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문산문

허균의 '병론(兵論)'

New-Mountain(새뫼) 2018. 3. 2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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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론(兵論)

허균(許筠)

 

 

천하에 군대 없는 나라가 있을까? 그런 나라는 없다. 나라에 군대가 없다면 무엇으로써 포악한 무리들을 막겠는가? 포악한 것들을 막을 장비가 없다면 나라가 어떻게 자립하며, 임금이 어떻게 자존(自尊)하며, 백성들은 어떻게 하루인들 그들의 잠자리를 펴랴.

 

天下有無兵之國乎無有也國無兵則何以禦暴客也無禦暴之具則國奚而自立君奚而自尊民安能一日奠其枕也

 

그런데, 천하에 군대 없는 나라가 있다. 군대가 없고도 오히려 수십 년이나 오래도록 보존함은 고금에 없는 바이나 우리나라가 바로 그런 나라다. 그렇다면 포악한 것들을 막을 장비도 없이 오히려 천승(千乘)-1의 왕위를 유지함에는 어떤 술법(術法)이 있다는 것인가? 그러한 술법은 없고 우연이었다. 왜 우연이라고 하는가? 왜적이 물러간 다음 우연히 다시 오지 않았고, 노추(奴酋)-2들이 우연히 우리를 침범하지 않았으며, 복려(卜慮)도 우연히 북쪽 변경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걱정거리가 없자 시일(時日)만 보내고 있는 것이다.

 

天下有無兵之國也無兵而猶保數十年之久古今所無而我國是也然則無禦暴之具而猶有千乘之位者抑有術耶其無術也偶然也何謂偶然倭退而偶然不再來奴酋偶然不我侵卜虜偶然不擾乎北鄙我得以無所憂玩時而愒日也

 

군대가 없다는 것도 군대가 완전히 없다는 것이 아니라, 군대가 적어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이며, 군대가 적다고 하는 것은 군정(軍政)이 제대로 닦아지지 않음이다. 싸울 수 없다는 것은 자격 있는 장수가 없다는 것이다. 진실로 군정을 엄하게 하고 장수를 제대로 골라 위에 있는 사람이 신임하여 전권을 행사하게 한다면, 10만의 훈련받은 군사들이 남북에서 도약할 수 있어 치고 공격하는 위엄을 자랑할 것이다. 이런 걸 놓아두고 계책은 쓰지 않고 난리만 나면 도망할 계획만 세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其無兵者非無兵也兵少而不能用也兵少者軍政之不修也不能用者將率之無其人也誠使嚴軍政而擇師臣上之人又能任信之專則十萬訓齊之師可以跳躍乎南北以張撻伐之威矣釋此不爲唯爲避退之計何也

 

앞서의 나라 왕씨(고려) 때는 군정(軍政)이 가장 엄하였다. 조관(朝官)으로 붉은 비단옷을 입지 못한 사람은 모두 친군(親軍)에 예속되었고, 재상(宰相)의 아들도 으레 병직(兵職)을 받았으며, 학관(學館)의 유사 (儒士)들도 역시 종군(從軍)토록 하였다. 내외의 정규 군대는 공사(公私) 천예(賤隷)-3를 묻지 않고 모두 척적(尺籍)-4에 매여 있었다.

 

前朝王氏之日軍政最嚴朝士之未衣緋者率隷親軍而宰相之子例受兵職館儒士亦許從軍內外正軍不問公私賤隷皆係尺籍

 

장령(將領)은 양부(兩府)-5의 대신(大臣) 이하로부터 통솔되는 바가 있었으며, 중외(中外)의 크고 작은 여러 장수에게는 모두 몸소 이끄는 병사들이 있었다. 평상시에는 그들의 의식을 후하게 해주면서 교련(敎鍊)하였고, 사변(事變)이 있으면 장수나 병졸이 서로 연습되어 있어 팔이 손가락을 부리는 것같이 하므로, 백만 명의 군사도 하루아침에 충당하였다.

 

將領則自兩府大臣以下各有所統中外大小諸將皆有親隨之兵平居厚其衣食而敎練之有事則將卒相習如臂之使指故百萬之師一朝而辨

 

비록 소손녕(蕭遜寧)처럼 순탄함, 금산(金山)금시(金始)같이 궁색스러움, 늑대 같던 실리타[撒禮塔]과의 싸움, 군사 많기로는 모거경(毛居敬)유사(劉沙)관선생(關先生)과의 싸움에서도 옛 고려에서는 모두 싸워서 격퇴시킬 수 있었다.

 

雖順如蕭遜寧窮如金山金始狼如撤禮塔衆如毛居敬沙劉關先生皆得而擊却之也

 

지금의 지역은 고려에 비교하여 더 축나지도 않았고 인민(人民)도 더 줄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겁을 먹고서 항상 군대 없다는 것으로 두려워하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군대는 비단 조관(朝官)재신(宰臣)의 아들과 학관의 선비들이 예속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복(典僕)-6및 하천(下賤)한 자들까지도 모두 군적(軍籍)에 누락되기를 꾀하며, 병관리(兵官吏)들이 군사에게서 재물을 빼앗아 써서 골수가 이미 다 빠졌다.

 

今之地比王氏非加縮也民衆非加尠也惴惴然每以無兵爲恐誠不可曉也今之兵非徒朝士宰臣之子館儒士之不隷也典僕及下賤者皆謀落籍而兵官吏之剝軍以用者髓已竭矣

 

평시에 충분히 먹도록 해주어도, 난리를 당하여 죽기를 작정하고 싸우도록 한다면 더러 물러나고 달아나며 살기를 구하는 사람이 있는 것인데, 하물며 모질게 부리다가 죽을 곳으로 몰아넣음에랴. 그들이 흩어져버림은 당연하다.

 

平居厚其養臨亂責其死或有退北求生者矧虐使而驅諸死地其解散也決矣

 

장수를 고르는 일에 있어서도 반드시 치민(治民)을 잘하는 사람 중에서 임용해야 한다. 치민과 치병(治兵)은 본래 방법상으로는 같지 않다. 더구나 치민도 능하지 못하면서 괜스레 임금의 좌우 사람만 잘 섬기는 자들이겠는가. 그런 까닭으로 어쩌다 장수가 되면 아무것도 모르고 수족을 놀릴 줄도 모르며, 적군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먼저 무너졌음은 왕왕이 모두 이래서였다.

 

至於擇將必用善治民者治民與治兵法固不同況不能治民而徒善事左右者乎故一爲將茫然無所措手足不望敵而先潰北北皆是

 

오호라, 이런 사람으로 장수를 삼아 이런 군대를 거느렸으니, 군대가 없다고 하더라도 옳다. 나라가 나라 노릇을 하고 있음은 역시 우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폐단을 고칠 수 있을까? 고려의 제도 같이만 하더라도 군대는 씩씩해지고 장수도 고를 수 있어 나라가 나라 노릇을 하리라. 비록 그렇게 하더라도, 장신(將臣)이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오래도록 외방에 있으면 남의 헐뜯음을 받아서 임금의 의심을 받게 되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嗚呼以此將而禦此軍謂之无兵可也國之爲國亦偶然也然則何以革此弊也如王氏制則兵可壯將可擇而國可爲國矣雖然將臣聯萬衆在外久者鮮不有招人之謗致上之疑者


군대를 강해지게 하고 병졸을 훈련시키며, 노복들을 단속하고 호령이 엄하며, 위 아랫사람이 서로 친숙하여 적국이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도, 한 번 임금의 의심받을 꼬투리를 일으키면, 발굽을 돌리기도 전에 자신이 패망하고 나라도 따라서 위태로워진다. 이런 것으로 본다면, 군대를 다스리고 장수를 통솔해서 나라를 자강(自强)케 할 사람이란 오직 임금뿐이리라.


兵強卒練飭儲胥嚴號令上與下相親而敵國畏之者一啓人主之疑端則不旋踵而身敗國隨以危亡矣以是觀之則治兵禦將以自強其國者亦唯人主而已哉



1) 제후의 나라, 여기서는 조선.

2) 압록강 건너의 여진족 추장

3) 천민과 노예

4) 군사의 명령이나 군사들의 공적을 기록하던 사방 한 자의 널빤지.

5) 의정부와 중추부

6) 각 관아에 소속된 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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