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또는 함께/보고읽은 뒤에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New-Mountain(새뫼) 2016. 4. 22. 09:49
728x90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책을 읽을 사람도 불쌍하고 읽지 않을 사람도 불쌍하고, 그냥 모두 다 불쌍해.....(42)


"옛날 일을 떠올일 수가 없어요. 생각조차 하지 싫어요...... 3년이나 전쟁터에 있었어요. 그 3년 동안 나는 여자가 아니었죠. 여자로서 내 몸은 죽어버렸어요. 생리고 끊기고 여성으로서의 욕구도 거의 없었으니까. 나는 꽤 예뻤어요...... 우리 남편이 나에게 청혼했는데...... 베를린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그이가 청혼하면서 그러더군요. 전쟁은 끝났고, 우리는 살아남았다고. 우리는 억세게 운이 좋았다고. 우리는 억세게 운이 좋았다고 자기랑 결혼하자고. 나는 엉엉 울고 싶었어요. 소리소리 지르고 그 사람을 두들겨 패고 싶었어요. 결혼? 세상이 이렇게 끔찍하게 돟아가는데 결혼을 하자고? 세상이 온통 새까맣게 타버리고 보이는 건 시커먼 벽돌뿐인데, 결혼을 하자니...... 그래서 소리쳤어요. '나를 좀 봐요...... 지금 내 꼴을 좀 보라니까요! 나를 여자로 만들어줘요. 꽃도 선물하고, 데이트도 신청하고, 달콤한 말도 하란 말이에요. '얼마나 해보고 싶은 일이었는데! 얼마나 꿈꾸던 일이었는데! 그이를 때릴 뻔했어요...... 정말 그이를 때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이의 한쪽 빰에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그때 그이는 얼굴에 화상을 입어 한쪽 빰이 발갰는데, 그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어요. 아직 아물지 않은 발간 상처 위로. 그때 알았어요. 그이도 내 마음과 같다는 걸. 그러자 나도 모르게 대답이 나와버렸죠. '그래요, 우리 결혼해요.' 

미안해요 더이상 못하겠어요......" (22-23)


내 방에서 꽃을 가지고 나와 이웃에게 부탁했던 게 기억나.

- 나 없는 동안 이 꽃에 물 좀 주세요. 그방 돌아올게요.

하지만 내가 돌아온 건 4년 후였지......(125)


햇살이 눈부신 날이었지. 독일군의 기관총 소리 '따다다다......' 한바탕 불을 뿜고는 조용해졌어. 사그락사그락  밀 잎사귀 부딪치는 소리만 귀를 간질였지. 그리고 다시 쏟아지는 독일군의 총소리 '따다다다......' 총소리를 들으며 생각했어. '밀 잎사귀의 속삭임을 나는 언제 다시 들을 수 있을까? 그 다정한 속삭임을......' (126)


밤새, 날이 밝을 때까지 내다 보초를 서기로 했던 건, 새소리가 듣고 싶어서였어.  딱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지. 밤엔 고향을, 평화로운 지난날을 느끼게 하는 그 뭔가가 있었거든. (135)


행복이 뭐냐고 한번 물어봐주겠어? 행복...... 그건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기적처럼 산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야...... (145)


나는 행복했어...... 내가 다른 누군가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기뻤어. 그리고 그런 나 자신에게 스스로도 많이 놀랏지......(157)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정말 파랗더라고......(246)


그때 알았지. 불은 모든 걸 태운다는 걸...... 심지어 피까지도 태워 없앤다는 걸...... (248)


그걸 어떻게 얘기하나...... 글쎄, 어떻게...... 왜, 있잖아...... 늦가을이면 철새들이 이동하는 거...... 길게 길게 무리 지어서. 우리 대포, 독일군 대포가 한꺼번에 불을 뿜는데 새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날아가는 거야. 새들이 어떻게 비명을 지르겠어? 어떻게 새들에게 '이리로 오면 안 돼! 이리 오면 죽어!' 라고 알려줘? 어떻게? 끝내 새들은 계속 땅으로 떨어졌어. (249)


나는 들꽃을 보면 전쟁이 떠올라. 전쟁 때 우리는 꽃을 꺾지 않았어. 꽃을 꺾는다면 그건 누군가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서였지...... 작별을 고하려고...... (252)


아무리 짧게 이발을 해도...... 머리는 금세 다시 자랐어. 나는 밤마다 어린 소녀병사들의 머리를 구불구불하게 말아줬어. 파마용 클립 대신에 솔방울을 써서...... 전나무에서 떨어진 마른 솔방울들로...... 비록 앞머리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주고 싶더라고......(306)


한번은 벨라루스...... 오르샤의 숲이었는데 자그마한 벚나무들이 예쁘게 꽃을 피웠더라고. 아네모네도 연푸른 빛깔로 곱게 피어 있고. 그야말로 초원이 온통 빛갈 고운 꽃들 천지였어. 아, 이런 곳에 누울 수 있다면...... 그때 겨우 열일곱이었으니 뭘 알아. 그저 철부지였지...... 내가 상상하는 죽음이란 그랬어......(348-349)


나는 바지는 절대 안 입어. 보기만 해도 혐오감이 들어서. 숲에 가서 버섯과 열매를 딸 때도 안 입는다니까. 이젠 뭔가 평범하고 여성스러운 옷이 입고 싶어...... (355)


사방에 총탄이 날아다니고 포성이 울리는 그 한밤에 분 향기가 퍼지는데..... 아, 그건 정말 특별한 무엇이었어.......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려고 해...... 그 분 향기, 그 조개 두껑....... 그 작은 생명...... 여자 아기...... 집에 와 있는 것 같고...... 진짜 여자의 삶인 것 같은 느낌......(360)


모르겠어...... 아니, 당신이 묻는 말이 뭔지는 알아. 하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 내 말로는...... 그걸 어쩧게 말로 설명하지? 그러려면...... 필요한데...... 고요한 밤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떠올라. 그러면 온몸이 경련이 일면서 죽을 건만 같지. 숨을 쉴 수가 없어. 으슬으슬 오한이 나고. 그러니까...... 어진가 표현할 말이 있을 텐데...... 시인이 필요해...... 단테 같은 시인이...... (366-367)


잠이 든 듯 깬 듯 눈을 뜨고 있으면 이름 모를 나방이며 모기들이 뜨거운 불길을 향해 날아들지. 소리도 없이. 날갯짓도 없이 슷슷 날아와서는 말 한마디 못하고 거대한 모닥불 속으로 사라지는 거야. 그 뒤를 다른 녀석들이 쫓아 날아들고...... 대놓고 말하면...... 꼭 우리처럼. 날아오고 또 날아오소. 밤새 그렇게 날아들지.(376-377)


기차 안에서 열이 나더라고. 뺨이 부어오르고 입도 벌릴 수가 업소, 사랑니가 나고 있었어...... 나는 전쟁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어......(392)


나는 사랑을 꿈꿨어. 집과 가족을 원했지. 집안에서 어린아이들 냄새가 나길 바랐어. 첫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냄새를 얼마나 맡았는지 몰라. 아무리 맡아도 싫증이 안 나더라고. 그건 행복의 냄새였으니까...... 여자의 행복...... 전선에서는 여자의 냄새가 없었어. 전부 남자들이었으니까. 전쟁은 남자 냄새가 나. (430)


지금 이건 내가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내 안의 고통이 이야기하는 거지...... (445-446)


어쩌다 전쟁에 나가 싸우게 됐냐고? 그야 총 쏘는 법을 배웠으니까......(447)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