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생존 ( 2015 가톨릭대 수시 )
[문항 1] (가)와 (나)는 서로 다른 생존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비교하여 서술하시오. (띄어쓰기 포함200~250자 / 20점)
(가) 상호간 불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예상되는 위협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누구나 합리적 조치를 강구하게 된다. 그것은 곧 폭력이나 계략을 써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자신에 대한 위협이 되지 못하도록 무력화하는 일이다. 이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보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허용될 수밖에 없다.
이로써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진다. 인간은 그들 모두를 위압하는 공통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전쟁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성과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땀 흘려 일할 이유가 없다. 토지의 경작이나 해상무역, 편리한 건물,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는 기계, 지표(地表)에 관한 지식, 시간의 계산도 없고, 예술이나 학문도 없으며, 사회도 없다. 끊임없는 공포와 생사의 갈림길에서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험악하고, 잔인하고 그리고 짧다.
천성적으로 억압을 싫어하고 지배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이 국가 체제 속에서의 구속을 스스로 부과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자기 보존에 있다. 다시 말하면 비참한 전쟁 상태로부터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공통의 권력은 외적의 침입과 상호 간의 권리 침해를 방지하고, 스스로의 노동과 대지의 열매로써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여 쾌적한 생활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요하다. 이 권력을 확립하는 유일한 길은 모든 사람의 의지를 하나의 의지로 결집하는 것, 즉 그들이 지닌 모든 권력과 힘을 ‘한 사람’ 혹은 ‘하나의 합의체’에 양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들 모두의 인격을 한 사람 혹은 합의체에 부여하고, 그가 공공의 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어떤 행위를 하든 혹은 백성에게 어떤 처벌을 가하든 간에, 개개인의 의지를 그의 의지에 종속시키고 개개인의 다양한 판단들을 그의 단 하나의 판단에 위임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동의 혹은 화합 이상이며, 만인이 만인과 상호 신의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단 하나의 동일 인격으로 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리하여 위대한 리바이어던(Leviathan)이 탄생한다. 인간에게 평화와 방위를 보장하는 ‘지상의 신(mortal god)’이 출현하는 것이다.
(나) 다윈의 진화론은 영국의 경제학자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착안한 것으로, 이 책에서는 인구의 증가보다 식량이 매우 적게 생산되어 그 격차로 인해 기근, 질병, 전쟁 등 대재앙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다윈은 이러한 대재앙을 자연 환경에 비유하면서 환경에 잘 적응하여 생존한 개체가 자손을 남기게 된다는 자연선택설을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생물의 종은 다산성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로 인해 생존경쟁이 발생한다. 이때 그 환경에 잘 적응한 변이를 갖는 개체가 생존하여 자손을 남기고 그 변이를 전하는 확률이 높게 된다. 그러므로 각각의 종은 환경에 적응한 방향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생물의 종이 신에 의해 창조된 후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다윈의 진화론은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다.
5.2. 원전(元典) ( 2015 이화여대 모의)
1. 제시문 [가]와 [나]에 나타난 원전을 대하는 태도를 비교 분석하시오. [분량제한 없음]
[가]
역사적으로 지식의 신뢰성이 늘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지는 않았다. 근세 초기에 나타났던 지적 흐름들 중 아주 중요한 하나를 꼽자면 진리라는 주장들에 맞서 다양한 종류의 회의주의가 등장했던 것을 들 수 있다. 이에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정확한 지식을 얻는 과제를 푸는데 매달렸는데, 예컨대 기하학적 접근 방법, 즉 기하학에서처럼 최소한의 공리에서 지적 체계를 연역해 내는 방법들을 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귀납적 접근 방식이 등장하면서 원전(原典)에 각주를 다는 사례가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각주(footnote)’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그보다는 특정 텍스트를 읽는 독자들에게 원전에 대한 안내를 제공하는 관행이 퍼져 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행은 독자들로 하여금 ‘원전’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는데, 여기에는 흐르는 물처럼 정보도 그 근원에 가까이 갈수록 순수해진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실험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 일지와 마찬가지로, 원전의 출처를 밝혀 주는 각주는 독자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저자의 지적 궤적을 되짚어 볼 수 있게 하는 목적을 띠고 있었다.
원전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과 종교 개혁가들이 내걸었던 표어이기도 했으며, 16세기부터 몇몇 역사학자들은 역사를 쓰면서 근거로 삼았던 수사본들을 신경을 써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각주를 다는 것이 일반 관행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7세기에 들어서였다. 예를 들어 17세기 초에 셀던은 십일조의 역사를 집필하면서 여백마다 출처에 관한 소개를 가득 채웠는데, 그는 책의 서문에서 “여기에 열거한 원전들은 그저 남들이 많이 인용하니까 가져다 쓴 것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선택되었으며, 각주에서 밝힌 출처들에서 직접 인용한 것으로서 절대 2차 자료를 이용한 것이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언급하고 있다.
[나]
성인(聖人)의 책에 주석(註釋)을 다는 것은 괜찮지만 그보다 등급이 낮은 책에 주석을 다는 것은 만족스럽지가 않다. 주석이라는 것은 원전의 신하이자 하인이다. 내가 비록 옛날의 주석가들에게 미치지는 못한다고 해도 어찌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어 그들의 신하나 하인이 되고자 하겠는가? 당나라의 훌륭한 문인인 한유(韓愈)가 말하기를 “지금 세상에는 공자와 같은 성인이 계시지 않으니 내가 공자의 제자들과 똑같은 등급에 서려는 것은 마땅한 자세가 아니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대장부가 뜻을 세우려면 진실로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주석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옛사람들의 저서나 주장을 가져다가 그 차이를 따지는 것도 원전의 발아래에서 오고 감을 면치 못한다. 한나라의 양웅(揚雄)이 굴원(屈原)의 명작인 「이소(離騷)」를 반박하는 글을 지었지만 굴원에는 미치지 못했다. 당나라의 유종원(柳宗元)이 좌구명(左丘明)의 저서 국어(國語)를 따지며 글을 지었으나 좌구명에 미치지 못했으니, 유종원의 주장에 다시 반박하는 글을 지은 자는 결국 유종원의 아래에 놓이게 될 것이다. 대장부가 글을 짓고 책을 저술하려면 마땅히 최초의 원전인 육경(六經)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어찌 괴롭게 유종원이나 양웅 무리의 발아래서 머물러야 한다는 말인가?
5.3. 행복 ( 2015 세종대 모의)
1. 제시문 (가)와 (나)를 읽고, 행복에 대한 논점을 중심으로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기술하시오. (400~500자, 30점)
(가) 목표가 명확하고 활동 결과가 바로 나타나며 과제와 실력이 균형을 이루면 사람은 정신을 체계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 몰입은 정신력을 모조리 요구하므로 몰입 상태에 빠진 사람은 완전히 몰두한다. 잡념이나 불필요한 감정이 끼어들 여지는 티끌만큼도 없다. 자의식은 사라지지만 자신감은 평소보다 커진다. 시간 감각에도 변화가 온다. 한 시간이 일 분처럼 흘러간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여한 없이 쓸 때 사람은 어떤 일을 하고 있건 일 자체에서 가치를 발견한다. 삶은 스스로를 정당화하게 된다. 체력과 정신력이 조화롭게 집중될 때 삶은 마침내 제 스스로 힘을 얻는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 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다. 몰입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행복을 느끼려면 내면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작 눈앞의 일을 소홀히 다루기 때문이다. 암벽을 타는 산악인이 고난도의 동작을 하면서 짬을 내어 행복감에 젖는다면 추락할지도 모른다. 까다로운 수술을 하는 외과의나 고난도의 작품을 연주하는 음악가는 행복감을 느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일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비로소 지난 일을 돌아볼만한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이 한 체험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는가를 다시 한 번 실감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되돌아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물론 몰입하지 않고도 행복을 맛볼 수는 있다. 고단한 몸을 눕혔을 때의 편안함과 따사로운 햇살은 행복을 불러일으킨다. 모두 소중한 감정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런 유형의 행복감은 형편이 안 좋아지면 눈 녹듯 사라지기에 외부 상황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몰입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이어서 우리의 의식을 그 만큼 고양시키고 성숙시킨다.
(나)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다. 그러나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라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찾은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당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그리고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서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바로 그것이 청빈의 덕이다.
5.4. 세계화(2015 성균관대 모의)
[문제 1] <제시문 1>~<제시문 5>는 `세계화`에 관한 견해를 담고 있다. 이 제시문들을 서로 다른 두 입장으로 분류하고, 각 입장을 요약하시오.
<제시문 1>
새로운 것에 푹 빠진 사람들은 인터넷과 같은 통신 및 운송 기술의 혁명적 변화 덕분에 말 그대로 우리는 ‘국경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에 따라 최근 20년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현재 일어나는 변화가 최근에 일어난 ‘세상을 바꾸는’ 기술 진보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따라서 이런 변화에 반대하는 것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각국 정부가 없는 국경없는 세계의 도래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국경을 넘어 흘러들어오는 자본과 노동, 상품에 대해 반드시 가해야 하는 규제마저 일부 철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바람직하지 않았다. 최근의 기술 변화는 100년 전에 있었던 변화만큼 혁명적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 100년 전의 세계는 1960년부터 1980년까지에 비해 통신과 운송 부분에서의 기술은 훨씬 뒤떨어졌으나 오히려 세계화는 월등히 진전된 상태였다. 1960년부터 1980년까지는 정부들, 특히 힘센 나라 정부들이 자본, 노동, 상품이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엄격하게 규제를 가할 필요가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세계화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이지 기술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최근의 기술혁명에 사로잡혀 시각이 왜곡될 경우에는 이런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결국 잘못된 정책을 펴게 되는 것이다.
<제시문 2>
자유 무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동안 우리가 채택하려고 노력해 왔던 방법은 다른 나라들과 관세 인하를 위한 상호주의적 협상을 벌이는 것이었다. 내게는 이것이 그릇된 방식으로 보인다. 첫째, 그렇게 하면 일의 진척이 매우 느려질 것임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혼자 움직이는 사람이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법이다. 둘째, 그것은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조장한다. 그것은 관세가 관세부가 국가에는 도움이 되고 다른 나라에는 해가 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우리가 관세를 인하하면 그것은 마치 좋은 무언가를 포기하였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관세 인하라는 형태로 보답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실제 상황은 그와 전혀 다르다. 우리의 관세는 다른 나라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롭다. 물론 다른 나라들이 관세를 낮추면 우리도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지만, 우리가 혜택을 보는데 다른 나라들의 관세 인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각자의 사적 이익은 서로 부합되는 것이고, 상충하지 않는다. 영국이 19세기에 곡물법을 폐지하였을 때 그랬듯이, 나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자유무역으로 나아가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는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그들이 경험하였던 것처럼 정치 및 경제적 힘의 엄청난 증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제시문 3>
성공을 향한 중국인들의 노력의 결과 (물리적 거리와 재능의 총체적 관계가 변했듯이) ‘난소 복권 (ovarian lottery)'이 바뀌었다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30년 전에는 미국 뉴욕 주에 있는 인구 3만의 소도시 포킵시 같은 곳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과 뭄바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 근처에서 천재로 태어나는 것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아마도 포킵시를 선택했을 것이다. 평범한 재능이지만 거기서는 윤택하고 품위 잇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가 평평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서든 시작하고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물리적 거리보다 재능이 더욱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빌 게이츠는 말했다. “지금이라면 포킵시에서 평범한 아이로 태어나는 것보다 중국에서 천재로 태어나는 걸 택하겠다.” 베를린 장벽이 베를린 광장으로 바뀌고 30억 인구가 이 모든 새로운 협력의 수단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과거보다 다섯 배나 많은 사람들의 에너지와 재능을 얻을 것”이라고 빌 게이츠는 말했다.
<제시문 4>
세계화는 국제사회에서 상호 의존성이 증가되고 심화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세계화로 인하여 과거에는 국가 단위로 이루어지던 정치, 경제, 사회 활동의 범위가 전지국적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문화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이질적인 문화들 간의 접촉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만듦으로써 한 문화가 다른 문화로부터 완전하게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우려되는 것은 이로 말미암아 서구 중심적 문화에 일방적으로 동화되는 가운데 고유한 문화가 소멸되거나 획일화되는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의 위기>의 저자인 요스트 스미르스는 자유무역의 보편화,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예술이 처할 위기를 경고하였다. 그에 따르면, 문화나 예술을 경제 논리에 맡겨선 안 된다. 그럴 경우 문화적 획일화가 발생하여 지역 문화를 소멸시키고 개인의 창의성 발휘 기회를 박탈하여, 궁극적으로는 우리 삶의 행복 추구권과 문화적 기본권을 위협하게 된다. 따라서 문화의 생산과 배급, 마케팅, 소비 방식 전반이 분산되어야 하며, 지금과 같은 저작권 독점 체제는 달라져아 한다.
<제시문 5>
당신이 소비할 모든 것을 집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얻기 위해 더 이상 누군가에게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 직접 옷을 만들고, 곡식을 키우고, 집을 수리하는 등 모든 것을 스스로 하면 된다. 이러한 라이프 스타일은 자급자족 시대에 농부들이 실제로 살았던 삶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이런 라이프 스타일이 대체로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별다른 기술도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본 욕구를 스스로 충족시키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마이클 조던이 농사짓고, 바느질하는데 온통 시간을 다 바쳤다면 어땠을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농구선수가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햇을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은 주(州) 혹은 개인 간의 교역을 금지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여긴다. 마찬가지로 국가 간의 교역을 금지하는 것도 무모한 짓이다. 애덤 스미스도 1776년에 쓴 [국부론]에서 이 점을 언급하였다. “사는 것보다 직접 만드는데 돈이 더 드는 물건이라면 집에서 만들려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분별 있는 가장이라면 새겨들어야 할 격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물건을 외국에서 더 저렴하게 생산하여 우리에게 공급한다면, 우리에게 유리한 산업의 산출물을 주고 그것을 사오는 편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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