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시; 89년~91년

신병교육대13 - 행군

New-Mountain(새뫼) 2013. 2. 19. 00:15
728x90

   

발바닥에 잡힌 물집이 터져

게 생채기에 피멍이 흐르는

새벽, 훈련병들의 긴 행렬

발끝에 몰리는 통증

등줄기로 흐르는 식은땀의 싸늘함

우리는 낱낱까지 헬 듯한

밤하는 은하수를 그리워한다.

 

지금 걷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끝없이 이어지는 철원평야

그러나 넓은 들의 광활함은 이미 사라지고

눈에 바라다보이는 것은 오직

앞 전우의 저벅거리는 군장 뿐인 것을

그리고 가끔 환영으로 나타나는

어머니

 

어딜 향해 내딛는 걸음인지

왜 내딛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이제 걸어온 길 저 쪽에서

어머니는 말없는 손짓을 하고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하지만 기억이 까마득했던 비오던 어느날

어머니는 차가운 땅속에 영원히 누우시고

지금 어머니라 부를 대상은 없다

열두시간 그저 걷기만 해야하는 지금은

꿈도 이상도 추억도 회한도

모두 거부당하고

철저하게 현실만을 강요당하는 시간

어깨에 멘 군장은

이제 무거움이 아니라 아픔으로

밤하늘 아름다운 은하수를 바라보는

훈련병의 눈물어린 감상을 제지하고

앞으로 한발짝 또 한발짝

그렇게 어둠에 잠긴 젊은 행렬은

철원평야 깊숙히 가로지른다.

728x90

'자작시와 자작소설 > 시; 89년~9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병교육대15 - 포복  (0) 2013.02.19
신병교육대14 - 향수  (0) 2013.02.19
신병교육대12 - 야간 보초  (0) 2013.02.19
신병교육대11 - 가스실에서  (0) 2013.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