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구운몽 한문본

권지일 - 8. 계섬월이 소유의 글을 읽고 감동하여 몸을 허락하다

New-Mountain(새뫼) 2020. 11. 23. 11:13
728x90

구운몽(1-08).pdf
0.42MB

 

8. 계섬월이 소유의 글을 읽고 감동하여 몸을 허락하다

 

生曰 : “諸兄之詩成之已久, 未知桂卿已歌何人之詩乎?”

王生曰 : “桂卿尙靳一闋淸音, 櫻脣久鎖玉齒未啓, 陽春絶調猶不入於吾儕之耳,

桂卿若不故作嬌態, 則必有羞澁之心而然也.”

生曰 : “小弟曾在楚中, 雖或衣樣畵芦作一兩首詩, 而卽局外之人也. 與諸兄較芸 恐未安也.”

 

생왈 제형지시성지이구 미지계경이가하인지시호

왕생왈 계경상근일결청음 앵순구쇄옥치미계 양춘절조유불입어오제지이

계경약불고작교태 즉필유수삽지심이연야

생왈 소제증재초중 수혹의양화호작일양수시 이즉국외지인야 여제형교운 공미안야

 

양생이 이르기를,

“여러 형들의 시가 경지에 들은 지 이미 오래인데, 계경이 누구의 시를 노래하였는지 알 수 있느냐?”

왕생이 답하기를,

“계경이 아직도 맑고 깨끗한 소리를 아껴, 앵두 같은 입술을 오래도록 꼭 다문 채 옥 같은 이를 열지 아니하여, 고상한 가곡의 뛰어난 곡조가 우리 귀에 들어오지 아니하였는데, 계경이 만약 교태를 부리는 까닭이 아니라면, 곧 필연 부끄러워 머뭇거리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

양생이 이르기를,

“소제가 일찍이 초나라에 있을 때, 비록 간혹 남의 것을 모방하고 흉내 내어 한두 수의 시를 지어 보았으나, 소제는 관 밖의 사람이라, 여러 형들과 더불어 재주를 비교함은 아마도 미안한 일이 될 것이외다.”

 

王生大言曰 : “楊生容皃美於女子矣, 又何無丈夫之意耶.

聖人有言曰 當仁不讓於師, 又曰其爭也君子, 第惡楊兄無詩才也,

苟有才也 豈可徒執僞嫌乎.”

楊生雖外飾虛讓, 一見桂娘豪情已不制矣, 見諸生座傍尙有空箋,

生抽其一幅 縱橫走筆 題三章詩.

왕생대언왈 양생용모미어여자의 우하무장부지의야

성인유언왈 당인불양어사 우왈기쟁야군자 제오양형무시재야

구유재야 기가도집위혐호

양생수외식허양 일견계랑호정이부제의 견제생좌방상유공전

생추기일폭 종횡주필 제삼장시

 

왕생이 큰 소리로 이르기를,

“양생이 용모가 아름답기가 여자와 같거늘, 또 어이 이리도 장부의 뜻이 없느뇨.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어진 일을 당하여는 스승에게도 사양치 아니한다 하였도다. 또 말씀하시기를, 그 다툼이 곧 군자라 하였으니, 만일 양형이 시재가 없다면 부끄럽겠지만, 만일 재주가 있다면 어찌 부질없이 고집하여 겸양해 하리오.”

양생은 비록 체면치레로 사양하는 체했지만, 언뜻 보니 계랑의 호쾌하고 시원스러운 정을 이미 억제할 수 없어, 여러 서생의 자리 옆에 아직껏 빈 시전이 있음을 보고, 그중 한 폭을 뽑아 종횡으로 붓을 날려 세 개의 장으로 된 시를 지었다.

 

此如風檣之走海, 渴馬之奔川, 諸生見其詩思之敏捷, 筆勢之飛動 莫不驚訝失色矣.

楊生擲筆於席上 謂諸生曰 : “宜先請敎於諸兄, 而今日座中桂卿卽考官也. 納卷時刻恐不及也.”

卽送其詩箋於桂卿 其詩曰 :

차여풍장지주해 갈마지분천 제생견기시사지민첩 필세지비동 막불경아실색의

양생척필어석상 위제생왈 의선청교어제형 이금일좌중계경즉고관야 납권시각공불급야

즉송기시전어계경 기시왈

 

시는 바람 만난 배가 바다를 달려가고, 목마른 말이 시내로 달려가는 것 같았다. 여러 서생은 그 시 정취가 민첩하고, 붓 힘의 날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람과 의아함에 얼굴빛을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생이 자리 위에 붓을 던지고 여러 서생에게 이르기를,

“마땅히 여러 형씨에게 먼저 가르침을 청해야 하나, 오늘은 좌중의 계경이 곧 시험관이라. 글을 바칠 시각이 지났는지 두려워 하노라.”

곧, 그 시전을 계경에게 보냈는데, 그 시에 읊기를,

 

香塵欲起暮雲多 향진욕기모운다

共待妙姬一曲歌 공대묘희일곡가

十二街頭春晼晩 십이가두춘원만

楊花如雪奈愁何 양화여설내수하

 

향기로운 티끌 일자 저녁 구름 많아지니

여인의 한 곡조를 함께 기다리도다.

번화한 열두 거리 봄은 이미 늦었고,

버들꽃이 눈 같으니 근심을 어찌하리오.

 

花枝愁殺玉人粧 화지수쇄옥인장

未發纖歌氣已香 미발섬가기이향

下蔡陽城渾不管 하채양성혼부관

只恐粧得鐵爲腸 지공장득철위장

 

꽃가지가 미인의 단장을 부끄러워하니

노랫소리 없었어도 입 기운은 향기롭도다.

하채와 양성은 거리끼지 아니하되

쇠 같은 마음 얻기가 어려울까 근심하노라.

 

旗亭暮雪按凉州 기정모설안양주

最是王郞得意秋 최시왕랑득의추

千古斯文元一脈 천고사문원일맥

莫敎前輩擅風流 막교전배천풍류

 

주점에 눈 그치니 양주 자사 불러보니

이때가 곧 왕랑이 득의한 가을이로다.

아득한 옛날부터 이 글과 한 맥이니

선비들이여, 풍류를 일삼지 말지어다.

 

楚客西遊路入晉 초객서유로입진

酒樓來取洛陽春 주루래취락양춘

月中丹桂樹斷折 월중단계수단절

今代文章自有人 금대문장자유인

 

초나라 손 서쪽에서 와 진나라에 들었으니

주점에 찾아와서 낙양의 봄에 취하였도다,

달 가운데 계수나무 누가 먼저 꺾을 손가.

오늘은 글 잘 쓰는 주인이 나타나리라.

 

天津橋上柳花飛 천진교상류화비

珠箔重重映夕暉 주박중중영석휘

側耳要請歌一曲 측이요청가일곡

錦筵休復舞羅衣 금연휴복무라의

 

천진교 위에서는 버들꽃이 날아다니고

구슬발은 주렁주렁 저녁 빛에 비치는구나.

귀 기울여 들으려는 노래 한 곡 있었으니

그대 비단 자리에서 다시 춤추지 말지어다.

 

蟾月乍轉星眸霎然看過, 檀板一聲淸歌自發, 嫋嫋如縷 咽咽如訴,

鶴唳靑田 鳳鳴丹丘, 秦箏奪其群 趙瑟失其曲, 滿座皆灑然易容.

初諸人傲視楊生許令作詩矣, 及其三詩皆入於蟾月之歌喉, 憮然敗興相顧無言,

欲讓蟾月於楊生 則近於無膽, 欲背座中之初約 則難於失信, 面面直視嘿嘿癡坐.

섬월사전성모삽연간과 단판일성청가자발 뇨뇨여루 인인여소

학려청전 봉명단구 진쟁탈기군 조슬실기곡 만좌개쇄연역용

초제인오시양생허령작시의 급기삼시개입어섬월지가후 무연패흥상고무언

욕양섬월어양생 즉근어무담 욕배좌중지초약 즉난어실신 면면직시묵묵응좌

 

섬월이 샛별 같은 눈동자를 언뜻 돌려 잠시 보다가, 단판(檀板) 한 소리에 맑은 노래를 스스로 내었다. 간들거림은 가는 실과 같고, 빨라지는 북소리는 울부짖는 것과 같았으며, 학이 푸른 밭에서 눈물을 흘리고, 봉황이 단구(丹丘)에서 우는 하였으며, 진쟁(秦箏)은 그 소리를 빼앗겼고, 조슬(趙瑟)은 그 곡조를 잃었으니, 자리에 가득한 사람들은 넋을 잃고 낯빛을 고쳤다.

처음에 여러 사람이 양생을 업신여기다가 시를 짓도록 허용하였고, 세 수의 시가 모두 섬월의 노래에 오르게 되자, 크게 낙담하여 흥은 깨어지고 말없이 서로 둘러보았다. 섬월을 양생에게 사양하고자 하나, 쓸개가 없는 노릇인 듯하였고, 좌중에서 처음에 한 언약을 저버리고자 하지만, 곧 실언하기도 어려워서, 얼굴을 서로 똑바로 보며 묵묵히 멍청하게 앉아 있었다.

 

楊生知其氣色, 倏起告辭曰 : “小弟偶蒙諸兄款接, 叨叅盛宴旣醉且飽, 誠切感幸.

前路尙遠行色甚忙, 未得終日吐話, 他日曲江之會, 當罄此餘情矣.”

乃從容下去, 諸生亦不肯挽止矣.

양생지기기색 숙기고사왈 소제우몽제형관접 도참성연기취차포성절감행

전로상원행색심망 미득종일토화 타일곡강지회 당경차여정의

내종용하거 제생역불긍만지의

 

양생이 그 기색을 알고, 벌떡 일어나 작별을 고하여 이르기를,

“소제가 우연히 여러 형으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아, 외람되이 성대한 잔치에 참석하여, 이미 취하고 또 배부르게 먹었으니, 참으로 실로 고맙고 행복하나이다. 앞길이 아직 멀고 행색이 매우 바빠, 종일토록 털어놓고 말할 수 없으니, 후일 곡강(曲江)에서 열리는 과거 급제 뒤풀이 잔치에서 마땅히 남은 정을 다하도록 하겠소이다.”

하고, 천천히 내려가니, 여러 서생이 또한 만류하지 아니하였다.

 

生出至樓前 方欲跨驪, 蟾月忙步而來謂生曰 : “此路南畔有粉墻, 墻外有櫻桃盛開, 此乃妾家.

相公須先往訪得此家, 待妾還歸 妾亦從此往矣.”

生點頭而諾南向而去.

蟾月上樓謂諸生曰 : “諸相公不以妾爲陋, 以數闋之歌卜今夜之緣, 將何以處之耶?”

생출지루전 방욕과려 섬월망보이래위생왈 차로남반유분장 장외유앵도성개 차내첩가

상공수선왕방득차가 대첩환귀 첩역종차왕의

생점두이낙남향이거

섬월상루위제생왈 제상공불이첩위루 이수결지가복금야지연 장하이처지야

 

양생이 누각 앞에 이르러 나귀에 걸터앉으려 할 때, 섬월이 바쁜 걸음으로 달려와 양생에게 이르기를,

“이 길 남쪽 가에 색을 칠한 담이 있는데, 담 밖에 앵두꽃이 무성하게 핀 이곳이 첩의 집이옵니다. 상공께서 모름지기 먼저 가시어, 이 집에 들러 첩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면 첩 또한 이곳으로 뒤따라가겠나이다.”

양생은 머리를 끄덕이며 승낙하고 남쪽으로 향하여 갔다.

섬월이 누각 위에 있는 여러 서생에게 묻기를,

“여러 상공이 첩을 더럽다 아니하시고, 여러 노래를 끝냄으로 오늘 밤의 인연을 점치셨는데, 장차 어찌 처신하여야 하오리까?”

 

諸人猶不舍愛慕之情 答曰 : “楊哥客也. 非吾輩中人, 何可以此爲拘乎?”

互相和應終無定論, 蟾月以冷談應之曰 :

“人而無信妾不知其可也. 座上娼樂非不足也, 諸相公盡其不盡之興. 妾適有病 未侍坐終宴矣.”

乃緩步而出, 諸人旣初有約, 且見其冷談之色, 不敢出一言矣.

제인유불사애모지정 답왈 양가객야 비오배중인 하가이차위구호

호상화응종무정론 섬월이냉담응지왈

인이무신첩부지기가야 좌상창악비부족야 제상공진기부진지흥 첩적유병 미시좌종연의

내완보이출 제인기초유약 차견기냉담지색 불감출일언의

 

여러 사람이 오히려 애모의 정을 버리지 않고 답하기를,

“양가는 객이라. 우리 무리 중의 사람이 아니니 어찌 거리낄 것이 있겠는가?”

서로 묻고 답하나 마땅한 의논을 내리지 못하니, 섬월이 쌀쌀하게 답하기를,

“사람에게 믿음이 없음이 옳은 일이라고 첩은 알고 있지 않사옵니다. 좌상에 계집들도 노래가 부족하지 아니하니, 여러 상공께서는 다하지 못한 흥을 다 하옵소서. 첩은 몸이 불편해 잔치를 다할 때까지 앉아 모실 수가 없겠나이다.”

이에 느린 걸음으로 나오니, 여러 사람은 처음에 한 약속도 있고, 또 섬월의 냉담한 모습을 보고, 감히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하였다.

 

此時楊生往住店, 搬移行李趁黃昏, 往尋蟾月之家, 蟾月先已還家, 掃中堂燃華燭, 悄然而待之.

楊生繫驢櫻桃樹下, 往叩重門, 蟾月聞剝啄之聲, 跕屣出迎曰 :

“下樓之時郞先而妾後, 妾已先到 而郞何後也?”

楊生曰 : “以主人而待客可乎? 以客而待主人可乎? 眞所謂非敢後也, 馬不前也.”

차시양생왕주점 반이행이진황혼 왕심섬월지가 섬월선이환가 소중당연화촉 초연이대지

양생계려앵도수하 왕고중문 섬월문박탁지성 접시출영왈

하루지시랑선이첩후 첩이선도 이랑하후야

양생왈 이주인이대객가호 이객이대주인가호 진소위비감후야 마부전야

 

이때 양생은 여관에 가서 행장을 옮겨, 황혼 무렵 섬월의 집을 찾아가니, 섬월이 이미 먼저 집에 돌아와 대청을 쓸고 화촉을 밝히며, 기운 없이 양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생이 나귀를 앵두나무 아래에 매어 놓고, 중문에 가서 두드리니, 섬월이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신발을 끌고 천천히 나와 맞으며 아뢰기를,

“누각 아래에서 낭군이 먼저 가고 첩이 뒤에 왔거늘, 첩이 이미 먼저 도착했는데 낭군은 어찌하여 뒤에 오시나이까?”

양생이 답하기를,

“주인이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 옳은가? 손님이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 옳은가? 진실로 이르노니 감히 뒤늦게 오려 한 것이 아니라, 말굽이 나아가지 않아서이라.”

 

遂相與扶携而入, 兩人相對其喜可知.

蟾月滿酌玉盃, 金縷衣一曲侑之, 芳姿嫩聲, 能割人之腸 而迷人之魂,

生情不能抑相携就寢, 雖巫山之夢 洛浦之遇, 未足以踰其樂矣.

수상여부휴이입 양인상대기희가지

섬월만작옥배 금루의일곡유지 방자눈성 능할인지장 이미인지혼

생정불능억상휴취침 수무산지몽 낙포지우 미족이유기락의

 

마침내 서로 부축하고 함께 들어가 두 사람이 서로 대하니 그 기쁨을 알 만하였다.

섬월이 옥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금루의(金縷衣) 한 곡을 불러 술을 권하니, 아리따운 자태와 간드러진 소리가 능히 사람의 간장을 끊을 듯하고 사람의 혼을 혼미케 하였다.

양생은 솟구치는 정을 자제치 못하고, 서로 이끌어 잠자리에 드니 곧 무산(巫山)의 꿈과, 낙포(洛浦)의 만남도 그 즐거움이 이를 넘을 수 없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