부모님도 곁에 없고 챙겨주던 선생님들도 없을 텐데 그럼에도 막막한 세상으로 날아가려는 모양이다. 잘 지내고, 잘 이겨내고, 잘 살아내기를 빌며....

어느 졸업식

오전 9시 출근. 오전 9시 30분 빈 교실 둘러 보다. 오전 10시 졸업식. 교실도 강당도 운동장도 아닌 유튜브에서. 13시부터 졸업장과 앨범 학급별로 배부. 맨 끝반이라 16시에 아이들이 모였다. 신체 접촉은 하지 말라는데 , 그래도 손 한번씩 잡아주고 보냈다. 학부모들도, 다른 선생님도 없는 졸업식. 올해가 아마도 마지막 3학년 담임이 될 터인데. 그 마지막 졸업식을 그렇에 마치다. 그리고 아이들은 떠나갔다. 반장 녀석의 편지 한장을 남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