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민론(豪民論)
허균(許筠)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오직 백성일 뿐이다. 홍수나 화재, 호랑이, 표범보다도 훨씬 더 백성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항상 업신여기며 모질게 부려먹음은 도대체 어떤 이유인가?
天下之所可畏者。唯民而已。民之可畏。有甚於水火虎豹。在上者方且狎馴而虐使之。抑獨何哉。
대저 이루어진 것만을 함께 즐거워하느라, 항상 눈앞의 일들에 얽매이고, 그냥 따라서 법이나 지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이란 항민(恒民)이다. 항민이란 두렵지 않다. 모질게 빼앗겨서, 살이 벗겨지고 뼈골이 부서지며, 집안의 수입과 땅의 소출을 다 바쳐서, 한없는 요구에 제공하느라 시름하고 탄식하면서 그들의 윗사람을 탓하는 사람들이란 원민(怨民)이다. 원민도 결코 두렵지 않다.
夫可與樂成而拘於所常見者。循循然奉法役於上者。恒民也。恒民不足畏也。厲取之而剝膚椎髓。竭其廬入地出。以供无窮之求。愁嘆咄嗟。咎其上者。怨民也。怨民不必畏也。
자취를 푸줏간 속에 숨기고 몰래 딴 마음을 품고서, 천지간(天地間)을 흘겨보다가 혹시 시대적인 변고라도 있다면 자기의 소원을 실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란 호민(豪民)이다. 대저 호민이란 몹시 두려워해야 할 사람이다.
潛蹤屠販之中。陰蓄異心。僻倪天地間。幸時之有故。欲售其願者。豪民也。夫豪民者。大可畏也。
호민은 나라의 허술한 틈을 엿보고 일의 형세가 편승할 만한가를 노리다가, 팔을 휘두르며 밭두렁 위에서 한 차례 소리 지르면, 저들 원민이란 자들이 소리만 듣고도 모여들어 모의하지 않고도 함께 외쳐대기 마련이다. 저들 항민이란 자들도 역시 살아갈 길을 찾느라 호미ㆍ고무래ㆍ창자루를 들고 따라와서 무도(无道)한 놈들을 쳐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豪民。伺國之釁。覘事機之可乘。奮臂一呼於壟畝之上。則彼怨民者聞聲而集。不謀而同唱。彼恒民者。亦求其所以生。不得不鋤耰棘矜往從之。以誅无道也。
진(秦)나라의 멸망은 진승(陳勝)ㆍ오광(吳廣) 때문이었고, 한(漢)나라가 어지러워진 것도 역시 황건적(黃巾賊)이 원인이었다. 당(唐)나라가 쇠퇴하자 왕선지(王仙芝)와 황소(黃巢)가 틈을 타고 일어섰는데, 마침내 그것 때문에 인민과 나라가 멸망하고야 말았다. 이런 것은 모두 백성을 괴롭혀서 자기 배만 채우던 죄과이며, 호민들이 그러한 틈을 편승할 수 있어서였다.
秦之亡也。以勝,廣。而漢氏之亂。亦因黃巾。唐之衰而王仙芝,黃巢乘之。卒以此亡人國而後已。是皆厲民自養之咎。而豪民得以乘其隙也。
대저 하늘이 사목(司牧)-1을 세운 것은 양민(養民)하기 위함이고, 한 사람이 위에서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 메워도 차지 않는 구렁 같은 욕심을 채우게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저들 진(秦)ㆍ한(漢) 이래의 화란(禍亂)은 당연한 결과이지 불행한 일이 아니었다.
夫天之立司牧。爲養民也。非欲使一人恣睢於上。以逞溪壑之慾矣。彼秦漢以下之禍。宜矣。非不幸也。
지금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땅이 좁고 험준하여 인민도 적고, 백성은 또 나약하고 좀 착하여 기절(奇節)-2이나 협기(俠氣)-3가 없다. 그런 까닭에 평상시에도 큰 인물이나 뛰어나게 재능 있는 사람이 나와서 세상에 쓰이는 수도 없었지만, 난리를 당해도 호민ㆍ한졸(悍卒)-4들이 창란(倡亂)-5하여, 앞장서서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게 하던 자들도 역시 없었으니 그런 것은 다행이었다.
今我國不然。地陿阨而人少。民且呰寙齷齪。无奇節俠氣。故平居雖无鉅人雋才出爲世用。而臨亂亦无有豪民悍卒。倡亂首爲國患者。其亦幸也。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시대는 고려 때와는 같지 않다. 고려 시대는 백성에게 부세(賦稅)하는 것이 한정되어 있었고, 산림(山林)과 천택(川澤)에서 나오는 이익도 백성들과 함께 나누어 가졌다. 상업은 자유롭게 통행되었고, 공인(工人)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하였다. 또 수입을 헤아려 지출할 수 있도록 하였으니 나라에는 여분을 저축해 둔 것이 있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큰 병화(兵禍)와 상사(喪事)가 있더라도 그 부세(賦稅)를 증가하지 않았었다. 고려는 말기에 와서까지도 삼공(三空)-6을 오히려 걱정해 주었다.
雖然。今之時與王氏時不同也。前朝賦於民有限。而山澤之利。與民共之。通商而惠工。又能量入爲出。使國有餘儲。卒有大兵大表。不加其賦。及其季也。猶患其三空焉。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 변변치 못한 백성들에게서 거두어들이는 것으로써 귀신을 섬기고 윗사람을 받드는 범절만은 중국과 동등하게 하고 있다. 백성들이 내는 세금이 5푼(分)이라면 공가(公家)-7로 돌아오는 이익은 겨우 1푼(分)이고 그 나머지는 간사스러운 사인(私人)에게 어지럽게 흩어져버린다. 또 고을의 관청에는 남은 저축이 없어 일만 있으면 1년에 더러는 두 번 부과하고, 수령(守令)들은 그것을 빙자하여 마구 거두어들임은 또한 극도에 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我則不然。以區區之民。其事神奉上之節。與中國等。而民之出賦五分。則利歸公家者纔一分。其餘狼戾於姦私焉。且府無餘儲。有事則一年或再賦。而守宰之憑以箕斂。亦罔有紀極。
그런 까닭으로 백성들의 시름과 원망은 고려 말엽보다 훨씬 심하다. 그러나 위에 있는 사람은 태평스러운 듯 두려워할 줄을 모르니, 우리나라에는 호민(豪民)이 없기 때문이다. 불행스럽게 견훤(甄萱)ㆍ궁예(弓裔) 같은 사람이 나와서 몽둥이를 휘두른다면, 시름하고 원망하던 백성들이 가서 따르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보장하며, 기주(蘄州)ㆍ양주(梁州)ㆍ6합(合)의 변란은 발을 제겨 딛고서 기다릴 수 있으리라. 백성 다스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 두려워할 만한 형세를 명확히 알아서 전철(前轍)을 고친다면 그런 대로 유지할 수 있으리라.
故民之愁怨。有甚王氏之季。上之人恬不知畏。以我國無豪民也。不幸而如甄萱,弓裔者出。奮其白挺。則愁怨之民。安保其不往從而祈,梁,六合之變。可跼足須也。爲民牧者。灼知可畏之形。與更其弦轍。則猶可及已。
1) 임금
2) 뛰어난 절조
3) 호방하고 의협심이 강한 기상.
4) 사나운 군졸
5) 미친 듯이 날뜀.
6) 세 가지가 빔. 조정에 인재가 없는 것, 창고가 빈 것, 전야(田野)가 황폐한 것.
7) 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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