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또는 함께/학교에서 생각하는

담임의 졸업사(2024)

New-Mountain(새뫼) 2024. 2. 8.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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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의 졸업사

 

이제 한 장에 한 명씩 부르겠습니다.

이제 우리끼리 조촐하게 졸업식을 할 양입니다. 영광스러워야 할 졸업식을 조촐하다고 한 것은, 여기가 3학년 7반 우리들의 교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실 안에는 떠나보내는 담임과 떠나가는 졸업생만이 있을 뿐입니다. 국민의례로부터 시작하여 각종 상장 수여에 근엄한 교장선생님 축사까지 이루어진 그런 졸업식이 아니라, 우리끼리의 마지막 만남이 소중한 졸업식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남은 것이란 담임의 졸업장뿐입니다. 하기야 이것이 진정한 졸업식의 의미일 터입니다.

지지고 볶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3월의 어색한 대면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수험생이 된 그대들과 그대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담임의 악연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만남에서 우리는 아직도 겨울 방학의 게으름을 벗지 못한 봄날의 나른함을 겪었고, 글자가 아닌 잠과 함께 씨름하는 여름날의 기인 피곤함이 겪었으며, 숫자 몇 개로 대학을 결정하던 지루한 말다툼과 같은 상담이 있었고, 핸드폰에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애타게 기다리던 안타까운 가을을 겪었으며, 기어이 결국 결정된 앞날이 최선이었던가를 심란하게 갈등하던 겨울이 있었습니다.

그 길지만 길지 않았던 한 해를 뒤로 하고.

지금 그대들에게 일일이 졸업장을 나눠주려는 겁니다. 김 군부터 마지막 김 양까지, 한 명 또 한 명 손을 굳게 잡아 보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체온의 나눔에서 우리가 특별한 사이가 되었음을 느끼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도 우리는 사제지간이었지만, 그것은 공교육이 억지로 맺어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졸업장을 내 손에서 그대들의 손으로 건너보내며, 그대들은 비로소 내 영원한 제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곧 헤어져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몇 명은 옆에 와 내 팔짱을 낄 것입니다. 사진이라도 찍으려는 양. 누가 일러주지는 않았지만, 당연한 마지막 통과의례이겠지요. 또 내가 마지막으로 그대들을 살펴볼 기회겠습니다. 아직도 철없는 아이들로만 보이지만, 모두들 담임보다는 머리 하나 더 올라갔습니다. 일년 내내 입었네 안 입었네 씨름하던 교복인데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그렇게 카메라 후레쉬가 몇 번 터지고, 그대들이 또 몇 번 팔짱끼기를 교대하면, 결국 이 교실은 빈 교실이 되어 나만 남게 될 것임을 압니다. 그대들은 빛나는 졸업장을 한 장 쥐고는 떠나갈 것입니다. 복도 가득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부모와 형제 곁으로. 아니 12년간의 학교 교육을 추억으로 남기고 이제 살벌한 세상 속으로.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찍은 사진 속에 마지막 교실과 마지막 담임을 남겨둔 채.

행복한 기억만이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안녕히...

 

 

2024. 02. 08

학창 시절 그대들의 마지막 담임인

신 영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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