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또는 함께/학교에서 생각하는

나의 빈도수 - 어느 입시설명회 후기

New-Mountain(새뫼) 2013. 3. 1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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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사설입시기관에서 주최하는 입시설명회에 다녀왔다. 강사는 한때 인터넷 강사로 이름을 날리던 이 아무개. 별일도 없이 허둥대는 것만 익숙한 초보 3학년부장은 의도는 순박하고, 기대는 소박할 뿐이다. 뭔가 하나 얻어 오면 되겠지. 얻고 물어 둥지 안에 풀어 놓으면 되겠지.

물론 행사를 여는 기관이 그런 곳이라 저들이 할 광고에 대해 어느 정도는 각오를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에 그 자리에 오는 사람들은 입시 시장의 ''들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각 학교 3부장들, ''이 아니겠는가. 약간은 당당함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별.. 없었다. 정말 별.. 없었다.

대학입시와 수학능력시험과 수시입시와 이런 저런 숫자의 나열. 1시간 채 못 되어 이루어진 그 이름난 강사의 강연은 철저하게 숫자로 시작되어 숫자로 끝나버렸다. 잠시 키보드를 두드리면 나올만한 그런 정보들의 나열. 초보 3부장도 알만한 그런 깊지 않은 정보들. 그렇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숫자가 온통 지배하는 거대한 시장에서 대단하게 성공한 사람이 아니냐. 나는 전혀 아닌데 말이다.

다만 저이가 다루는 숫자의 스케일이 나와는 다르다는 것에 정말 질려버렸다. 똑같이 대입 수험생을 말하고 있지만, 내가 다루는 빈도수는 정말 빈약하다. 집에 있는 수험생의 빈도수야 고작 1이고, 3학년부장으로 다루는 빈도수라 해도 420이다.(사실 이것도 대단히 큰 숫자이다.) 하지만 저이가 다루는 빈도수는 최소한 15천이고, 최대 4십만은 아우른다. 화면에 비추어지는 숫자가 몇 자리인지를 겨우 파악할 즈음이면, 화면은 얼른 그 다음으로 넘어가 버린다.

연봉과 다루는 빈도수는 비례하는 것인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바보같은 생각을 조금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저이가 제시하는 어마어마한 숫자 안에 빈도수 1을 대입해야 하는 것이 아빠의 일이오. 저이가 제시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에 420의 빈도수를 맞추어야 하는 것이 직장에서의 내 일이리라. 곧 숫자를 숫자로만 끝낼 수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내 숙명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냄새를 싸악 빼버리고 숫자에 숫자를 더해 거대한 숫자를 만들어내는 저이와는 차원이 다른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숫자를 다루어야 하지만, 숫자보다 더한 그 무엇을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적게는 1에서 많게는 420까지. 그것이 위안일까. 하지만 3월 들어 딸애 얼굴을 제대로 본 날은 몇 일이 안되고, 아직 420명 중에 이름과 얼굴을 제대로 아는 아이들은 20명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숫자가 아니라 그 무엇을 다루고 있다고 합리화하려 해도, 내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숫자를 헤아리는 일은, 아니 헤아려야만 하는 일은

나로서는 정말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돌아오는 길에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거기서 저녁으로 먹었던 초밥이 몇 개였던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걸 왜 기억해야 하나. 굳이 기억할 필요도 없는 바보같은 생각일 뿐이지.

그러다가 문득 나 역시,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이 되면, 오늘 보고 온 숫자 안에 다시 사람의 냄새를 쏘옥 빼버리고, 1이라는 숫자를, 420이라는 숫자를 집어넣게 되지나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말 바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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