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문산문

강희맹의 '등산설'

New-Mountain(새뫼) 2022. 7. 1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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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山說(등산설) ; 세 형제가 산에 오른 이야기

 

姜希孟(강희맹, 1424~1483)

신영산 옮김

 

 

魯民有子三人焉.

甲沈實而跛, 乙好奇而全, 丙輕浮而捷勇過人.

居常力作, 丙居常最, 而乙次之. 甲辛勤服役, 僅得滿課而無所怠.

노민유자삼인언

갑침실이파 을호기이전 병경부이첩용과인

거상역작 병거상최 이을차지 갑신근복역 근득만과이무소태

 

한 노(魯) 나라 사람에게는 아들 삼 형제가 있었다.

갑(甲)은 착실하였지만 다리를 절었고, 을(乙)은 호기심이 많았는데 몸은 온전하였으며, 병(丙)은 경솔하였지만 용맹스러운 힘이 남보다 나았다.

그래서 평상시에 힘들여 일하게 되면, 병이 항상 으뜸을 차지하였고, 을이 그다음이었다. 갑은 고되게 일을 하였는데, 맡은 일을 가까스로 하기는 하였지만 게을리하는 바가 없었다.

 

一日, 乙與丙, 約登泰山日觀峯試力, 爭修屩屐. 甲亦飾裝.

乙與丙相視而笑曰 :

“泰山之峯, 出雲表, 俯天下, 非健脚力者, 不能陟. 豈跛者所能睥睨哉.”

甲哂曰 : “聊且隨諸君末至, 萬幸也.”

일일 을여병 약등태산일관봉시력 쟁수교극 갑역식장.

을여병상시이소왈

태산지봉 출운표 부천하 비건각역자 불능척 기파자소능비예재

갑신왈 료차수제군말지 만행야

 

하루는 을과 병은 더불어 태산의 일관봉에 누가 먼저 오르는가를 시험하기로 약속하고, 다투어 신발들을 준비하였다. 이에 갑도 역시 행장을 마련하였다.

을과 병은 더불어 서로를 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태산의 봉우리는 구름 밖을 솟아나서, 온 천하를 내려다보는지라, 다리 힘이 뛰어나지 않으면, 능히 오를 수가 없지요. 어찌 절름발이가 되어 능히 넘겨볼 수 있으리오.”

하니, 갑은 웃으며 말하기를,

“그저 아우들을 따라가다 마지막으로 당도하기만 하다면은 천만다행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三子至泰山下.

乙與丙戒甲曰 : “吾曹飛騰絶壑, 曾不一瞬, 可且先行.”

甲 : “唯唯.”

삼자지태산하

을여병계갑왈 오조비등절학 증불일순 가차선행

갑 유유

 

세 형제는 태산 아래 당도하였다.

을과 병이 함께 갑을 경계하며 말하기를,

“우리들은 절벽과 골짜기를 뛰어오르기를, 눈 한 번 깜짝하는 사이에 하니, 형이 먼저 오르는 것이 좋겠네요.”

하니, 갑이,

“그리하마.”

하였다.

 

丙在山下, 乙至山腰, 日已昏黑.

甲徐行不已, 直至山頂. 夜宿館下, 曉觀日輪湧海.

三子還家, 父各詢所得.

병재산하 을지산요 일이혼흑

갑서행불이 직지산정 야숙관하 효관일륜용해

삼자환가 부각순소득

 

병은 산의 아래에서 머무르고, 을이 산허리에 이르렀을 때, 해가 이미 어두워 날이 캄캄해졌다.

갑은 느리지만 쉬지 않고 갔으니, 곧바로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밤에는 객사에서 자고 새벽에 해 바퀴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구경하였다.

세 형제가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각각 얻은 것을 물어보았다.

 

丙曰 : “吾卽山麓, 天日尙早.

自恃猱捷, 傍谿曲徑, 足無不到. 妖花怪草, 靡不採掇, 彷徨未竟.

瞑色忽至, 曁宿巖下, 悲風聒耳, 澗水喧豗, 狐貍野豕, 旋繞啼呼.

悄然疚懷, 思欲騁吾力, 而畏虎豹且止.”

병왈 오즉산록 천일상조

자시노첩 방계곡경 족무부도 요화괴초 미불채철 방황미경

명색홀지 기숙암하 비풍괄이 간수훤회 호리야시 선요제호

초연구회 사욕빙오력 이외호표차지

 

병이 말하기를,

“제가 산기슭에 당도하니, 하늘의 해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스스로 날래게 다닐 수 있음을 믿었기에, 좁고도 꼬불꼬불한 길을 거치지 않은 데가 없었습니다. 고운 꽃이나 기이한 풀도 캐보지 않은 것 없이, 서성대다 보니 산에 오르지 못했지요.

어두운 빛이 갑자기 몰려오니, 부득이 바위 밑에서 잠을 자려는데, 구슬픈 바람이 시끄럽게 귀에 불어오고, 골짜기의 물소리가 맞부딪쳤고, 여우와 삵과 멧돼지들이 울부짖으며 주위에 빙 돌며 돌아다녔지요.

문득 서운하면서도 슬픈 생각에 기운이 떨어지니, 그저 제 힘을 다하여 달려보려고도 하였지만, 호랑이와 표범이 두려워서 그만두었나이다.”

하였다.

 

乙曰 : “吾見衆峯排螺, 靑壁削鐵.

飛走凌高, 橫峯側嶺, 搜討靡遺, 峯愈多而愈峻.

脚力隨以疲薾, 甫及山腰而日已沒. 吾亦假息巖下, 雲霧瞑晦, 咫尺不辨.

衣屨冷濕, 上思山家則尙遙. 下思山足則亦遠, 姑安於此而不達矣.”

을왈 오견중봉배라 청벽삭철

비주능고 횡봉측령 수토미유 봉유다이유준

각력수이피이 보급산요이일이몰 오역가식암하 운무명회 지척불변

의구랭습 상사산가칙상요 하사산족칙역원 고안어차이부달의

 

을은 말하기를,

“저는 소라껍데기처럼 배열하여 있는 뭇 봉우리와, 쇠를 깎은 듯한 푸른 벼랑을 보았나이다. 나는 듯이 달려가서 높은 데도 올라보고, 이어지는 봉우리와 가파른 고개를 낱낱이 더듬어가며 쓰러질 듯 다녀보니, 봉우리는 오히려 많아지고 가팔라졌지요.

다리의 힘은 극도로 피곤해졌는데, 겨우 산 중턱에 당도하자 해는 이미 떨어져 버렸지요. 그래서 저 역시 바위 아래에서 쉬게 되었는데, 구름과 안개는 깜깜하게 밀려오니 지척을 구분할 수 없었지요.

옷과 신발은 싸늘하고 젖어, 위로 산마루를 오르자 하니 아직도 아득하고, 아래로 산 밑으로 내려가자니 역시 멀어서, 그저 거기에서 머물러 있었나이다.”

하였다.

 

甲曰 : “吾思吾足之偏跛, 慮吾行之偪側.

直尋一路, 竛竮不輟, 猶恐日力之不給, 奚暇傍行而遠矚乎.

盡心竭力, 躋攀分寸, 登陟未休.

而從者云, ‘已至絶處矣.’ 吾仰視天衢, 日馭可接, 俯瞰積蘇, 蒼蒼然不知所窮.

갑왈 오사오족지편파 여오행지핍측

직심일로 영병불철 유공일력지불급 해가방행이원촉호

진심갈력 제반분촌 등척미휴

이종자운 이지절처의 오앙시천구 일어가접 부감적소 창창연부지소궁

 

갑은 말하기를,

“저는 제 다리가 성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고, 내 걸음걸이가 기우뚱거리는 것을 염려하였지요. 곧바로 한 줄기 길을 찾아 비틀거리며 계속 가더라도, 오히려 남은 해가 부족할까 두려웠는데, 어느 겨를에 옆으로 가거나 멀리 바라볼 수 있었겠습니까?

마음과 있는 힘을 다하여서, 한 치 한 푼이라도 기어 올라가고, 또 올라가면서도 쉬지를 않았지요. 따라간 자가 하는 말이, ‘이미 꼭대기에 도달했다.’라고 하기에, 우러러 하늘을 보니 해라도 맞닿을 듯하였고, 굽어 쌓여있는 수풀을 보니, 빽빽하게 우거져서 끝 간 곳을 알 수 없었나이다.

 

羣山若封, 衆壑如皺, 及乎落景沈海, 下界黑暗.

傍視則星辰交輝, 手理可鑑, 信可樂也.

臥未安寢而天鷄一叫, 東方啓明, 殷紅抹海, 金濤蹴天, 赤鳳金蛇, 攪擾其間.

俄而, 朱輪轉輾, 乍上乍下, 目未交睫, 而大明昇於大空矣. 眞絶奇也.”

군산약봉 중학여추 급호락경침해 하계흑암

방시칙성신교휘 수리가감 신가락야

와미안침이천계일규 동방계명 은홍말해 금도축천 적봉금사 교요기간

아이 주륜전전 사상사하 목미교첩 이대명승어대공의 진절기야

 

무리 진 산들은 단단히 붙여 놓은 것 같았고, 뭇 골짜기는 주름진 것 같았으며, 지는 해는 바다에 잠겼으며, 아래 세상은 새까맣게 어두워졌습니다. 옆으로 보니 별들이 서로 빛나 손금도 볼 수 있을 만큼 환하니, 진실로 즐길 만하였나이다.

누워서 편안하게 잠들 새도 없이 금계가 한 번 울자 동방이 밝아오니, 검붉은 빛이 바다에 깔리고, 금빛 나는 물결이 하늘로 솟구치며, 붉은 봉황과 금빛 뱀이 그 사이에서 요란하였지요.

머지않아 붉은 바퀴가 구르고 굴러, 잠깐 오르고 잠깐 내리다가, 눈 한 번 깜박하는 사이에, 밝고도 큰 것이 공중으로 떠올랐는데, 정말로 빼어나게 기묘하였나이다.”

하였다.

 

父曰 : “信有若等事也.

子路之勇, 冉求之藝, 而竟未達夫子之墻, 曾子竟以魯得之. 小子識之.”

부왈 신유약등사야

자로지용 염구지예 이경미달부자지장 증자경이노득지 소자식지

 

아버지가 말하기를,

“너희들이 그리하였을 것으로 믿노라. 자로의 용맹이나 염구의 재능과 기예로는 끝내 공자의 담장에도 도달하지 못하였지만, 증자는 노둔함으로 마침내 얻을 수 있었노라. 너희들은 모름지기 이를 알아야 할 것이다.”

하였다.

 

噫, 進修德業之序, 成就功名之路, 凡自卑而升高.

自下而趍上者, 莫不皆然.

毋恃力以自畫, 毋怠力以自棄. 庶幾乎跛者之能自勉也. 毋忽.

희 진수덕업지서 성취공명지로 범자비이승고

자하이추상자 막불개연

무시역이자화 무태력이자기 서기호파자지능자면야 무홀

 

아, 덕이 있는 사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몸을 닦고 나아가는 순서를 찾아야 하고, 공명을 성취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무릇 낮은 데로부터 높은 데로 올라야 하니, 아래로부터 위로 가기 위해서는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제힘만 믿고 스스로 과시하지 않으며, 제힘을 게을리하여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리를 저는 자가 스스로 힘쓰는 자와 거의 같이 될 것이다.

가볍고 소홀히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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