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구운몽 한문본

권지일 - 6. 소유가 난리를 당해 진채봉을 만나지 못하고 헤어지다

New-Mountain(새뫼) 2020. 11. 22. 21:16
728x90

구운몽(1-06).pdf
0.48MB

 

6. 소유가 난리를 당해 진채봉을 만나지 못하고 헤어지다

 

 

乳娘去卽還來曰 : “小姐奉賢郞和詩十分感激, 且備傳郞君之意則小姐曰

‘男女未及行禮, 私與相見 極知其非禮, 然方欲托身於其人 而何可有違於其言乎?

且中夜相會人言可畏, 異日父親若知之則必有厚責, 欲待明日相會於中堂, 相與約定云’.”

유낭거즉환래왈 소저봉현랑화시십분감격 차비전랑군지의즉소저왈

남녀미급행례 사여상견 극지기비례 연방욕탁신어기인 이하가유위어기언호

차중야상회인언가외 이일부친약지지즉필유후책 욕대명일상회어중당 상여약정운

 

유모 할멈이 갔다가 곧 돌아와 아뢰기를,

“소저께서는 어진 낭군이 화답하는 시를 받고 십분 감격하시며, 또한 낭군의 뜻을 다 전하니 말씀하시기를, ‘남녀가 아직 예식을 행하지 않고 사사로이 만남은 예가 아님을 잘 알고 있지만, 이내 몸을 그 사람에게 맡기려 하는데, 어찌 그 말을 어길 수가 있겠나이까? 또 한밤중에 서로 만나면 남의 말이 두려울뿐더러, 다른 날엔가 부친이 만일 그 일을 아시면 필연 엄히 꾸짖을 터이니, 밝은 날을 기다려 대청에서 만나 서로 언약을 정하사이다.’라고 하시더이다.”

 

楊生嗟歎曰 : “小姐明敏之見, 正大之言非小生所及也.”

對乳娘再三勤囑毋令失期, 乳娘唯唯而去.

是夜生留宿於店中, 轉展不寐坐待晨鷄, 苦恨春宵之長也, 俄而斗杓初轉村鷄催鳴.

양생차탄왈 소저명민지견 정대지언비소생소급야

대유낭재삼근촉무령실기 유낭유유이거

시야생유숙어점중 전전불매좌대신계 고한춘소지장야 아이두표초전촌계최명

 

양생이 한숨지어 탄식하며 이르기를,

“소저의 명민하신 소견과 바르고 큰 뜻은 소생이 미칠 바가 아니로소이다.”

하고는, 유모 할멈에게 거듭 간절히 부탁하며 시기를 어기지 말라 하니, 유모 할멈이 고개를 끄덕이며 갔다.

이날 밤 양생이 주막에 머물러 묵으면서, 엎치락뒤치락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앉아서 새벽닭 울기만 기다리더니, 봄밤이 괴로움의 긺을 한탄하거늘, 이윽고 북두칠성이 처음으로 자리를 옮기자 시골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方欲呼童而秣馬矣, 忽聞千萬人喧闐之聲, 潮湧湯沸自西方而來矣.

楊生大驚攝衣而出, 立街而見之 則執兵之亂卒, 避亂之衆人,

籠山絡野紛騈雜遝, 軍聲動地哭響于霄.

방욕호동이말마의 홀문천만인훤전지성 조용탕불자서방이래의

양생대경섭의이출 립가이견지 즉집병지란졸 피란지중인

농산락야분병잡답 군성동지곡향우소

 

막 서동을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 하였더니, 갑자기 많은 사람의 떠들썩한 소리가 물 끓듯이 용솟음치며 서쪽으로부터 들려왔다.

양생이 크게 놀라 옷매무시를 바르게 하고 밖으로 나가, 거리에 서서 그것을 본즉, 병기를 잡은 군사들과 피란하는 사람들이, 산과 들을 온통 휩쓸어 에워싸며 북적거려 어지러이 흩어져 돌아오니, 군사들의 소리가 땅을 진동하고 곡소리가 하늘에까지 울려 퍼지고 있었다.

 

問之於人曰 : “神策將軍仇士良自稱皇帝 發兵而反, 天子出巡楊州, 關中大亂賊兵四散劫掠人家

且傳言 閉函關不通往來之人, 毋論良賤 皆作軍丁矣.”

生慌忙驚懼, 遂率書童鞭驢促行, 望藍田山而去, 欲竄伏於巖穴之間矣.

문지어인왈 신책장군구사량자칭황제발병이반 천자출순양주 관중대란적병사산겁략인가

차전언 폐함관불통왕래지인 무론량천 개작군정의

생황망경구 수솔서동편려촉행 망람전산이거 욕찬복어암혈지간의

 

근처 사람에게 이 일을 물으니 답하기를,

“신책장군(神策將軍) 구사량(仇士良)이란 자가 스스로 황제라 일컫고, 군사를 일으켜 모반을 하였소. 천자는 양주(楊州)로 몸을 피하시고, 관중(關中)이 크게 어지러워졌으며, 적병이 사방으로 흩어져 인가를 약탈한다 하오. 또 전하여 들은즉, 함곡관(函谷關)을 닫고 오가는 사람들을 통하지 못하게 하며, 양민과 천민을 막론하고 모두 군병으로 삼는다고도 하오.”

양생이 어리둥절 두려워하다가, 마침내 서동을 데리고 나귀에 채찍질하며 갈 길을 재촉하여 남전산(藍田山)을 바라보고 가서, 깊은 골짜기 틈으로 도망해 숨으려 하였다.

 

仰見絶頂之上, 有數間草屋 雲影掩翳, 鶴聲淸亮, 楊生知有人家, 從岩間石逕而上,

有道人凭几而臥, 見生至起坐問曰 : “君是避亂之人, 必淮南楊處士令郞也.”

앙견절정지상 유수간초옥 운영엄예 학성청량 양생지유인가 종암간석경이상

유도인빙궤이와 견생지기좌문왈 군시피란지인 필회남양처사령랑야

 

산 정상 위를 우러러보니, 몇 칸 안 되는 작은 초가가 구름의 그림자에 가려 있고, 학 울음소리가 맑고 시원했다. 양생이 인가가 있음을 알고 바위틈의 좁은 돌길을 따라 올라가니, 한 도인(道人)이 책상에 기댄 채 누워 있다가 양생이 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앉으며 묻기를,

“그대는 난을 피해 가는 사람으로, 필연 회남(淮南) 땅 양처사의 아들이렷다.”

 

楊生趨進再拜, 含淚而對曰 : “小生果是楊處士子也. 自別嚴父 只依慈母 氣質甚魯, 才學俱蔑

而忘生徼倖之計, 冒充觀國之客, 行到華陰猝値變亂.

不圖今日獲拜大人, 此必上帝俯鑑微誠故, 令叨倍大仙之几杖, 得聞嚴父之消息,

伏乞仙君毋惜一言, 以慰人子之至情. 家嚴今在何山 而體履亦何如?"

양생추진재배 함루이대왈 소생과시양처사자야 자별엄부 지의자모 기질심노 재학구멸

이망생요행지계 모충관국지객 행도화음졸치변란

부도금일획배대인 차필상제부감미성고 영도배대선지궤장 득문엄부지소식

복걸선군무석일언 이위인자지지정 가엄금재하산 이체리역하여

 

양생이 나아가 두 번 절하며 눈물을 머금은 채 대답하여 아뢰기를,

“소생은 과연 양처사의 아들이옵니다. 부친과 헤어지고부터 다만 모친께 의지해 오던 중, 기질이 심히 어리석고 둔하며, 재주와 학식의 갖춤이 변변치 않사옵니다. 그럼에도 망령되이 요행의 생각으로 과거를 보러 가다가 화음(華陰) 땅에 이르러 갑자기 변란을 당했사옵니다.

이는 뜻밖에도 하느님께서 굽어살피시어, 작은 정성으로 일부러 외람되이 큰 스승님의 제자가 되어 따르도록 하시고, 부친의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옵니다. 엎드려 빌건대, 선군(仙君)께서는 말씀을 아끼지 마시고, 남의 아들 된 이의 지극한 인정을 위로해 주시옵소서. 부친은 지금 어느 산에 계시며 또한 기체(氣體) 어떠하시나이까?”

 

道人笑曰 : “尊君與我着朞於紫閣峯上, 別去屬耳,

未知其向何處而童顔, 不改綠髮長春, 惟君毋用傷懷.”

楊生泣訴曰 : “或因先生可得一拜於家嚴乎?”

도인소왈 존군여아착기어자각봉상 별거속이

미지기향하처이동안 불개록발장춘 유군무용상회

양생읍소왈 혹인선생가득일배어가엄호

 

도인이 웃으며 이르기를,

“그대 부친이 나와 더불어 자각봉(紫閣峯) 위에서 바둑을 두고 헤어지면서 보고 들었으되, 어디로 향해 갔는지를 알 수 없고, 안색도 변함이 없으며, 검은 머리도 희어지지 않았으니 오직 그대는 애통해하지 마라.”

양생이 울면서 간절히 호소하기를,

“혹시 선생을 인연하여 아버님을 한 번 뵐 수 있겠나이까?”

 

道人又笑曰 : “父子之情雖深, 仙凡之分逈殊, 雖欲爲君圖之, 末由也

而况三山渺邈, 十洲空濶 尊公去就何以得之?

君旣到此姑且留宿, 徐待道路之通, 歸去亦未晩也.”

도인우소왈 부자지정수심 선범지분형수 수욕위군도지 말유야

이황삼산묘막 십주공활 존공거취하이득지

군기도차고차류숙 서대도로지통 귀거역미만야

 

도인이 또 웃으며 답하기를,

“부자의 정이 비록 깊으나, 선계와 속세의 사이가 멀고 특별하니, 비록 자네를 위해 주선하려 해도 할 수 없도다. 또한 삼신산(三神山)이 아득히 멀고 십주(十洲)가 넓은지라, 자네 부친의 거취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대가 이미 여기에 이르렀으니 잠시 머물러 묵으면서, 길이 트이기를 천천히 기다리다 돌아간다 해도 또한 늦지 아니하리라.”

 

楊生雖聞父親安寧之報, 道人落落無顧念之意, 會合之望已絶矣, 心緖悽愴泪流被面,

道人慰之曰 : “合而離 離而合 亦理之常也, 何以爲無益之悲也?”

양생수문부친안녕지보 도인락락무고념지의 회합지망이절의 심서처창루류피면

도인위지왈 합이리 이이합 역리지상야 하이위무익지비야

 

양생이 비록 부친의 무사함을 들었으나, 도인이 주선할 뜻이 없으매, 부친을 뵙고자 하여 바람이 꺾이자, 심기가 무척 처량하여 눈물이 낯을 적셨다.

도인이 위로하기를,

“만나고 헤어짐과 헤어지고 만남은, 역시 떳떳한 이치인데, 어찌하여 무익한 슬픔을 지니는가?”

 

楊生拭淚而謝當隅而坐, 道人指壁上弦琴而問曰 : “君能解此乎?”

生對曰 : “雖有素癖而未遇賢師, 不得其妙處矣.”

道人使童子授琴於生使彈之, 生遂置之膝上, 奏風入松一曲,

道人笑曰 : “用手之法活動可敎也.”

양생식루이사당우이좌 도인지벽상현금이문왈 군능해차호

생대왈 수유소벽이미우현사 부득기묘처의

도인사동자수금어생사탄지 생수치지슬상 주풍입송일곡

도인소왈 용수지법활동가교야

 

양생이 눈물을 거두고 도인께 사례하며 모퉁이에 앉으니, 도인이 벽 위의 거문고를 가리키며 묻기를,

“그대는 이것을 탈 줄 아는가?”

양생이 답하기를,

“비록 원래 좋아하옵니다만 어진 스승을 만나지 못하여, 그 묘한 방법을 얻지 못하였사옵니다.”

도인이 동자를 시켜 양생에게 거문고를 주고 그것을 타게 하거늘, 양생이 드디어 그것을 무릎 위에 놓고 풍입송(風入松) 한 곡조를 타니, 도인이 웃으면서 이르기를,

“손쓰는 법이 살아 가벼워서 가르칠 만하도다.”

 

乃自移其琴, 以千古不傳之四曲, 次第敎之, 淸而幽雅而亮, 實人間之所未聞者.

生本來精通音律, 且多神悟, 一學能盡傳其妙.

道人大喜又出白玉洞簫, 自吹一曲 以敎生仍謂之曰 :

“知音相遇古人所難, 今以此一琴一簫贈君, 日後必有用處 君其識之.”

내자이기금 이천고부전지사곡 차례교지 청이유아이량 실인간지소미문자

생본래정통음률 차다신오 일학능진전기묘

도인대희우출백옥동소 자취일곡 이교생잉위지왈

지음상우고인소난 금이차일금일소증군 일후필유용처 군기식지

 

이에 스스로 거문고를 옮겨 먼 옛적부터 전하지 못하던 네 곡조를 차례로 가르치니, 그 소리가 맑고 그윽하여 우아하고 밝아 실로 인간 세상에서 듣지 못하던 바였다. 양생은 음률(音律)에 정통하고 또한 신비할 정도로 깨우침이 많아서 한 번 배우면 그 오묘함을 다 이어받을 수 있었다.

도인은 크게 기뻐하며 또 백옥 퉁소를 내어, 몸소 한 곡조를 불러 양생에게 가르치며 이르기를,

“지음(知音)을 서로 만나기는 옛사람의 어려워하던 바라. 이제 거문고 하나와 퉁소 하나를 그대에게 주노니, 후일에 반드시 쓸 곳이 있을 것이라. 그대는 이 말을 기억해 두어라.”

 

生受而拜謝曰 :

“小生之得拜先生, 必是家親之指導. 先生卽家親故人, 小生敬事先生 何異於家親乎?

侍先生杖屨, 以備弟子列小子願也.”

생수이배사왈

소생지득배선생 필시가친지지도 선생즉가친고인 소생경사선생 하이어가친호

시선생장구 이비제자열소자원야

 

양생이 받고 절하면서 사례하며 아뢰기를,

“소생이 선생을 만나 뵙게 된 것은, 반드시 부친께서 이끄신 것이옵니다. 선생은 곧 부친의 친구이시니, 소생이 선생을 공경하여 섬기는 것이 어찌 부친께 이상하겠사옵니까? 선생의 지팡이와 짚신을 모셔 제자의 열(列)을 갖추고자 함이 소생이 바라는 것이옵니다.”

 

道人笑曰 : “人間富貴自來偪君, 君將不可免也, 何能從遊老夫棲在岩穴乎?

况君畢竟所歸之處, 與我各異非我之徒也. 但不忍負殷勤之意.

贈此彭祖方書一卷, 老夫之情此可領也, 習此則雖不能久視延年, 亦足以消病却老也.”

도인소왈 인간부귀자래핍군 군장불가면야 하능종유노부서재암혈호

황군필경소귀지처 여아각리비아지도야 단불인부은근지의

증차팽조방서일권 노부지정차가령야 습차즉수불능구시연년 역족이소병각노야

 

도인이 웃으며 이르기를,

“인간의 부귀가 스스로 와서 그대에게 닥치는 것을 자네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니, 어찌 노부(老夫)를 좇아 바위 굴에서 살 수 있겠는가? 하물며 그대는 필경 돌아갈 곳이 나와는 각각 다르니, 내 제자 될 사람이 아니로다. 다만 은근한 뜻을 저버리지는 못하리라. 이제 이 팽조방서(彭祖方書) 한 권을 주노니, 노부의 정으로 알고 이것을 기꺼이 받으라. 이를 익히면 곧 수명을 연장하여 오래 살지는 못할지라도, 또한 병이 없고 늙음을 물리칠 것이로다.”

 

生復起拜而受之仍問曰 : “先生以小子, 期之以人間富貴, 敢問前程之事矣.

小子於華陰縣與秦家女子 方議婚, 爲亂兵所逐奔竄至此, 未知此婚可得成乎?”

道人大笑曰 : “婚姻之事昏黑似夜, 天機不可輕泄. 然君之佳緣在於累處, 秦女不必偏自綣戀也.”

생부기배이수지잉문왈 선생이소자 기지이인간부귀 감문전정지사의

소자어화음현여진가여자 방의혼 위란병소축분찬지차 미지차혼가득성호

도인대소왈 혼인지사혼흑사야 천기불가경설 연군지가연재어루처 진녀불필편자권연야

 

양생이 다시 일어나 절하여 책을 받고 인하여 묻기를,

“선생께서 소자에게 인간 부귀를 기약하시니 감히 앞길의 일을 묻겠사옵니다. 소자는 화음현(華陰縣)의 진가(秦家) 여자와 더불어 바야흐로 혼인을 의논하다가, 어지러운 병사들에 쫓기어 이곳에 도망 와 숨어 있는데, 이 혼인이 이루어지리까?”

도인이 크게 웃으며 이르기를,

“혼인의 길은 어둡기가 밤 같으니, 천기를 가볍게 누설할 수 없노라. 그러나 자네의 아름다운 인연은 여러 곳에 있으니, 스스로 진녀(秦女)만을 일편으로 생각하며 그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로다.”

 

生跪而受命, 陪道人同宿於客堂, 天未明 道人喚覺楊生 而謂之曰 :

“道路旣通科期退定於明春, 想大夫人方切倚閭之望, 須早歸故鄕毋貽北堂之憂.”

仍計給路費 生百拜床下, 稱謝厚眷 收拾琴書, 行出洞門 不勝依黯 矯首回顧.

茅茨及道人已無去處, 惟曙色蒼凉, 彩靄葱籠而已.

生入山之初楊花未落, 一夜之間菊花滿發矣, 生大以爲怪, 問之於人 已秋八月矣.

생궤이수명 배도인동숙어객당 천미명 도인환각양생 이위지왈

도로기통과기퇴정어명춘 상대부인방절의려지망 수조귀고향무이북당지우

잉계급로비 생백배상하 칭사후권 수습금서 행출동문 불승의암 교수회고

모자급도인이무거처 유서색창량 채애총롱이이

생입산지초양화미락 일야지간국화만발의 생대이위괴 문지어인 이추팔월의

 

양생이 무릎 꿇고 명을 받아 도인을 모시고서 객실에서 함께 잤는데, 하늘이 채 밝기 전에, 도인이 양생을 깨우면서 이르기를,

“길이 이미 통하고, 과거가 내년 봄으로 미루어졌노라. 대부인(大夫人)이 동구 밖에 나와 간절히 애타게 기다리심을 생각하여, 고향으로 빨리 돌아가 모친께 근심을 끼치지 말지어다.”

이에 노자를 장만해 주거늘, 양생이 상 아래에서 백 번 절하며, 후히 돌봐줌을 사례하고 거문고와 퉁소와 책을 수습하여, 동구 문을 나섰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머리를 높이 들어 돌아다 보았더니, 띠 집과 도인은 이미 간 곳이 없고, 오직 산천에는 상서로운 빛만 어슴푸레하고, 맑고 고운 노을만 영롱할 뿐이었다.

양생이 처음 산에 들어올 때는 버들꽃이 지지 않았는데, 하룻밤 사이에 국화가 만발하였기에, 양생이 무척 괴이히 여겨 사람들에게 물으니, 이미 가을 팔월이었다.

 

來訪舊日客店, 新經兵火村落蕭條, 與向來經過之時大異, 赴擧之士紛紛下來.

生問都下消息則 答曰 : “國家召諸道兵馬, 過五箇月始削平僭亂,

大駕還都 科擧且以明春退定矣.”

내방구일객점 신경병화촌락소조 여향래경과지시대리 부거지사분분하래

생문도하소식즉 답왈 국가소제도병마 과오개월시삭평참란

대가환도 과거차이명춘퇴정의

 

지난날의 주막을 찾아와 보니, 병란이 새로 지나가서 촌락은 쓸쓸하고 지난번 지났을 때와는 사뭇 다르며,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은 어지러이 시골로 내려가 버렸다.

양생이 서울 소식을 물으니 답하기를,

“국가에서 여러 도(道)의 병마(兵馬)를 불러서, 오 개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지러운 난리가 평정되었고, 천자의 수레는 서울로 돌아왔으며, 과거 또한 내년 봄으로 물리어졌다고 하더이다.”

 

生往訪秦御史家, 則繞溪衰柳 搖落於風霜之後, 殊非舊日景色.

朱樓粉墻已成灰燼, 陳礎破瓦堆積遺墟而已.

四鄰荒凉亦不聞鷄犬之聲, 生愴人事之易變 悵佳期之已曠.

攀援柳條佇立斜陽, 徒吟秦小姐楊柳之詞, 一字一涕 衣裾盡濕.

생왕방진어사가 즉요계쇠류 요락어풍상지후 수비구일경색

주루분장이성회신 진초파와퇴적유허이이

사린황량역불문계견지성 생창인사지이변 창가기지이광

반원류조저립사양 도음진소저양류지사 일자일체 의거진습

 

양생이 진어사(秦御史)의 집을 찾아갔는데, 시내를 에워싼 시든 버들은 풍상을 겪은 후라, 나뭇잎이 떨어져 유달리 지난날의 경치를 볼 수 없었다. 화려한 누각과 하얀 담장은 이미 재가 되어 버렸고, 늘어선 주춧돌과 깨어진 기와만이 빈터에 덮쳐 쌓여 있을 뿐이었다.

사방 이웃이 황량하여 또한 닭과 개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니, 양생은 사람의 일이 쉽게 변함을 슬퍼하고, 가약이 이미 물거품이 된 것을 한탄하였다. 버들가지를 휘어잡고 석양을 등지고 우두커니 서서, 홀로 진소저의 양류사를 읊으며, 그 시의 한 자 한 자마다 눈물을 흘리니 옷자락이 촉촉이 다 젖었다.

 

欲問往事 不見人跡, 乃茫然而歸問于店主曰 : “彼秦御史家屬, 今在何處耶?”

店主嗟歎曰 : “相公不聞耶? 前者御史仕宦在京, 惟小姐率婢僕守家, 官軍恢復京師之後,

朝廷以秦御史爲受逆賊僞爵, 以極刑斬之, 小姐押去京師.

而其後或言終不免慘禍, 或言沒入掖庭矣, 今朝官人押領罪人等數多家屬,

過此店之前 問之則曰, 此屬皆沒入爲英南縣奴婢者也, 或云秦小姐亦入於其中矣.”

욕문왕사 불견인적 내망연이귀문우점주왈 피진어사가속 금재하처야

점주차탄왈 상공불문야 전자어사사환재경 유소저솔비복수가 관군회복경사지후

조정이진어사위수역적위작 이극형참지 소저압거경사

이기후혹언종불면참화 혹언몰입액정의 금조관인압령죄인등수다가속

과차점지전 문지즉왈 차속개몰입위영남현노비자야 혹운진소저역입어기중의

 

지난 일을 묻고자 하나 인적을 볼 수 없어, 이에 망연히 돌아와 주막 주인에게 묻기를,

“저 진어사의 가족은 이제 어느 곳으로 갔느뇨?”

주막 주인이 한숨지어 탄식하며 이르기를,

“상공은 듣지 못하였나이까? 지난번에 어사가 서울에서 벼슬을 하고, 오직 소저가 비복들을 거느리고 집을 지켰는데, 관군이 서울을 회복한 후, 조정에서는 진어사가 역적의 거짓 벼슬을 받았다 하여, 극형으로 참하고 소저는 서울로 잡혀갔나이다.

그 후에 어떤 사람은 끝내 끔찍한 변고를 면치 못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적몰(籍沒)하여 후궁이 사는 집에 들어갔다고 말하더이다. 오늘 아침에 관리들이 죄인 등 많은 가속을 호송하고, 이 주막 앞을 지나가기에 그 일을 묻자, 이 무리는 모두 영남현(英南縣)에서 노비로 삼은 자들이라 말하였고, 어떤 사람은 진소저가 또한 그 속에 들어 있다고 말하였나이다.”

 

楊生聽之 泪汪然自下曰 : “藍田山道人, 云秦氏婚事昏黑似夜, 小姐必已死.”

更無詰問之處, 乃治行具下去秀州.

양생청지 루왕연자하왈 남전산도인 운진씨혼사혼흑사야 소저필이사

갱무힐문지처 내치행구하거수주

 

양생이 그 말을 듣자 저절로 눈물을 떨구며 이르기를,

“남전산 도인께서 진씨와의 혼사가 어둡기가 밤과 같다 했는데, 소저는 필시 이미 죽었겠구나.”

다시 따져 물을 것도 없어서, 이내 행장을 차려 수주(秀州)로 내려갔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