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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대 해수욕장에서
작정하고 가려 했던 바다가 아니었다.
이런 곳에, 이런 바다가 있는 줄도 알지 못했고,
그저 가다보니, 그저 거기 있었던 바다일 뿐이었다.
땅 끄트러미 남해안의 남일대 해수욕장.
집안의 누구와도 인연이 없던 공군으로
아들 녀석이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게 작년 이맘 때였다.
전염병에 조마조마하며 한 해를 기다리다
오늘에야 온 가족이 여기까지 내려왔다.
장장 여섯 시간의 운전은 엄두가 나지 않아,
김포로 갔다가 거기에서 비행기를 타고
사천에 내린 다음, 낯선 풍경 속에 잠시 머물다가
낯선 이 도시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내비가 가리키는 대로 낯선 도로를 달려
네 가족을 가득 채운 빌려탄 차는
진주에 이르렀다, 공군훈련소.
짧게 머리를 깎은 청년들이 서 있는 틈에
아들 녀석을 밀어 넣고
돌아가며 한번씩 안아주고,
남아야 하는 사람과 떠나야만 하는 사람 모두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숨기면서
네 가족을 가득 채우고 달려갔던
빌려탄 차는 한 자리를 비운 채로
공군훈련소, 진주를 떠나왔다.
그래도 비행기가 뜰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기에
그래서 무작정 차를 몰았다.
이번에는 내비가 가리킨 곳도 아니었다.
땅 끄트머리 남해안의 남일대 해수욕장.
그저 살아가다 보니, 그저 여기에 서게 된 것 뿐이었다.
이런 바다에 , 이렇게 서게 될 줄도 알지 못했고,
작정하고 가려 했던 바다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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