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7일 졸업식에
3학년 4반에서
이 자리가 마지막 종례이겠구나.
그동안 우리들이 함께했던 시간을 고마워하면서, 지금부터 한 사람 한 사람과 눈빛을 마주하면서 마지막 종례를 하려고, 너희의 마지막 담임으로서 너희 앞에 서 있구나.
오늘이 졸업식이기는 하지만 졸업이 학창 시절의 마지막이라는 둥, 또는 새로운 시간의 시작이라는 둥, 이런 묵은 말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앞으로 더 행복하렴.’ ‘앞으로 더 잘 살렴.’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하지만 오늘이 너희에게 분명 의미 있는 날이고, 축하받을 만한 날임이 틀림없기에, 이제 교사로서, 담임으로서 어른으로서, 몇 마디 말을 종례 삼아 남기려 한다.
오늘 너희는 드디어 학교를 떠나면서, 마침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면서, 아마 지난 세 해 동안의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아니 열두 해 동안의 학창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느낌이 있을지 모르겠다. 행복했던 추억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기억도 더 많을지 모르겠다. 아니 보람보다는 아쉬움이 더 클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룬 바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너무 아쉬워하거나 안타까워하지 말라는 말을 꼭 해 주고 싶었다.
너희가 지나온 길은 짧았지만, 너희가 앞으로 갈 길은 무척이나 길 게다. 학교라는 좁은 울타리를 전부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학교라는 알을 깨고 나아가 넓은 세상을 좁게 느끼면서 살아가게 될 게다.
학교라는 제도나, 기성세대들이 정해 준 틀에 맞추면서, 평가받으며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너희가 세상의 기준을 세우며 살아가게 될 게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던 이상으로, 앞으로도 더 열심히 살아가려 할 게다.
그렇기에 불편했고 아쉬웠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면, 모두 학교에 남겨 두고 가거라. 만일 행복하고 흐뭇했던 추억이 있었다면, 가슴에 품은 채로 나아가거라.
담임이 마지막 종례에서 너희에게 하는 당부이다.
다만 너희를 오늘 떠나보내며, 담임인 내가 느끼는 특별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털어놓고 싶구나. 이제는 서로 같은 어른으로서,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기에, 나를 너희에게 보여주어도 될 듯하다.
그동안 나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학생들을 제자로 삼아 가르쳤고 담임을 맡았었다. 돌보았고 보듬었으며, 꾸짖었고 어깨를 감쌌었다. 사랑했지만, 때로는 미움이 앞서기도 하였다.
또 지나고 보니 아쉬웠던 것은, ‘이 아이의 적성이 이게 맞는 것인가?’, 보다는 ‘이 성적으로 이 대학에 가는 것이 가능한가?’를 더 고민했던 적이 많았다는 것이다. 또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지내기보다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로 생활하였던 미안함도 남아 있다.
그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제자들이 아우 같았는데, 어느덧 자식 또래가 되어 있었고, 이제는 나이 차이를 헤아리기도 어렵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아이들을 맞았다가 제자로 내보냈고, 다시 맞으며 보내다가, 지금 너희를 맞아 제자로 보내게 되었구나.
그리고 지난 한 해 너희와 함께 생활하며 자라나는 너희의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했었다. 미성년에서 성년을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희가 진정한 어른으로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곁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 고마웠다. 너희 덕분에, 나도 조금더 자라날 수 있었다. 그게 더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도 너희는 내 인상 속에서 정말 특별하게 남을 것 같구나. 어쩌면 내가 담임으로 인연을 맺었던 마지막 제자들이 너희가 될 것 같은 생각을 한다. 우리가 함께 생활한 시간은 불과 한 해였지만, 앞으로의 내 기억에는, 오롯이 여기 앉아 있는 너희 열일곱 명의 얼굴이 남아 있을 게다.
앞으로 더 행복해라. 앞으로 더 잘 살아라.
이제 너희의 이름을 불러보며, 이 종례를 마치련다.
정연아, 효선아, 수민아, 윤지야, 주호야, 정은아, 준희야, 민경아, 준영아,
다경아, 동우야, 수성아, 진슬아, 진헌아, 세인아, 서한아, 성주야.
모두 사랑한다.
신영산, 너희의 마지막 담임이
'홀로 또는 함께 > 학교에서 생각하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래도 선생할만하다 (0) | 2024.06.20 |
---|---|
초딩 3학년 같은 고딩 3학년들 (0) | 2024.05.28 |
담임의 졸업사(2024) (1) | 2024.02.08 |
식사후 산책길에서 따온 황매화 한송이 (0) | 2023.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