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들께
늦은 밤 학교를 나서다보면, 교문 앞 가득 자제들을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들의 차량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개 그런 늦은 시간이란 하루를 마치고 곤한 몸을 뉘어야 할 늦은 때이지만, 수험생을 자식으로 둔 죄로 휴식이 아닌 조마조마하는 긴장을 안고 살게 하고 있었습니다. 저번에 글월을 올리고 거의 두 달여가 흘렀습니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늘 글월로 안부를 여쭙는 무례입니다.
참 힘든 때입니다. 지금 오월에서 유월로 넘어가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때,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이나, 아이들의 담임인 제게 모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시험을 요구합니다. 아침 저녁의 눅눅하고 서늘한 온도와 한낮의 뜨거움. 쉽게 몇 십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쉽게 지쳐갑니다. 수업 중 문득 널브러져 잠이 든 아이들을 발견할 때, 쥐어박아 깨우려 하다가고 머뭇거리게 되는 것은, 저 역시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책상 위해 눕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지금까지 육체적인 피곤함과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맞서 잘들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들이 그렇게 저들이 측은하면서도 자랑스럽니다.
고작 두 달일 뿐이지만, 그간 학교와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옷차림처럼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벌써 모의시험을 두 번이나 치렀고, 중간고사(1회고사)도 보았습니다. 만족한 결과를 얻어낸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자신의 노력보다 너무 저조하여 실망하는 아이들도 있겠습니다. 만족하면 그 만족을 이어가기 위해, 부족하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지금도 우리 아이들은 지루한 책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다만, 부끄러움과 무관심으로 자신들의 성적을 부모님께 알리지 않은 아이들이 있지는 않았는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에 아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금까지의 성적을 보내드립니다. 모두 세 종류입니다.
먼저 그간 학교에서 치렀던 모의고사 성적입니다. 모두 두 차례 시험을 보았습니다. 성적표가 조금 보기 복잡하실 텐데……. 표준점수와 백분위점수 등급이 있습니다. 여기서 표준 점수란 응시한 학생들의 평균 점수를 바탕으로 한 상대적인 점수입니다. 각 대학의 입시 사정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점수입니다. 백분위 점수는 상대적인 위치를 보여주는 점수입니다. 이를테면 학생의 언어 영역 백분위 점수가 70점이고, 응시학생이 모두 100명이라면, 이 학생은 30등을 한 것입니다. 등급은 모두 9등급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최고 등급은 당연히 1등급이고, 최저 등급은 9급입니다. 다만 평균 등급이라 한 것은 편의상 계산한 것이지,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학교의 정기고사 성적입니다. 3학년 1학기 1회고사 중간고사입니다. 2회고사가 합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료의 가치는 조금은 덜 합니다. 다만 이번 시험에서 어느 과목을 잘 보았고, 어느 과목이 부족한지를 살펴보시면 되겠습니다. “개인별 내신자료 일람표”는 2학년 때까지의 내신 성적입니다. 숫자가 많은데 부모님들이 유의깊게 보실 항목은 석차등급입니다. 이 등급을 통해 아이들의 상대적인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겠습니다.
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의 유월이란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슬슬 수시 모집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때입니다. 수시의 일정이라든지, 모집대학, 모집인원 등을 자세히 알려드리기에는 지면이 너무 적습니다. 다만 부모님들께서도 여러 매체를 통해 관심 깊게 보셨을 것이고, 또 따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터이니 여기서는 줄이겠습니다. 다만 수시 모집의 성격에 대해서만 몇 년간의 입지 지도 경험으로 간단하게 말씀드리려 합니다.
우리 인천지역 학생들은 분명히 수시모집이 정시모집보다 더 유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수시는 내신 성적 위주이고, 정시에서 수능 위주인 바, 많은 학생들의 수능 점수가 다른 지역 학생들보다 상대적으로 조금은 뒤처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학교나 학과 전형 방법 등을 잘 선택하고, 그에 따른 준비(구술, 면접, 적성, 논술 등)를 충실하게 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이런 준비와 약간의 운이 겹쳐 자신의 실력보다도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또 학교 성적은 조금 부족했어도 남들보다 뛰어난 다른 재주가 있어, 그것으로 수시 지원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낸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시에서도 어려움은 있습니다. 우선 모집 정원이 적고 이에 따라 경쟁률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정시와는 달리 조건만 되면 누구나가 수시 전형 원서를 쓸 수 있는 것이기에, 보통 경쟁률은 10대 1을 훌쩍 넘어섭니다. 그런 경쟁률을 뚫기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또 수시는 합격을 하게 되면, 무조건 그 학교에 진학을 해야 합니다. 조금 더 공부한다면 더 낳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는데 너무 수시 지원에 집착한 나머지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이런 것 외에 수시의 가장 큰 어려움은 시간과 정성의 소진입니다. 어느 때 하나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없겠지만, 특히 지금 우리 아이들은 가장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하는 때입니다. 하지만 특정 대학의 수시지원을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 전형을 준비한다면 정작 중요한 학교 내신이나 수능 준비에 소홀해질 수 있습니다. 이 보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수시 지원에 따른 기대와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의 초조함, 만일 실패했다면 그 때의 실망감과 같은 심리적인 결과입니다. 특히 우리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감성이 예민한 여학생들이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에 더욱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냥 한 번 써보지”라는 생각은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또 “나는 그 대학을 무조건 갈 것이니 그 대학 전형 준비만 하지.”하는 생각도 위험합니다. 최선도 중요하지만, 늘 차선도 준비해야 합니다. 따라서 수시에 대해 깊은 생각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겠습니다. 수시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면만을 말씀드리는 듯하여 송구합니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수시도 크게 다르지 않고요. 그걸 말씀드리려 하였습니다.
이러한 점을 늘 학생들에게 전체적으로 전달하고 앞으로의 상담을 통해서도 개별적으로는 알리려 합니다. 그러나 이런 학교에서의 일뿐 아니라 여기에 부모님들과의 대화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딸들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시고 수시에 대한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인간의 평생을 좌우하는 입시입니다. 쉽게 결정할 수도 없고, 누구에게도 맡겨버릴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저도 최대한 댁의 따님들이 가장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혹 제가 말씀드린 일 이외에 더 궁금하신 일이 있으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성심껏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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