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또는 함께/학교에서 생각하는

대학, 그 답답함에 대하여

New-Mountain(새뫼) 2013. 3. 2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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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입시 설명회이다. 이번에는 우리 사무실 교사 13명 모두가 참여하였다. 강사는 '수박 어쩌구'를 쓴 유명한 현직교사 박아무개. 이 세계에서는 정말 많이 유명한 인물이란다. 3학년 입시에서 2년간 떠나 있었던 나야 잘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유명한 것을 확인하는 것을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그것은 이미, 이 설명회에 참여하기 위해 등록할 때부터 알아보았다. 몇 월 몇 일 몇 시 등록할 것. 그 시간을 5분이라도 놓치면 참여 할 기회를 박탈당함. 실제로  그 시간에 맞추기 위해 사무실 모든 교사가 수업을 중단하고 모여들었으며, 카운트다운을 하며 정확한 마우스 클릭질로 시간에 등록을 했다. 그리고 그 5분이라는 시간 언저리에 전국적으로 2천명이 넘는 교사들이 우리와 같은 짓을 하였단다. 그게 보름 전이다. 그리고 몇 일전에 등록 교사들이 많아 장소를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옮겼다는 말을 들었고, 어제 우리 학교 3학년 교사들이 모두 얌전히 그 대학을 찾아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 유명함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것이다. 몇 천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대학 강당에 전국의 고등학교 3학년 담임들이 모였다. 그 정도의 인지도나 동원력이라면 확실히 대단하기는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강의에 목을 매는 교사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그의 강의가 대단히 필요하기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장은 확인하기 힘들겠지만,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그런 것을 새삼 깨달으며 한 자라도 더 듣고, 한 마디라도 더 들으려 마음을 먹으며 가까운 자리를 찾아, 저 강사가 쓴 책을 들고 그 큰 건물 안을 헤매였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되는 강의. 하지만 강의가 시작되자 마자 이 강의가 간단하지 않을 것임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원래 강의실 목적이 아니었을, 극장이나 공연장이었을, 그래서 아주 어두침침한 조명의 건물안, 그래서 두툼한 책에 쓰인 작은 글씨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망할 노안의 답답함이 거기에서도 여실히 확인되는 것이다. 책 보기는 아예 포기, 그냥 화면만 보고 아직은 쓸만한 청력에 의지하여 듣기로 했다. 그리고...  정말 그 강사는 대단하기는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예전에 어느 개그맨이 지하철 1호선 역을 줄줄 외워 히트친 일이 있거니와, 그 사람은 그 정도가 아니다. 전국의 90개 대학의 입시 정보를 줄줄 외우고 있었으며 '이러저러한 전형이 모두 13가지입니다'하면 어김없이 13개의 대학이름이 튀어나왔다. 이 등급으로는 40%이고, 저 등급으로는 60%입니다 하고 줄줄 읊조리고 난 뒤에 화면을 띄우면 정말 그 수치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그러한 대단한 암기력과, 암기한 내용을 두 페이지 혹은 몇 페이지에 걸쳐 간단하게 정리해 내는 편집력, 그건 정말 대단한 범접할 수 없는 것이다. 짬짬이 이런 걸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며, 현장 교사들의 입장에서 이런 것은 더 넣고, 이런 것은 필요하지 않아 뺐는데, 그 결과 정말 보기 좋은 자료가 되었고, 정말 훌륭하게 정리된 자료가 되었다고 간간이 자기 과시성 발언을 할 때에는 어김없이 박수가 일었다. 그렇게 전국의 대학교 100여개의 온갖 입시에 대해 쏟아내는데 그것도 쉬는 시간도 없이,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저녁 6시부터 9시반까지. 듣는 이들도 체력이 방전되는데, 강의는 끝이 없었다. 자기 말로는 처음 준비한 책에서 많은 부분을 제외했다는데, 그 부분을 포함해 모든 내용을 다 암기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리라. 부실한 내 시력이 문제이지, 정말 괜찮은 강의이고, 비록 피곤하여 많이 기억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얻어갈 것이 많을 것이다 라고 때때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왜 저 모든 내용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지, 그것도 쉬는 토요일 저녁까지 남아서, 침침한 눈을 부여잡고 말이야. 어느 대학에서 논술로 몇 % 학생을 뽑는데,우선 선발은 몇 %이고, 최저 등급으로는 국어 영어 수학이 몇 등급이어야 하고, 이런 것을 왜 다 기억해햐 하지 것인지. 그것도 한 대학에 하나의 전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십가지의 전형이 있고, 그런 대학이 다시 수십개가 있어서 그것과 그것을 곱하면 3천가지가 나온다는데 그걸 왜 다 기억해야 하냔 말이다. 그걸 왜 머릿속에 넣어 두고, 우리 아이들의 성적 하나하나를 대입시켜야 하냔 말이다. 그러다가 왜 저리 많은 전형이 생겼는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인데, 그것이 각 대학의 설립 이념이라던가, 건학 이념 이런 것을 아닐 것이다. 그럼 무엇. 서울에 있거나 없거나. 처음부터 일류였거나 이제 조금 일류의 문턱으로 넘어서는 것 같은 욕심이 들거나, 아예 우리는 일류를 포기한 학생들만을 모아 학교틀만 유지할 생각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대단한 대학의 교육렬을 이용하여 입시전형에 조금이라도 많은 학생들을 오게 만들어 대학 재정에 보탬이 될려고 작정했거나, 이런 여러 요인들이 모이고 모여 이 나라의 대단한 석학들이 모인 대학에서 저런 수천가지 전형을 만들어 낸 것이지 않느냐. 우리는 1등급 학교이니, 이 정도의 최등급을 만들어 두었고, 우리는 3등급의 학교이니 논술 대신에 적성 시험을 보며, 우리는 5등급의 학교이니 국어A형이나 국어B형이나 가리지 않고 다 받겠다고 스스로 선언하는 것이냔 말이다. (이건 그 강사의 말이다. 그리고 내 생각이기도 하다.)그리고 그 선언에 따라 매김된 두툼한 전형 계획을 암기한 전국의 고등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을 일사분란하게 줄을 세워야 하냔 말이다. 3학년을 맡게 된 업보를 지닌 주변의 교사들이 이리 늦은 밤까지 잡협 그런 속물적인 논리를 강요받아야 하냐는 것이다. 언젠가 사람은 없고 숫자만 남아 있는게 내 고민이라 했는데, 우리 나라 대학들은 아예 사람을 과감하게 지워버리고 숫자만 남긴 것이 아닌 것인지. 


- 답답함은 줄갈음이 필요없다. 답답함은 처음과 끝도 필요없다. 그 답답한 곳에 지금 내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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