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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한문논설 '기예론'

New-Mountain(새뫼) 2018. 3. 2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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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론(技藝論)

정약용(丁若鏞)

 

 

 

1.

 

하늘이 금수(禽獸)에게는 발톱[]을 주고 뿔[]을 주고 단단한 발굽[硬蹄]을 주고 날카로운 이[利齒]를 주고 독()을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각기 하고 싶은 것을 얻게 하고, 사람에게서 받게 되는 환난(患難)을 방어하도록 하였다.

 

天之於禽獸也予之爪予之角予之硬蹄利齒予之毒使各得以獲其所欲而禦其所患

 

그런데 사람에게는, 벌거숭이로 태어나서 연약하여 마치 그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없을 것처럼 만들었으니, 어찌하여 하늘은 천하게 여길 데는 후하게 하고 귀하게 여길 데는 박하게 하였을까. 그것은 바로 사람에게는 지려(智慮)와 교사(巧思)가 있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기예(技藝)를 습득하여 스스로 자기의 생활을 영위하도록 한 것이다.

 

於人也則倮然柔脆若不可以濟其生者豈天厚於所賤之而薄於所貴之哉以其有知慮巧思使之習爲技藝以自給也

 

그러나 지려를 미루어 운용(運用)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교사로써 사리를 연구하는 것도 차서가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성인(聖人)이라 하더라도 천 명이나 만 명의 사람이 함께 의논한 것을 당해낼 수 없고, 아무리 성인이라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그 아름다운 덕()을 모조리 갖출 수는 없는 것이다.

 

而智慮之所推運有限巧思之所穿鑿有漸故雖聖人不能當千萬人之所共議雖聖人不能一朝而盡其美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그 기예(技藝)가 정교하게 되고, 세대(世代)가 아래로 내려올수록 그 기예가 더욱 공교하게 되니, 이는 사세가 그렇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故人彌聚則其技藝彌精世彌降則其技藝彌工此勢之所不得不然者也

 

그러므로 촌리(村里)에서 사는 사람은 공작(工作)이 있는 현읍(縣邑)에서 사는 사람만 못하고, 현읍에서 사는 사람은 기교가 있는 명성(名城)이나 대도(大都)에서 사는 사람만 못하며, 명성이나 대도에서 사는 사람은 신식 묘제(新式妙制)가 있는 경사(京師)에서 사는 사람만 못하다.

 

故村里之人不如縣邑之有工作縣邑之人不如名城大都之有技巧名城大都之人不如京師之有新式妙制

 

그런데 저 궁벽한 촌리(村里) 밖에 사는 사람이 옛날에 경사에 한 번 갔다가 우연히 그 시작만 되었을 뿐 아직 구비되지 않은 법()을 보고서 기꺼이 돌아와서 시험해 보고는, 대번에 아는 체하고 스스로 만족해하면서

천하(天下)에 이 법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고, 그의 아들과 손자에게 경계하기를

경사에서 이른바 기예(技藝)라는 것을 내가 모두 알았으니, 이제부터는 경사에서는 다시 더 배울 것이 없다.’

하니, 이런 사람은 그 하는 일이 거칠고 누악(陋惡)하지 않은 것이 없다.

 

彼處窮村僻里之外者舊至京師偶得其艸剙未備之法欣然歸而試之竊竊然以自

滿曰天下未有賢於此法者

戒其子若孫曰京師之所謂技藝者吾盡得之自此京師無所復學矣

若是者其所爲有不鹵莽陋惡者也

 

우리나라에 있는 백공(百工)의 기예는 모두 옛날에 배웠던 중국(中國)의 법인데, 수백 년 이후로 딱 잘라 끊듯이 다시는 중국에 가서 배워올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 이와 반대로 중국의 신식 묘제(新式妙制)는 날로 증가하고 달로 많아져서 다시 수백 년 이전의 중국이 아닌데도 우리는 또한 막연하게 서로 모르는 것을 묻지도 않고 오직 예전의 것만 만족하게 여기고 있으니, 어찌 그리도 게으르단 말인가.

 

 

我邦之有百工技藝皆舊所學中國之法數百年來截然不復有往學中國之計而中國之新式妙制日增月衍非復數百年以前之中國我且漠然不相問唯舊之是安何其懶也

 

 

2.

 

 

농업(農業)의 기예(技藝)가 정교하면 그 차지한 전지(田地)는 적어도 생산된 곡식은 많을 것이고, 그 힘은 적게 들이고도 곡식은 아름답고 충실할 것이니, 무릇 묵은 땅을 개간(開墾)하고 땅을 갈고 곡식의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곡식을 베어 거두고 곡식의 껍질을 벗겨서 키로 까불고 절구에 찧고 물에 반죽하고 불을 때서 밥을 짓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편리함을 돕고 그 수고로움을 덜게 될 것이다.

 

農之技精則其占地少而得穀多其用力輕而穀美實凡所以菑之耕之播之芸之銍之剝之以至簸舂溲炊之功皆有以助其利而省其勞者矣

 

직조(織造)의 기예가 정교해지면 그 소비되는 물질은 적으면서도 생산된 실[]은 많아지고, 그 힘들이는 시간은 매우 단축되면서도 포백(布帛)은 올이 섬세하고 결이 아름다울 것이니, 무릇 물에 담그고 씻고 실을 만들고 실을 뽑고 베를 짜고 표백(漂白)하여 물들이고 풀을 하고 바느질을 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편리함을 돕고 그 수고로움을 덜게 될 것이다.

 

織之技精則其費物少而得絲多其用力疾而布帛緻美凡所以漚之浴之紡之繅之織之練之以至染采糨鍼之功皆有以助其利而省其勞者矣

 

병기(兵器)의 기예가 정교해지면 무릇 공격하고 찌르고 방어하고 운반하고 수축(修築)하는 일이 모두 그 용맹(勇猛)을 돕고 그 위태로움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兵之技精則凡所以擊刺防禦轉輸修築之功皆有以益其猛而護其危者矣

 

의원(醫員)의 기예가 정교해지면 무릇 맥()을 보고 병증(病證)을 살피고 약의 성분을 분변하고 사시의 절기를 살피는 것이 모두 옛사람의 몽매(蒙昧)한 점을 발견하고 이전 사람의 그릇된 것을 논박(論駁)하게 될 것이다.

 

醫之技精則凡所以切脈審祟辨藥性察時氣者皆有以發前人之蒙而駁前人之謬者矣

 

백공(百工)의 기예가 정교해지면 무릇 궁실(宮室)과 기구(器具)를 제조하여 성곽(城郭)과 배와 수레의 제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튼튼하고 편리하게 될 것이다.

 

百工之技精則凡所以製造宮室器用以至城郭舟船車輿之制

 

진실로 그 법을 다 터득해서 힘써 실행한다면 나라가 부유하게 되고, 군대가 강하게 되고, 백성들이 유족(裕足)하여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而皆有以堅固便利矣苟盡得其法而力行之則國可富也兵可強也民可裕而壽也

 

그런데 방금 이를 눈여겨보면서도 도모하지 않으면서 수레에 대한 일을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나라는 산천(山川)이 험악해서 사용할 수가 없다.’

하고, 목양(牧羊)을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조선(朝鮮)에는 양()이 없다.’

하며, []을 죽[]으로 기르기가 적당치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풍토(風土)가 각기 다르다.’

하니, 이와 같은 사람들을 낸들 또한 어떻게 하겠는가.

 

方且熟視而莫之圖焉有說車者我邦山川險惡

有說牧羊者朝鮮無羊

有說馬不宜粥者風土各異

若是者吾且奈何哉

 

글씨를 배워서 미불(米芾)동기창(董其昌)과 같이 잘 쓰는 사람이 있으면 대뜸,

왕희지(王羲之 동진(東晉)의 명필)의 순수(純粹)한 필법(筆法)만 못하다.’

하고, 의술(醫術)을 배워서 설기(薛己)장개보(張介寶)와 같이 된 사람이 있으면,

옛날의 단계(丹溪)하간(河間)만 못하다.’

하면서, 은연중에 옛사람을 기대어 성세(聲勢)로 삼아서 한 세상을 호령(號令)하려고 하는데, 저 왕희지단계하간의 무리들이 과연 우리나라의 안동부(安東府) 사람이나 된단 말인가.

 

學書而有爲米董者不如羲之之純也

學醫而有爲薛張者不如丹溪河間之古也

隱然倚之爲聲勢而欲號令一世彼羲之丹溪河間之屬果雞林之安東府人耶

 

시속(時俗)에서 말하는 왕희지의 서법(書法)이란 곧 우리나라에서 새긴 목판본(木版本) 필진도(筆陣圖)를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도리어 미불(米芾)과 동기창(董其昌)의 진적(眞蹟)만 못한 것이다.

 

 

俗所云羲之卽鄕刻木板筆陣圖也故反不如米董眞蹟

 

 

 

3.

 

 

옛날에 소식(蘇軾), 경적(經籍)을 고려(高麗)에 주지 말고 아울러 구입(購入)하는 것도 금()할 것을 청하면서,

오랑캐가 글을 읽으면 지려(智慮)가 높아질 것입니다.”

하였으니, 어쩌면 그리도 마음이 좁고 은혜가 적었던가.

 

昔蘇軾請勿以經籍賜高麗竝禁其購求

夷狄讀書長其智慮也

何其狹隘而少恩哉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의논이 그때에는 중국에서 시행되었던 것이다. 경적도 그렇게 서로 보여주지 않으려 하였는데, 하물며 그들로 하여금 기예(技藝)와 여러 가지 기능(技能)을 배우게 하여 그 나라를 강하게 하였겠는가.

 

雖然此論則以時得行於中國也經籍且不欲相示況使之學技藝諸能以彊其國哉

 

옛날에는 외이(外夷)들이 자제(子弟)들을 중국(中國)에 보내어 입학(入學)시킨 자가 매우 많았는데, 근세에는 유구국(琉球國) 사람이 중국의 태학(太學)10년 동안이나 있으면서 오로지 그 문물(文物)과 기능만을 배워갔으며, 지봉집(芝峯集)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日本) 사람 역시 중국의 강소성(江蘇省)과 절강성(浙江省)을 왕래하면서 다만 백공(百工)의 섬세하고 정교한 기술만을 배워오도록 힘썼다.

 

古者外夷遣子弟入學者甚多近世琉球人處太學十年專學其文物技能,《芝峰集日本往來江唯務移百工纖巧

 

그러므로, 유구와 일본은 바다 가운데 멀리 떨어진 지역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그 기능은 중국과 대등(對等)하게 되어, 백성들은 부유하고 군대는 막강하여 이웃 나라에서 감히 침략(侵略)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이미 그렇게 된 효과가 이러한 것이다.

 

故琉球日本在海中絶域而其技能與中國抗民裕而兵強鄰國莫敢侵擾其已然之效如是也

 

마침 지금은 규모(規模)가 소활(疏豁)하여 좁고 비루하지 않은데, 이 시기를 놓치고 도모하지 않을 경우, 만일 갑자기 다시 소식(蘇軾) 같은 자가 있어 위[]에 의견을 아뢰어, 중국(中國)과 외이(外夷)의 한계를 엄격하게 해서 금지(禁止)하는 명령을 내리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예폐(禮幣)를 가지고 가서 하찮은 것이나마 얻어 오려 한다 할지라도 어찌 그 뜻을 이룰 수 있겠는가.

 

適今規模疏豁不狹陋捨此不圖若一朝有如蘇軾者建言嚴華夷之界申禁遏之令則雖欲執贄奉幣冀得其咳唾之餘尙安能遂其志哉

 

대저 효도와 우애는 천성(天性)에 근본하고, 성현(聖賢)의 글에 밝혀졌으니, 진실로 이를 넓혀서 충실하게 하고, 닦아서 이를 밝힌다면 곧 예의(禮義)의 풍속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는 진실로 밖[]으로부터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요, 또한 뒤에 나오는 것에 힘입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夫孝弟根於天性明於聖賢之書苟擴而充之修而明之斯禮義成俗此固無待乎外亦無藉乎後出者

 

만일 백성이 사용하는 기물(器物)을 편리하게 하고 재물(財物)을 풍부히 하여 백성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데에 사용되는 것과, 백공(百工)의 기예의 재능은, 그 뒤에 나온 제도를 가서 배우지 않는다면 그 몽매하고 고루함을 타파하고 이익과 은택(恩澤)을 일으킬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이 국가를 도모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강구해야 할 일이다.

 

 

若夫利用厚生之所須百工技藝之能不往求其後出之制則未有能破蒙陋而興利澤者也此謀國者所宜講也

 

 

1) 신식묘제: 새로 나온 기계(機械)에 의한 제작

2) 경사: 서울

3) 미불: 송나라 때의 명필(名筆)

4) 동기창: 명나라 때의 명필

5) 설기: 명나라 때의 명의(名醫)

6) 장개보: 명나라 때의 명의

7) 단계: 원나라 때의 명의인 주진형(朱震亨)의 호

8) 하간: 금나라 때의 명의인 유완소(劉完素)의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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