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밖에 가만히 서 있어도 몸이 뜨거움을 견뎌내지 못할 더위였습니다. 10년만의 더위일 것이라던 언론 보도에 힘이라도 실어줄 량, 하늘은 정말 더운 호흡을 강요했습니다. 그런 온도 아래서 전쟁처럼 치룬 보충수업도 이제 반이 끝났습니다. 냉방시설을 갖추었다 해도 집만큼 편안한 시설이 아니었을 텐데, 그 더위 속에서 수험생이라는 죄목으로 어쩔 수 없이 앉아 수업을 듣고 우리 학생들이 한편으로는 가여웠고, 다른 한 편으로는 기특했습니다. 다행히도 어제 그제 큰 비로 뜨거운 열기는 가라앉았지만, 그 시원함이 다만 며칠 앞서서 다가왔더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그렇게 방학이어도 방학을 즐기지 못하는 여름입니다. 벌써 한 해의 6할이 지난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이란 몇 번의 시험뿐일 텐데, 수능이란 불과 넉 달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잠시 방학을 핑계 삼아 시험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겠으나, 눈치 없는 담임은 지금까지의 성적을 모아 집으로 보낼 궁리만 하고 있으니 학생들의 답답함이야 말로 표현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니 방학이어도 방학답지 못한 방학을 더위와 싸우며 책과 씨름하고 있는 것이겠고요.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고생했고, 지금도 고생하고는 있지만, 모든 학생들이 애초 원하던 만큼의 결과는 얻어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매번 새로운 성적이 나올 때마다 나타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아픔을 저들의 얼굴에서 읽어내곤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더라는 인생의 당연한 이치를, 학생들은 비로소 체험하고 있는 셈입니다. 분명한 것은 노력에 따르지 않는 결과는 없다는 것이고, 그것이 수치로 나타나다는 것입니다.
또한 정해진 입시의 시계대로 아쉬운 대로 지금까지의 성적만으로도 입시는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수시라 하여 입시전선에 뛰어든 학생들도 적지 않습니다. 설사 수시에 지원하지 않았더라도 친구들과 학교와 언론의 분위기를 지켜보며 비로소 입시라는 중압감을 새롭게 느끼는 학생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수험생이었고 입시생이었지만, 정말 수험생이 되고 입시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머지않은 그 날을 위해, 늘 그랬지만 이제는 좀 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지금까지의 결과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판단해야 하겠습니다. 학생은 학생대로 분명하게 현실과 이상을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또 부모님과의 깊은 대화를 통해 학생의 앞날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필요하겠습니다. 물론 이 고민은 지극히도 현실적인 고민이어야 합니다. ‘어떤 과목을 선택할 것이냐’에서부터, ‘어디에 있는 어떤 대학, 어떤 학과에 진학할 것인가’까지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너무도 많습니다. 물론 담임도 학생과 충분한 상담을 통해 시험과 입시에 대해 최선의 목표와 방향을 찾아내야 합니다.
혹여 이 더운 날씨에 답답한 숫자 몇 개가 부모들을 더 덥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숫자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모든 학생들은 부모님들의 사랑스러운 따님이고, 제가 아끼는 제자들입니다. 다소 부담스러운 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금 학생들에게 진정 더 필요한 것은 따뜻한 격려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이 폭염에 더욱 건강에 유념하시고, 댁내 평안을 기원합니다.
2005년 7월 말에
담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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